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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불같은 공세에 밀린 왕이 무마책으로 마침내 교지를 내렸다.‘요즘 들어 대소 사찰의 기강이 해이해져 과인은 몹시 걱정스럽다. 사찰에 있는 사람은 마음을 깨끗이 하고 탐욕을 버려야 함에도 이를 저버리고 세속의 나쁜 버릇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주지들은 불도를 닦기보다 살림 밑천을 장만하는 데 정신이 없고 여자들과 사통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죽은 뒤에도 제자가 법손(法孫)이라고 주장하며 살림과 노예를 물려받겠다고 야단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개국 초 이 폐단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될 것인즉 도당에서는 엄중히 조처하라.
방원, 복수의 칼
이상우 작가
2024.04.1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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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 줄 아느냐? 내가 바로 천하의 회안 대군 나으리를 모시는 석구지다. 빨리 그 여자를 내놓지 않으면 요절이 날 줄 알아라.”이 일은 정안군 측에는 큰 악재가 되었고, 정도전 측에는 호재였다. 이 일은 내시 김사행과 조순을 통해 과장되어 왕에게 보고되었다.석구지는 즉각 순군부에 끌려가 목이 베였다.노비들의 기강이 헤이해지자 정도전 측에서 노비의 기강을 세우는 일과 함께 대군을 중심으로 한 문무관들이 기르는 사병(私兵)을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정도전의 건의를 받아들여 노비를 관리하던 변정도감으로 하여금 철저히
방원, 복수의 칼
이상우 작가
2024.04.0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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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 모두가 정도전의 주변 인물이었고, 정도전의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인 정안군 방원의 측근들은 모두 소외되어 왕을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정안군 방원과 현비의 암투는 그 뿌리를 캐보면 개국 초 경처(京妻)에 불과한 강씨가 정식 왕비로 된 때부터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이 첫 번째 충돌을 한 것은 물론 왕세자를 책봉할 때였다.현비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왕이 먼저 세상을 하직할 경우 자신과 두 아들, 즉 방번과 방석 그리고 딸 경순궁주의 운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처인 한씨 소생의 다섯 아들과 두 딸의 시샘으
방원, 복수의 칼
이상우 작가
2024.03.2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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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세는 아까부터 자기와 함께 병졸의 모양을 유심히 보고 있던 젊은이를 보고 물었다. 흰 도포에 흰 베를 두른 갓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신분은 짐작키 어려웠다.“피냄새가 납니다. 왕권이 또 어디로 갈 것인지…….”사나이는 김용세를 돌아보지도 않고 깜짝 놀랄 말을 내뱉었다.“노형, 인사는 없소만 말씀이 지나친 것 같소이다.”관복 차림의 김용세를 의식하고 그가 한 말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가 없다고 김용세는 생각했다.“미안하오, 그러나…….”그때서야 사나이가 김용세를 돌아보았다.“나는 서운관 승으로 있는 김용세라고 합니다. 북악
방원, 복수의 칼
이상우 작가
2024.03.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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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옛 땅인 만주는 동북 3성, 러시아 동쪽 끝까지 한민족의 터전이었고, 우리가 살았던 기간이 잃어버린 기간보다 훨씬 길다. 엄청난 유적과 유물이 있으며 5,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민족의 기상이 배어있고, 항일독립운동이 펼쳐진 주요 활동무대였다. 역사적으로 만주를 장악한 민족이 강대국이 되었다. 고구려, 발해,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가 그러했다.우리나라는 역사상 크고 작은 외침이 930여 회 된다. 그중 일본의 720여 회 침략을 제외한 200여 회는 중국 및 북방 민족에 의한 것이었다. 고구려가 7세기
우종철의 일요논단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2024.03.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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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상시의 박사들과 서운관 관원들이 다시 능터를 잡기 위해 양주 모악 등의 산을 헤맸다. 여러 후보지 중에 윤신달 판사가 천거한 조산(朝山 관악)을 가장 좋은 후보지로 뽑고 왕이 직접 보기 위해 어가의 행차가 다시 이루어졌다.그러나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광화문을 나서 광통교를 건너 남문으로 향하던 전하가 돌연 어가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수행하던 좌승지 정탁을 보고 물었다.“저기 오른쪽 조그만 언덕이 있는 곳이 보이느냐? 거기가 어디냐?”“예, 그곳은 한양 성내 서부 취현방이란 곳입니다. 넘어가면 서문이 보입니다.”정탁은 영문을 몰
방원, 복수의 칼
이상우 작가
2024.02.2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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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장에서 인정받아 전하께서 내리신 벼슬 자리에 있고 천문 지리에 관해서는 배울 만큼 배운 놈입니다. 그런데 왜 애매한 이놈의 할아버지까지 욕보이십니까?”김용세는 내친김이라 생각하고 할 말을 다해 버렸다.“아니, 놈이라니? 어따 대고 놈이라고?”유한우가 팔을 걷어붙이며 펄펄 뛰었다.“김용세의 말에도 일리는 있지.”아까부터 마음 속으로 꽁하고 있던 이양달이 김용세를 거들고 나섰다.“일리는 무슨 얼어죽을 일리야!”이번에는 배상충이 유한우 편을 들고 나섰다. 네 사람이 어울러 맞고함을 지르고 싸우기 시작했다. 이때 좀 떨어진 곳에서
방원, 복수의 칼
이상우 작가
2024.02.2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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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비에는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미군엔 ‘적진에 단 한 명도 남기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는 신조가 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적진에 억류된 포로를 구한다는 전통이 미군을 ‘세계 최강군’으로 만들었다.2023년 7월 27일은 6·25전쟁 ‘정전(停戰)협정 70주년’이다. 전쟁 중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기틀을 닦았고, 정전 직후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 중흥의 주춧돌이 됐
우종철의 일요논단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2023.08.0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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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고려와 조선의 가교역을 한 시대의 지성으로 조선 불교의 초석을 세운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가 쓴 시다. 이 불후의 시는 김용임의 ‘훨훨훨’의 노래를 통해 7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 국민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나옹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였고,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스승이었다. 나옹은 경북 영덕에서 아서구(牙瑞具)와 정(鄭)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법명은
우종철의 일요논단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2023.06.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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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을 당한 장미영은 그러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김인세의 목을 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육체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꼭 껴안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눈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런 기묘한 곳에서 타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육중한 구리의 날개를 편 보신각종은 젊은 연인의 뜨거운 사랑을 감싼 채 침묵하고 있었다. 김인세의 손이 장미영의 가슴에서 아랫배로 가다가 마침내 스커트를 헤집고 들어갔다. 광교에서 종로로 달려오는 트럭의 엔진 소리가 숨 가쁘게 들렸다. 종속의 포효는 타종 할 때만 있는 것은 아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권경희 작가
2022.08.12 1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