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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 서울 강북의 성수동과 강남의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다리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의 상판 48m가 한강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어이없는 다리 붕괴로 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가던 출근길의 시민과 학생 32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끊긴 다리와 휴지처럼 구겨진 채 뒤집힌 버스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들, 사고현장의 처참한 모습에 온 국민은 경악했다. 다리의 미관을 고려해 트러스 공법으로 건설된 성수대교는 부실시공과 관리부실로 개통된 지 15년만에 무너져 버려 ‘건설한국’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고도성장과정에서 잉태된 총체적 부실의 현장이 된 성수대교는 전면 재 시공돼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3년 뒤인 97년 7월 재개통됐다.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10.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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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 서울 강북의 성수동과 강남의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다리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의 상판 48m가 한강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어이없는 다리 붕괴로 버스와 승용차를 타고 가던 출근길의 시민과 학생 32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끊긴 다리와 휴지처럼 구겨진 채 뒤집힌 버스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와 부상자들, 사고현장의 처참한 모습에 온 국민은 경악했다. 다리의 미관을 고려해 트러스 공법으로 건설된 성수대교는 부실시공과 관리부실로 개통된 지 15년만에 무너져 버려 ‘건설한국’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고도성장과정에서 잉태된 총체적 부실의 현장이 된 성수대교는 전면 재 시공돼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3년 뒤인 97년 7월 재개통됐다.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10.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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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0월 14일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 영동고속도로가 착공 1년 반만에 개통됐다. 총공사비 29억여원. 공사연인원 225만명에 연 25만대의 공사장비가 투입된 영동동해고속도로. 새로 뚫린 길을 따라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 도착한 박정희 대통령은 동해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해 공사관계자들을 격력했다. 새로 개통된 영동고속도로는 동해안 지역의 균형있는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 실시"군사정부의 민정이양 방침에 따라 제 5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45일전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민정당 윤보선 전대통령의 대결로 압축된 제 5대 대통령 선거.선거결과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승리로 나타났다. 5·16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지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10.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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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0월 14일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 영동고속도로가 착공 1년 반만에 개통됐다. 총공사비 29억여원. 공사연인원 225만명에 연 25만대의 공사장비가 투입된 영동동해고속도로. 새로 뚫린 길을 따라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 도착한 박정희 대통령은 동해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해 공사관계자들을 격력했다. 새로 개통된 영동고속도로는 동해안 지역의 균형있는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1963년 10월 15일 "제5대 대통령 선거 실시"군사정부의 민정이양 방침에 따라 제 5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45일전 육군대장으로 예편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민정당 윤보선 전대통령의 대결로 압축된 제 5대 대통령 선거.선거결과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승리로 나타났다. 5·16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지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10.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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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0월 7일 "미국 베트남과 교전 " 미국 공수여단이 베트남의 남부연안에서 북베트남군과 교전을 벌였다. 3년전인 1963년부터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미군은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베트콩을 색출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 막강한 화력과 헬리콥터를 이용해 공격 목표지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하며 베트콩을 소탕했다. 이에 반해 베트콩은 매복과 기습공격으로 미군을 괴롭혔다. 1945년 10월 8일 "미군7사단 한국 진주"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 24군단 예하 7사단 병력이 한국에 처음 도착했다. 미군이 주둔한 학교에 성조기가 게양됐다.미군의 진주는 공식적으로는 연합군과 일본간에 맺어진 종군 협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소련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응급조치였다. 서울에 진주한 미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10.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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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0월 7일 "미국 베트남과 교전 " 미국 공수여단이 베트남의 남부연안에서 북베트남군과 교전을 벌였다. 3년전인 1963년부터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미군은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베트콩을 색출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다. 막강한 화력과 헬리콥터를 이용해 공격 목표지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하며 베트콩을 소탕했다. 이에 반해 베트콩은 매복과 기습공격으로 미군을 괴롭혔다. 1945년 10월 8일 "미군7사단 한국 진주"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 24군단 예하 7사단 병력이 한국에 처음 도착했다. 미군이 주둔한 학교에 성조기가 게양됐다.미군의 진주는 공식적으로는 연합군과 일본간에 맺어진 종군 협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상징적으로는 소련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응급조치였다. 서울에 진주한 미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10.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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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9월 30일 "뉘렌베르크 전범재판 종료" 나치전범 처리를 위한 뉘렌베르크 재판이 1945년 10월초 시작됐다. 재판은 216차례의 공판 끝에 1946년 막을 내렸다. 나치전범 19명에 대한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나치당 총비서였던 보오만을 포함한 12명은 교수형, 부총통을 지낸 루돌프에스 3명은 종신형, 나머지 4명은 10년에서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나치의 주역들은 역사적인 현장 뉘렌베르크에서 인류와 역사의 준염한 심판을 받았다. 1956년 10월 1일 "제1회 국군의 날 기념식 "제1회 국군의 날 기념식이 육·해·공군 합동으로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에 앞서 지난 달 열린 국무회의는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결정했다. 기념식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국회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10.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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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9월 30일 "뉘렌베르크 전범재판 종료" 나치전범 처리를 위한 뉘렌베르크 재판이 1945년 10월초 시작됐다. 재판은 216차례의 공판 끝에 1946년 막을 내렸다. 나치전범 19명에 대한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나치당 총비서였던 보오만을 포함한 12명은 교수형, 부총통을 지낸 루돌프에스 3명은 종신형, 나머지 4명은 10년에서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나치의 주역들은 역사적인 현장 뉘렌베르크에서 인류와 역사의 준염한 심판을 받았다. 1956년 10월 1일 "제1회 국군의 날 기념식 "제1회 국군의 날 기념식이 육·해·공군 합동으로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이에 앞서 지난 달 열린 국무회의는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결정했다. 기념식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국회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10.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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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9월 23일 "천재소년음악가 고별연주"서울 배재중학교 강당에서 두 소년 음악가의 연주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당시 연희초등학교 6학년 바이올리니스트 이희춘군과 배재중학교 1학년 피아니스트 한동일군의 무대였다. 스웨덴으로 음악유학을 떠나기 전에 여는 두 소년의 마지막 연주회. 관중들은 두 천재소년의 뛰어난 연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이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1966년 9월 24일 "육사 화랑대 준공식"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새 사열대인 화랑대 준공식이 거행됐다.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고위 장성, 육사 제2기 졸업생이 참석했다.화랑대는 20년전 이날 같은 자리에서 입교식을 가졌던 육사2기생들이 모교를 위한 기념사업의 하나로 세웠다. 준공식에서 육사2기생인 박정희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9.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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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9월 23일 "천재소년음악가 고별연주"서울 배재중학교 강당에서 두 소년 음악가의 연주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당시 연희초등학교 6학년 바이올리니스트 이희춘군과 배재중학교 1학년 피아니스트 한동일군의 무대였다. 스웨덴으로 음악유학을 떠나기 전에 여는 두 소년의 마지막 연주회. 관중들은 두 천재소년의 뛰어난 연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이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1966년 9월 24일 "육사 화랑대 준공식"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새 사열대인 화랑대 준공식이 거행됐다.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고위 장성, 육사 제2기 졸업생이 참석했다.화랑대는 20년전 이날 같은 자리에서 입교식을 가졌던 육사2기생들이 모교를 위한 기념사업의 하나로 세웠다. 준공식에서 육사2기생인 박정희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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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9.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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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9월 10일 "미국 제2사단 한국에서 철수 " 미군 제 2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기에 앞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에 앞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5개월 뒤인 1953년 12월 주한미육군을 2개사단만 남기고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군 증강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주한미군은 서서히 철수시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주한미군은 55년 초까지 2개사단만 남게 됐다. 1997년 9월 12일 "박나리양 유괴·살해범 검거"박초롱초롱 빛나리양을 유괴한 뒤 살해한 전현주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범인 전씨는 낭비벽 때문에 지게 된 2천여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박나리양을 유괴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괴된 뒤 살아있기를 온 국민이 기원했던 박초롱초롱 빛나리양. 곰인형을 좋아했던 8살 철부지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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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9월 10일 "미국 제2사단 한국에서 철수 " 미군 제 2사단이 한국에서 철수하기에 앞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에 앞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협정이 조인된지 5개월 뒤인 1953년 12월 주한미육군을 2개사단만 남기고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군 증강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주한미군은 서서히 철수시키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주한미군은 55년 초까지 2개사단만 남게 됐다. 1997년 9월 12일 "박나리양 유괴·살해범 검거"박초롱초롱 빛나리양을 유괴한 뒤 살해한 전현주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범인 전씨는 낭비벽 때문에 지게 된 2천여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박나리양을 유괴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괴된 뒤 살아있기를 온 국민이 기원했던 박초롱초롱 빛나리양. 곰인형을 좋아했던 8살 철부지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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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9일 "중국 모택동 사망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조기로 게양됐다.중국공산당주석 모택동이 82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을 알리는 조기였다. 모택동의 시신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중국공산당간부들과 일반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모택동은 28살때인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대회에서 호남성 지부의 서기로 공산당에 참가했다. 모택동은 집권기간 동안 미개발상태인 중국에 공업화의 토대를 마련하고 농민에게 농토를 분배하는 등 중국 민중의 신망을 얻었다. 1972년 9월 13일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서울 조선호텔에서 개막된 제 2차 남북적십자회담은 평양에서 제 1차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린지 만 14일만에 서울에서 열린 회담이었다. 이범석 한국적십자사 수석대표는 개회연설을 통해 적십자 정신과 인도주의 정신에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9.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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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9일 "중국 모택동 사망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조기로 게양됐다.중국공산당주석 모택동이 82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을 알리는 조기였다. 모택동의 시신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중국공산당간부들과 일반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모택동은 28살때인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대회에서 호남성 지부의 서기로 공산당에 참가했다. 모택동은 집권기간 동안 미개발상태인 중국에 공업화의 토대를 마련하고 농민에게 농토를 분배하는 등 중국 민중의 신망을 얻었다. 1972년 9월 13일 "제2차 남북적십자회담"서울 조선호텔에서 개막된 제 2차 남북적십자회담은 평양에서 제 1차남북적십자회담이 열린지 만 14일만에 서울에서 열린 회담이었다. 이범석 한국적십자사 수석대표는 개회연설을 통해 적십자 정신과 인도주의 정신에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9.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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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9월 2일 "안중근 의사 출생 " 1909년 초대 조선 총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북만주의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의 충격을 가한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러시아 관원의 조사를 받고 일본측에 넘겨져 여순감옥에서 취조를 받은 안중근 의사는 취조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의 죄상을 낱낱이 지적하며 이토 히로부미 암살의 정당성을 밝혔다. 투옥기간중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는 등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21살의 나이로 역사의 이정표를 세운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39년 9월 3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영국과 프랑스가 나치독일에 대해 선전포고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의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9.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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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9월 2일 "안중근 의사 출생 " 1909년 초대 조선 총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북만주의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의 충격을 가한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러시아 관원의 조사를 받고 일본측에 넘겨져 여순감옥에서 취조를 받은 안중근 의사는 취조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의 죄상을 낱낱이 지적하며 이토 히로부미 암살의 정당성을 밝혔다. 투옥기간중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는 등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21살의 나이로 역사의 이정표를 세운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39년 9월 3일 "제2차 세계대전 발발"영국과 프랑스가 나치독일에 대해 선전포고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의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9.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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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 26일 "윤보선 대통령 64회 생일 " 예순네번째 생일을 맞은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송요찬 내각수반을 비롯한 정부관료, 그리고 각국 외교사절들의 축하인사를 받았다. 5·16 군사쿠데타가 성공하고 석달 뒤 맞은 생일 행사에 온 인사들과 정국이야기도 하지만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즐겁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7개월 뒤인 1962년 3월22일 윤보선 대통령은 군부세력과의 의견차이로 결국 하야하게 됐다. 비상소집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윤보선 대통령의 사임을 의결했다.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임했다. 1963년 대통령 선거때 윤보선씨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에 맞서 출마했지만 박정희 후보에게 15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1960년 8월 27일 "장면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8.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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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 26일 "윤보선 대통령 64회 생일 " 예순네번째 생일을 맞은 윤보선 대통령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송요찬 내각수반을 비롯한 정부관료, 그리고 각국 외교사절들의 축하인사를 받았다. 5·16 군사쿠데타가 성공하고 석달 뒤 맞은 생일 행사에 온 인사들과 정국이야기도 하지만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즐겁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7개월 뒤인 1962년 3월22일 윤보선 대통령은 군부세력과의 의견차이로 결국 하야하게 됐다. 비상소집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윤보선 대통령의 사임을 의결했다.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겸임했다. 1963년 대통령 선거때 윤보선씨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후보에 맞서 출마했지만 박정희 후보에게 15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1960년 8월 27일 "장면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8.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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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20일 북한 신포 경수로 착공식 북-미 제네바 협상에 따라 케도 즉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가 북한과 경수로 공급협정을 체결한 지 1년 8개월만에 북한의 함경남도 신포에서 경수로 부지 착공식이 열렸다. 케도가 2003년까지 북한에 1,000MW급 경수로 2기를 공급하는 대신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기로 한 협정에 따른 것이었다. 착공식은 케도와 북한측 대표연설에 이어 기념발파와 현장방문 등으로 이어졌다. 본 공사에 앞서 이날부터 시작된 원전부지 정리 작업에는 남북한 건설인력 200여명이 투입됐다. 그러나 경수로 건설비 부담을 둘러싸고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이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우리나라가 전체 건설비용의 70%인 3조5,000억원을 부담하게 됐다. 1968년 8월 20일 소련군 체코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8.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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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 20일 북한 신포 경수로 착공식 북-미 제네바 협상에 따라 케도 즉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가 북한과 경수로 공급협정을 체결한 지 1년 8개월만에 북한의 함경남도 신포에서 경수로 부지 착공식이 열렸다. 케도가 2003년까지 북한에 1,000MW급 경수로 2기를 공급하는 대신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기로 한 협정에 따른 것이었다. 착공식은 케도와 북한측 대표연설에 이어 기념발파와 현장방문 등으로 이어졌다. 본 공사에 앞서 이날부터 시작된 원전부지 정리 작업에는 남북한 건설인력 200여명이 투입됐다. 그러나 경수로 건설비 부담을 둘러싸고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이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우리나라가 전체 건설비용의 70%인 3조5,000억원을 부담하게 됐다. 1968년 8월 20일 소련군 체코
명리풍수
공문룡 칼럼니스트
2003.08.2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