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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의 폭염이 지나고 아침 저녁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9월이 오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류작전 모습이 떠 오른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15일 인천에 상륙함으로써 낙동강까지 점령해 내려가있던 북한 공산군의 허리를 잘라 괴멸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인천 상륙은 북한 점령군과 남로당 완장을 찬 빨갱이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자행되고 있었던 ‘반동 학살’을 중간에서 차단할 수 있었다. 맥아더는 대한민국을 적화로 부터 구해준 수호자이고 은인임이 틀림없다. 그런 은인을 근년 반미친북 분자들이 ‘분단의 원흉’ ‘생명을 앗아간 원수’ ‘학살자’ 라고 공공연히 외쳐댄다. 심지어 그들은 맥아더의 동상마저 끌어내리고자 작년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8월에는 미국의 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내한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9.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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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월의 폭염이 지나고 아침 저녁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9월이 오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류작전 모습이 떠 오른다.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15일 인천에 상륙함으로써 낙동강까지 점령해 내려가있던 북한 공산군의 허리를 잘라 괴멸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인천 상륙은 북한 점령군과 남로당 완장을 찬 빨갱이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자행되고 있었던 ‘반동 학살’을 중간에서 차단할 수 있었다. 맥아더는 대한민국을 적화로 부터 구해준 수호자이고 은인임이 틀림없다. 그런 은인을 근년 반미친북 분자들이 ‘분단의 원흉’ ‘생명을 앗아간 원수’ ‘학살자’ 라고 공공연히 외쳐댄다. 심지어 그들은 맥아더의 동상마저 끌어내리고자 작년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8월에는 미국의 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내한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9.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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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말 과거사 청산의 목적에 대해 밝혔다. 그는 “과거사에 대한 어떤 정리가 없이는 화해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사과도 하고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해 해원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과거사 정리 없이는 화해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가해자측이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선 사과 - 후 화해’ 수순을 말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노대통령은 가해자인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과거사 정리없인 화해란 있을 수 없다며 엄격히 과거사를 추궁한다. 그러나 그는 가해자인 북한에 대해서는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 국민들을 경악케 하며, 2중 잣대로 임한다. 노대통령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반드시 뿌리를 뽑겠다.”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9.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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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말 과거사 청산의 목적에 대해 밝혔다. 그는 “과거사에 대한 어떤 정리가 없이는 화해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사과도 하고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해 해원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과거사 정리 없이는 화해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가해자측이 먼저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선 사과 - 후 화해’ 수순을 말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노대통령은 가해자인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과거사 정리없인 화해란 있을 수 없다며 엄격히 과거사를 추궁한다. 그러나 그는 가해자인 북한에 대해서는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 국민들을 경악케 하며, 2중 잣대로 임한다. 노대통령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반드시 뿌리를 뽑겠다.” “각박한 외교전쟁도 있을 수 있다”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9.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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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영국 두 교육부 장관의 상반된 퇴장 모습을 비교해 보며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추한 사퇴 과정과 에스텔 모리스 영국 교육부 장관의 아름다운 퇴장이 너무 대조적이었다는데서 그렇다. 김부총리는 정치권과 여론이 사퇴하라고 호통을 치는데도 “사퇴는 무슨 사퇴냐”며 버티다 끝내 쫓겨났다. 그에 반해 모리스 장관은 제발 사퇴하지 말아달라고 총리까지 나서서 말렸지만, “능력이 부족해 물러납니다”며 겸허히 자리를 떠났다. 김병준씨는 교수 시절 한양대와 국민대 학술지에 제목만 바꿔 같은 논문을 실었다. 재탕한 것이다. 이것이 발각되자, 그는 “실무자인 조교의 행정적 실수”라고 했다. 그는 또 이 두 논문들을 후에 ‘두뇌한국(BK)21’ 연구 실적으로 중복 보고하기도 했다. 조교는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9.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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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영국 두 교육부 장관의 상반된 퇴장 모습을 비교해 보며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추한 사퇴 과정과 에스텔 모리스 영국 교육부 장관의 아름다운 퇴장이 너무 대조적이었다는데서 그렇다. 김부총리는 정치권과 여론이 사퇴하라고 호통을 치는데도 “사퇴는 무슨 사퇴냐”며 버티다 끝내 쫓겨났다. 그에 반해 모리스 장관은 제발 사퇴하지 말아달라고 총리까지 나서서 말렸지만, “능력이 부족해 물러납니다”며 겸허히 자리를 떠났다. 김병준씨는 교수 시절 한양대와 국민대 학술지에 제목만 바꿔 같은 논문을 실었다. 재탕한 것이다. 이것이 발각되자, 그는 “실무자인 조교의 행정적 실수”라고 했다. 그는 또 이 두 논문들을 후에 ‘두뇌한국(BK)21’ 연구 실적으로 중복 보고하기도 했다. 조교는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9.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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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국내 친북 세력은 과거 북의 잔인무도한 만행들을 거꾸로 남한이 저지른 것이라고 뒤집어 씌우곤 한다. 6·25 남침은 남한에 의한 ‘북침’, 생명을 건 이승복 어린이의 반공 절규는 남한 신문기자가 꾸며낸 ‘소설’, KAL 858기 공중폭파는 남한 정보부에 의한 소행,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간첩 사건도 남한 정보부의 ‘조작’이라고 주장 해왔다. 그밖에도 진실 뒤집기를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특히 친북 세력의 북한 만행 덮어씌우기는 서울에 친북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때를 만난듯 더욱 극성를 부린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라는 것을 생뚱맞게 새로 만들었다. 이 과거사위는 이미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결론난 KAL기와 중부지역당 간첩 사건 조사에 다시 착수했다.
정용석의 서울시평
정용석
2006.09.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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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국내 친북 세력은 과거 북의 잔인무도한 만행들을 거꾸로 남한이 저지른 것이라고 뒤집어 씌우곤 한다. 6·25 남침은 남한에 의한 ‘북침’, 생명을 건 이승복 어린이의 반공 절규는 남한 신문기자가 꾸며낸 ‘소설’, KAL 858기 공중폭파는 남한 정보부에 의한 소행,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간첩 사건도 남한 정보부의 ‘조작’이라고 주장 해왔다. 그밖에도 진실 뒤집기를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특히 친북 세력의 북한 만행 덮어씌우기는 서울에 친북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때를 만난듯 더욱 극성를 부린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라는 것을 생뚱맞게 새로 만들었다. 이 과거사위는 이미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결론난 KAL기와 중부지역당 간첩 사건 조사에 다시 착수했다.
정용석의 서울시평
정용석
2006.09.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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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7월 25일 국무회의 발언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한 때 외교 수장을 지낸 한 노 신사는 “한 마디로 정신 나간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노 대통령의 7·25 발언이 “정신 나간 소리”라는 말을 듣게 된데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외교적인 망발이었고, 북한에 대한 비위맞추기였으며, 국회 고유권한에 대한 침해였다. 뿐만 아니라 장관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틀 전 국민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미국 때리기 발언을 감싸고 나섰다. 이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강행과 관련해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한 것”이라고 엉뚱하게도 미국에 책임을 떠넘겼다. 제일 많이 실패한 것은 북한에 마구 퍼주며 비위맞춰주면서도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한 노 대통령과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8.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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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7월 25일 국무회의 발언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한 때 외교 수장을 지낸 한 노 신사는 “한 마디로 정신 나간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노 대통령의 7·25 발언이 “정신 나간 소리”라는 말을 듣게 된데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외교적인 망발이었고, 북한에 대한 비위맞추기였으며, 국회 고유권한에 대한 침해였다. 뿐만 아니라 장관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틀 전 국민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미국 때리기 발언을 감싸고 나섰다. 이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강행과 관련해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한 것”이라고 엉뚱하게도 미국에 책임을 떠넘겼다. 제일 많이 실패한 것은 북한에 마구 퍼주며 비위맞춰주면서도 미사일 발사를 막지 못한 노 대통령과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8.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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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의원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대변인이 아닌지 의심케 하는 말을 계속 쏟아 내고 있다. 그 장본인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감투까지 쓰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김원웅 의원이다. 1949년 초 국회에 침투해 남한 적화를 획책했던 국회 의원 프락치 사건이 문득 떠 오른다. 이 사건은 당시 일부 의원들이 남로당 프락치로서 비밀 지령을 받고 버젓이 반미친북 활동을 벌이다 체포된 것을 지칭한다. 그들은 의원 신분을 보호막으로 삼아 남로당 지령대로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면서 공공연히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폐지 등을 주장했고, 그것들을 담은 결의안까지 국회에 상정했다.그들의 붉은 암약상은 월북한 박헌영에게 암호로 건넨 비밀공작 보고서가 적발됨으로써 낱낱이 드러나고 말았다. 김약수 국회 부의장까지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7.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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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의원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대변인이 아닌지 의심케 하는 말을 계속 쏟아 내고 있다. 그 장본인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 감투까지 쓰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김원웅 의원이다. 1949년 초 국회에 침투해 남한 적화를 획책했던 국회 의원 프락치 사건이 문득 떠 오른다. 이 사건은 당시 일부 의원들이 남로당 프락치로서 비밀 지령을 받고 버젓이 반미친북 활동을 벌이다 체포된 것을 지칭한다. 그들은 의원 신분을 보호막으로 삼아 남로당 지령대로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우면서 공공연히 주한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폐지 등을 주장했고, 그것들을 담은 결의안까지 국회에 상정했다.그들의 붉은 암약상은 월북한 박헌영에게 암호로 건넨 비밀공작 보고서가 적발됨으로써 낱낱이 드러나고 말았다. 김약수 국회 부의장까지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7.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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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002년의 “대통령 선거의 전 과정을 통해 ‘참여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고 선언했다. 그후 그는 ‘참여 민주주의’라는 말을 즐겨 썼다. 그는 자신의 정권을 ‘참여 정부’라며 국민들의 참여와 열린 정치를 펴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는 민주당을 탈당해 새로 창당한 집권 여당의 이름도 ‘열린우리당’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국민들의 열린 의견 수렴과 참여를 위해 장관부터 공개 모집한다며 국민들로부터 1870명이나 추천받았다. 하지만 그는 첫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구성부터 친북좌파 운동권 또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로 대부분 채웠다. 국민들이 장관후보로 추천한 1870명은 ‘참여 정치’를 띄우기 위한 둘러리였다. ‘열린’ ‘참여’라는 것이 열린 자유민주 참여가 아니요,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7.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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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2002년의 “대통령 선거의 전 과정을 통해 ‘참여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고 선언했다. 그후 그는 ‘참여 민주주의’라는 말을 즐겨 썼다. 그는 자신의 정권을 ‘참여 정부’라며 국민들의 참여와 열린 정치를 펴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다. 그는 민주당을 탈당해 새로 창당한 집권 여당의 이름도 ‘열린우리당’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국민들의 열린 의견 수렴과 참여를 위해 장관부터 공개 모집한다며 국민들로부터 1870명이나 추천받았다. 하지만 그는 첫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구성부터 친북좌파 운동권 또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로 대부분 채웠다. 국민들이 장관후보로 추천한 1870명은 ‘참여 정치’를 띄우기 위한 둘러리였다. ‘열린’ ‘참여’라는 것이 열린 자유민주 참여가 아니요,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7.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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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무더기로 발사한 북한 미사일 실험의 궁극적 목적은 남조선 공산화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붉은 미사일 발사의 도발과 위협을 축소하고 덮어주는데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정권은 남북한 둘 중 어느쪽을 위한 권력인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압박행위”라고 했다. 노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들을 연겨푸 쏘아올린지 이틀이 지나도록 북한에 대고 항의 한마디 못했다. 청와대측은 “강경입장을 밝히면 불안 상황이 증폭”되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심지어 “스커드와 노동미사일은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아니다”라고 우기기도 했다.노정권의 저같은 축소 왜곡 저의는 뻔하다. 국민들이 불안해할까 걱정돼서가 아니다. 그동안 북한에 퍼주면서 미사일과 핵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7.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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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무더기로 발사한 북한 미사일 실험의 궁극적 목적은 남조선 공산화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붉은 미사일 발사의 도발과 위협을 축소하고 덮어주는데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정권은 남북한 둘 중 어느쪽을 위한 권력인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청와대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압박행위”라고 했다. 노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들을 연겨푸 쏘아올린지 이틀이 지나도록 북한에 대고 항의 한마디 못했다. 청와대측은 “강경입장을 밝히면 불안 상황이 증폭”되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심지어 “스커드와 노동미사일은 직접적인 안보위협이 아니다”라고 우기기도 했다.노정권의 저같은 축소 왜곡 저의는 뻔하다. 국민들이 불안해할까 걱정돼서가 아니다. 그동안 북한에 퍼주면서 미사일과 핵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7.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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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 지휘관과의 대화에서 ‘자주국방’이 ‘반미’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자주국방이 “반미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친미의 자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과의 관계는 우호적인 자주관계로 가져갈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가 ‘작전통제권’을 갖고 우리 장수들을 데려다 볼기를 치고 임금까지 바꿔버리겠다고 했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이어 “남에게 의지해 우리의 미래를 맡기면 번번이 실패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노대통령의 저같은 계룡대 발언은 앞뒤가 서로 맞지않아 혼란스럽다. 뿐만아니라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자주국방이 반미가 아니라는 뜻을 전달하려 했으나 도리어 반미감정을 충동했다. 그밖에도 그는 역사를 잘못 원용했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7.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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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계룡대에서 열린 전군 지휘관과의 대화에서 ‘자주국방’이 ‘반미’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자주국방이 “반미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친미의 자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과의 관계는 우호적인 자주관계로 가져갈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가 ‘작전통제권’을 갖고 우리 장수들을 데려다 볼기를 치고 임금까지 바꿔버리겠다고 했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이어 “남에게 의지해 우리의 미래를 맡기면 번번이 실패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노대통령의 저같은 계룡대 발언은 앞뒤가 서로 맞지않아 혼란스럽다. 뿐만아니라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자주국방이 반미가 아니라는 뜻을 전달하려 했으나 도리어 반미감정을 충동했다. 그밖에도 그는 역사를 잘못 원용했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7.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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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부터 대한민국은 4년 전 한·일 월드컵 때와 같이 독일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토고를 이긴데 이어 유럽 최강의 프랑스와 비기면서 우리 국민들의 기대와 환호는 하늘을 찌를듯 치솟았다. 그러나 필자는 멀리 독일 축구 경기장에서 자랑스럽게 뛰고 있는 우리 선수들과 열기에 가득찬 국민들의 응원 모습 뒤로 착잡한 마음이 교차했다. 4년 전 이맘 때 피로 얼룩진 서해 교전의 처참한 광경이 떠올랐다는데서 그렇다. 2002년 6월29일 오후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질 한국-터키의 3·4위 전을 응원하기 위해 250여만명의 인파가 오전부터 전국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이었다. 오전 10시25분, 북한 해군 함정이 서해 연평도 앞 북방한계선(NLL)을 깊숙이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6.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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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부터 대한민국은 4년 전 한·일 월드컵 때와 같이 독일 월드컵 경기에 열광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토고를 이긴데 이어 유럽 최강의 프랑스와 비기면서 우리 국민들의 기대와 환호는 하늘을 찌를듯 치솟았다. 그러나 필자는 멀리 독일 축구 경기장에서 자랑스럽게 뛰고 있는 우리 선수들과 열기에 가득찬 국민들의 응원 모습 뒤로 착잡한 마음이 교차했다. 4년 전 이맘 때 피로 얼룩진 서해 교전의 처참한 광경이 떠올랐다는데서 그렇다. 2002년 6월29일 오후 대구 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질 한국-터키의 3·4위 전을 응원하기 위해 250여만명의 인파가 오전부터 전국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이었다. 오전 10시25분, 북한 해군 함정이 서해 연평도 앞 북방한계선(NLL)을 깊숙이
정용석의 서울시평
2006.06.28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