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실이 최종 결심을 하기까지 몇 달이 흘렀다. 언니와도 상의하고 다니는 교회 목사와도 의논했다. 결국 윤실은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갔다.“지금 나이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능성은 높습니다.”윤실은 의사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기형이나 다른 부작용은 없을까요?”“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는 거의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윤실은 의사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산부인과학회 윤리규정에는 반드시 배우자의 허락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라... 어떻게 되나?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5.08 18:36
-
인터넷을 보는 동안 수원은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느 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는 아버지. 아버지가 사라진 해도 1978년, 장소도 파리였다.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미국에 있는 어머니였다.“거기, 괜찮니?”어머니가 대뜸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뭐가요?”“북에서 핵미사일을 쏘았다며? 여기선 한국에서 전쟁 난다고 야단이다.”“무슨 말씀이라고. 아무 문제 없어요. 오히려 미국 경제 때문에 교포들 굶지나 않을까 걱정인데요.”“정말이니? 어쨌든 몸조심해라. 네가 어떻게 해서 이 세상에 나온 아이인데...”어머니의 말끝에 물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5.01 17:42
-
“이제 고속도로 램프까지 진입했어요.”“램프라고요? 하하하. 빨리 속도를 내셔야겠네요.”성민이 과장되게 웃었다.“그쪽은 진도가 얼마나 나갔는데요?”이번에는 유미가 역습을 했다.“우린 고속도로 지나온 지 한참 됐어.”수원이 재빨리 대답했다. 성민이 수원을 쳐다보았다.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 챈 유미가 황급히 화제를 바꾸었다.“그러고 보니 세 사람이 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네요.”유미는 수원과 성민, 세찬을 둘러보며 말했다.“세 사람이요?”“네. 세찬 씨도 핵과 관계가 있답니다.”“국제 정치학을 가르치신다면서요?”성민이 물었다.“맞습니다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4.17 17:16
-
“어머, 너...”수원은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오랜만에 본 유미는 너무도 변해 있어 낯선 느낌까지 주었다. 동양철학을 공부하며 사색을 즐기던 모습은 간 데 없었다.“우리 진짜 인연이다. 파리가 아닌 한국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언제 들어왔어? 무슨 일 하고 있는 거야?”고유미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 부었다.“들어온 지 얼마 안 돼.”“어머, 내 정신 좀 봐. 인사해요. 여기는 한수원 박사. 파리대학 친구.”유미가 남자에게 수원을 소개했다.“정세찬입니다. 이름처럼 세찬 사람은 아니고요.”까무잡잡한 얼굴에 유행이 지난 양복을 입고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4.10 17:46
-
수원은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언제나 한국을 그리워했다. 외국 생활에 따른 소외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머니 김윤실의 영향이 더 컸다.“할아버지는 독립군이었어. 만주 벌판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지. 만석꾼 땅을 다 팔아 후손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못하셨지만, 더 큰것을 물려주셨지. 바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야.”어머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삶을 자랑스럽게 말해 주었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수원에게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주려는 듯했다.“아버지도 조국을 위해 일하셨어. 정부 비밀 요원으로 목숨을 걸고 활약하다 돌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4.03 16:29
-
강병욱 처장은 일에 대한 신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한국의 원전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대단했다. 처음 수원에게 연락을 취해 왔던 날도 똑같았다.“한수원 박사시죠?”“네. 그렇습니다.”“저는 한국수력원자력 주식회사의 강병욱 정책처장입니다.”강 처장은 구구한 설명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발표하신 주제어시스템 논문을 보고 우리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분이라 생각해서 연락 드렸습니다.”강 처장은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고국을 위해 일하시지 않겠습니까?”우리 대한민국, 고국이라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3.27 18:03
-
만찬을 하는 동안에도 수원은 사장과 알제리 상공회의소 회장 옆에 앉아 통역을 했다.“한국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매년 수만 명이 우리나라를 찾고 있습니다.”김 사장은 식사를 하면서도 한국 원자력 기술에 대해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수만 명이나?”알제리 회장은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처음 원자력 발전에 뛰어들었을 때 비판적인 사람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사람은 망한다’고 경고하기도 했었지요.”“하하하.”알제리 사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수원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 파리대학에 있는 대한항공 902편 강제 착륙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3.20 17:45
-
수원은 침대에 누웠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인테이크에 침입하려다 익사한 사람, 그가 갖고 있던 지도와 암호 같은 그림과 글자, 아나톨리, 옛 애인 배성민의 전화.갑자기 모든 게 뒤죽박죽 얽히는 것 같았다.다음 날 오후. 수원은 창문 밖으로 희뿌연 산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울산 발 서울행 비행기 안이었다. 서울 삼성동의 콘티넨탈 호텔로 가는 중이었다. 그곳에서 한국형 대용량 원자력발전소 개발에 대한 설명회가 있기 때문이었다.호텔 컨벤션홀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 알제리 상공인들이었고, 국내 참석자들은 전부 소장이나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3.13 18:14
-
‘아나톨리 케레포프!’ 수원은 너무 놀라 숨을 헉 몰아쉬었다술이 한 순배씩 돌자 곧 화제가 낮에 있었던 변사체로 옮겨갔다. 김승식 부장이 새로운 정보를 내놓을 태세로 말을 꺼냈다.“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물건 중 미심쩍은 게 있었는데, 그게 우리와 관련이 있더라고.”“그래요?”수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고리에 있는 두 발전소의 인근 지도와 서생면 해류도를 가지고 있었거든.”“서생면이라고요?”영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생면은 신 고리 발전소 3, 4호기가 건설되고 있는 지역이었다. 한국형 대용량 원자력 발전소의 최초(빼시오) 건설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3.06 17:31
-
영준은 자신 있게 말하면서도 재빨리 핸드폰을 열고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초소에 있던 경비원 두 사람이 달려왔다.“주 차장님, 어딥니까?”제복을 입은 경비원이 다급하게 물었다.“저기! 붉은색과 푸른색 물체. 아무래도 사람 같습니다.”“정말이네요. 어디서 흘러들어 왔을까요?”경비원은 여기 저기 전화를 걸었다. 5분도 안 되어 작은 배 한 척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마치 바다 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나온 것처럼 신속했다.“이곳을 담당한 해양경찰대입니다.”영준이 수원에게 나직하게 설명했다.금세 방파제 위로 사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2.28 17:33
-
1. 끓는 바다바다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하얗게 반짝이는 수없이 작은 파도. 고기 떼의 은빛 비늘이었다.“아니, 저게 고기 떼 맞나요?”한수원이 발걸음을 멈추고 원자력발전소 제방 아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맞아요. 숭어 떼랍니다.” 나란히 걷던 주영준 차장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따뜻한 물을 좋아해서 수온이 3, 4도만 올라가도 이렇게 모여듭니다. 돔 종류와 고등어 떼도 많이 몰려든답니다. 그야말로 여기는 물 반, 고기 반입니다.”작은 키에 단단한 어깨, 꾹 다문 입술이며 네모반듯한 이마가 규칙으로 똘똘 뭉친 사람 같았다.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2.21 17:54
-
요즘 세상의 화두는 지구 온난화다. 시간이 갈수록 더워져가는 혹성, 지구는 마침내 종말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두려운 미래를 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 CO2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 방법은 친 자연 에너지 개발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CO2가 제로인 원자력 발전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그린 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세계는 원자력 발전 경쟁시대에 돌입했다. 그러나 원자력은 인류를 멸망시킬지 모르는 방사선의 위험, 핵무기의 제조 등 엄청난 위협도 함께 가지고 있다. 양면의 얼굴을 가진 핵, 이제 국가뿐 아
소설
온라인뉴스팀
2020.02.14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