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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18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⑱] 용산, 우리 땅이나 우리 땅이 아녔던 곳 2편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⑱] 용산, 우리 땅이나 우리 땅이 아녔던 곳 2편 원효로 3가 목월공원(木月公園)을 출발점으로 용산을 이어 걷는다. 이 코스는 옛사람들의 염원 공간이고, 근현대인들의 삶과 죽음의 공간들이다. 그 길을 걷노라면 그 자체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놓여있는 삶을 걷는 듯하다. 작은 언덕길을 지나면 평지가 있고, 또 배를 타지 않고는 건너기 막막한 큰 강이 곁에서 손짓하기도 한다. 찬바람에 실려 걷는 강변옆에는 근대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철길이 무겁게 첨단 도시와 1960년대에 머문 듯한 공간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 도심으로 들어오면 남산 자락 언덕이 굽이친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⑰] 용산, 우리 땅이나 우리 땅이 아녔던 곳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⑰] 용산, 우리 땅이나 우리 땅이 아녔던 곳 서울 한가운데 용산을 걷는다. 용산(龍山)의 유래에 대해서는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백제 기루왕 때 한강에서 용 두 마리가 나타났기에 용산, 산 형세가 용 모습을 닮아 용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절두산 잠두봉을 용두봉이라고도 했는데, 용산이 용 꼬리 부분에 해당되어 용산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다큐멘터리 서울정도육백년』, 제3권, 이경재, 서울신문사, 1993년). 어떤 주장이든 모두 ‘용’에 의해 생겨난 이름이다. 고려 때에도 용산이란 지명이 언급되고 있어 오랜 역사가 있음을 확인케 해 준다.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⑯-] 근현대의 현장, 정동길을 걷다 2편 : 한(恨)의 길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⑯-] 근현대의 현장, 정동길을 걷다 2편 : 한(恨)의 길 정동길을 이어 걷는다. 사람들은 「광화문연가」나, 덕수궁, 근현대사 역사 현장, 서양인의 공간, 기독교의 공간으로 알고 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620여 년 전으로 돌아가면 전혀 다른 공간이다. 조선 창업가 태조(太祖) 이성계(1335~1408, 재위 1392~1398)와 그의 계비(繼妃, 둘째 부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1356~1396)의 성공과 좌절, 수백 년 된 피눈물과 한(恨)이 서려 있는 곳이다. 또 다른 창업(대한제국)과 멸망도 그 좁은 공간에 있다. 1397년에 만들어진 도성(都城)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⑮] 근현대의 현장, 정동길을 걷다 1편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⑮] 근현대의 현장, 정동길을 걷다 1편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덕수궁 돌담길에 관한 노래들이 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주목받던 시대의 산물이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 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영훈 작사·작곡, 최현주·이문세·이수영 노래, 「광화문연가」) “덕수궁의 돌담길 옛날의 돌담길. 너와 나와 처음 만난 아카시아 피던 길. 정동교회 종소리 은은하게 울리면은 가슴이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⑭] 현대의 철인(哲人) 탄허 대사와 조선의 건설자 태종과 정도전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⑭] 현대의 철인(哲人) 탄허 대사와 조선의 건설자 태종과 정도전 가장 번화하고 땅값이 비싼 신도시 강남구와 서초구에도 뜻밖의 역사 유적이 있다.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고승이며 학자, 예언가였던 탄허(呑虛) 대사(1913~1983), 조선을 실질적으로 건국한 주인공들인 태종(太宗, 1367~1422)과 그의 정적(政敵) 삼봉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자취가 있는 곳이다. 지하철 3호선과 수인분당선이 만나는 수서역이 출발점이다. 6번 출구 성남, 분당, 세곡동 방면으로 나오면 5미터 앞 큰 길가에 ‘서울둘레길(양재시민의숲) 10.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⑬] 소명의 사람들과 난민의 안식처 : 마포 양화진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⑬] 소명의 사람들과 난민의 안식처 : 마포 양화진 삶은 다양하다. 사는 이유도, 살아가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마포구 양화진에는 여러 종류의 삶 가운데 특히 소명에 따라 산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의 안식처가 있다. 또 자신의 신념이나 존재 조건의 차이로 유랑자가 되어 우리 땅에 묻힌 사람들도 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천주교의 절두산 순교성지가 그곳이다. 그들의 삶을 찾아가 봤다. 서울지하철 2호선과 6호선이 함께 있는 합정역 8번 출구가 출발지이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8번 출구를 향해 가다 보면 교보문고 합정점이 있다.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답사하는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⑫] 의성(醫聖) 허준에게 코로나 시대를 묻다 : 강서구 편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⑫] 의성(醫聖) 허준에게 코로나 시대를 묻다 : 강서구 편 한동안 잠잠했던 코로나가 다시 극성이다. 조선시대 명의(名醫) 중 명의, 의성(醫聖)이라고 불리는 허준(許浚, 1537∼1615)을 찾아간다. 이번 답사길은 지하철 9호선 가양역에서 시작한다. 1번 출구로 나오면, 입구 좌측에 ‘하루방’이 두 개 서 있다. 수도권에서 하루방은 대개 음식점 장식물이다. 그러나 이 하루방은 서울에 유학 온 제주 출신 학생들을 위한 ‘제주탐라영재관’을 알리는 상징물이다. 영재관 바로 앞부터 허준 동네를 알리는 ‘허준테마거리시작점’ 표지판이 보인다. 50미터 직진해 횡단보도를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⑪] 잃어버린 한성백제 왕도를 찾아서 : 풍납토성․몽촌토성, 석촌동․방이동고분군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⑪] 잃어버린 한성백제 왕도를 찾아서 : 풍납토성․몽촌토성, 석촌동․방이동고분군 ‘서울의 폼페이’라고 홍보되는 곳이 있다. 송파구 풍납동 일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방이동과 석촌동 고분군 일대이다. 백제 678년 역사 중 493년 역사, 시조 온조부터 의자왕까지 31명 왕 중 21명(온조~개로왕)의 ‘한성(漢城)백제’ 왕도(王都), 하남위례성이 있던 곳이다. 이후 천도한 웅진(공주, 63년)과 사비(부여, 122년)와 달리 흔적조차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긴 역사책도 1천 년 전에 사라졌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일부만이 부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몇몇 일부 중국 역사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⑩] 서울中 서울 : 북촌 시리즈 2 – 개화, 갑신정변, 망국, 3․1운동의 공간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⑩] 서울中 서울 : 북촌 시리즈 2 – 개화, 갑신정변, 망국, 3․1운동의 공간 북촌은 넓고 아주 깊다. 가벼운 산책을 겸한 역사 인물 흔적과 현장을 찾아가는 북촌 두 번째 구간 답사를 시작한다. 공간적으로는 안국역 북쪽으로 대종교 중광터까지. 서쪽으로는 정독도서관과 안국동 사거리까지. 안국역 남쪽으로는 인사동, 조계사에서 종각역까지다.주요 코스는 다음과 같다. 안국역 2번 출구 -> 대종교 중광터 -> 가회동성당 -> 일제강점기 탁구 챔피언 차덕화 생가터 -> 손병희 집터 -> 재동초등학교 -> 헌법재판소(박지원․박규수․이준경 집터,이상재․최린 집터, 제중원 터, 창덕여자고등학교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⑨] 서울中 서울 : 북촌 시리즈 1 - 3․1운동, 건국준비위원회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⑨] 서울中 서울 : 북촌 시리즈 1 - 3․1운동, 건국준비위원회 북촌. 서울의 여느 곳이 다 그렇듯 아는 만큼 보여주는 곳이다. 조선 시대 북촌은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지금의 종각 북쪽 지역을 지칭하고, 당시 주류였던 노론 양반, 고위 관료들의 거주지였다. ‘서울 중의 서울’이라고 평가되는 곳이다. 과거의 잔영이 여전히 많이 남아 겉보기로는 조선 시대 양반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한옥이 즐비한 공간이다.북촌 답사를 시작하며코로나 이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외국인이 어깨를 부딪칠 만큼 붐볐다. 이번에 찾은 북촌에는 코로나에 지친 젊은 연인들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⑧] 도봉구 투쟁과 은둔 : 독립, 자유․민주․민초(民草)시대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⑧] 도봉구 투쟁과 은둔 : 독립, 자유․민주․민초(民草)시대 어지러운 세상에서 선비가 살아가는 방법에는 대개 세 가지 방식이 있다고 한다. 세상과 권력에 타협하고 굴종하며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 불의한 세상에 저항하고 싸우는 것, 숨어서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을 보아도 똑같다.우리는 보통 우리 땅에 남아 적극적으로 친일했거나 변절한 사람들을 무자비할 정도로 비판한다.또 망명해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은 지극히 높인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던 사람들은 잊거나 외면하곤 한다. 물론 그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도 현재의 자신의 이념이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⑦] 초안산, 대한민국 유일 500년 사람들의 안식처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⑦] 초안산, 대한민국 유일 500년 사람들의 안식처 『사기(史記)』는 고대 중국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중국 역사책이다. 특히 「열전」 부분은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병법(兵法), 리더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읽었거나 들어본 책일 듯하다. 『손자병법』의 손자, 『오자병법』의 오자, 『사마법』의 사마양저, 노자, 한비자, 맹자, 한신 등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의 삶을 생생히 기록했다. 또 그 안에는 역사 논쟁을 초래하는 고조선에 대한 기록도 있다.사마천은 흉노족과 전투 중 항복한 명장 이릉을 적극 변호했다. 한 무제는 사마천에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⑥] 의주로 위의 시인 정지용, 비운의 여인 장희빈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⑥] 의주로 위의 시인 정지용, 비운의 여인 장희빈 의주로(義州路). 조선 시대 서울∼고양∼파주∼개성∼평양∼의주까지 연결된 도로이다. 중국과의 육로 교류 통로였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가 피난 갔다가 서울 수복 후 되돌아왔던 길이다. 또 자기 땅이 전쟁터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명나라에서 군대를 파견해 조선에 들어온 길이다. 조․명 연합군에 의해 평양성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서울로 도망쳤던 길이다. 숙종의 여인이었던 장희빈(張禧嬪, 1659~1701), 납북된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의 사연이 실린 길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 중구 의주로 1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⑤] 서촌, 잊혀진 행주대첩 영웅 '도원수 권율'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⑤] 서촌, 잊혀진 행주대첩 영웅 '도원수 권율'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진짜를 보게 된다. 보게 되면 소장하게 되나, 헛되이 소장하는 것은 아니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서울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유한준(1732~1811)의 말이다. 비록 무생물이나 서울을 알게 되면 서울은 생명체인 것처럼 언 듯 언 듯 감춰진 속살을 드러낸다. 사랑이 깊어갈수록 서울은 시대마다 겹겹이 껴입은 옷들을 한 꺼풀 한 꺼풀 벗는다.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는 사람 무늬, 공간의 변화 속에서 진짜 서울을 찾노라면 감탄과 탄식이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④] 걱정을 잊는 곳, 근현대 인물의 쉼터 망우리역사공원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④] 걱정을 잊는 곳, 근현대 인물의 쉼터 망우리역사공원 선을 넘나드는 사잇길, 그와 나 사이에 설 수 있는 곳 귀신도 설 자리를 잃은 듯하다. 낯선 길, 낯선 곳, 어둔 밤 주인공 귀신까지 이젠 비정규직이 된 듯하다. 수많은 죽음과 죽임이 연일 폭우처럼 부어댄다. 버려진 사람들은 더 버티지 못하고 있다. 죽임을 대량생산하는 극단의 증오와 차별이 난무한다. 아무 이유 없는 죽임도 빈번하다. 귀신만도 못한 산 사람이 넘쳐 귀신조차 밀려났다. 볼썽사나운 도시 괴담, 소름 끼치는 가짜뉴스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외국 귀신 좀비까지 우리 옷을 입고 스크린과 안방을 점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③] 남산에 자리 잡은 '민족의 횃불' 안중근 의사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③] 남산에 자리 잡은 '민족의 횃불' 안중근 의사 서울의 심장부, 남산에 올랐다. 회현역에서 남산을 향해 첫 걸음을 뗐다. 곁에서는 등산객이 켜 놓은 트로트 소리가 들렸다. 트로트 열풍이 실감난다. 한 때는 일제의 잔재로 비판받고, 낡은 문화로 외면되었던 장르였다. 세상도 사람의 마음도 간사한 듯하다. 트로트가 어떻든 우리민족에게 춤과 노래는 생명 그 자체이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부여 영고(迎鼓), 동예 무천(儛天), 고구려 동맹(東盟)과 같은 축제에서는 빠짐없이 춤과 노래가 불려졌다. 수 천 년 동안 유전자에 새겨진 춤과 노래의 끼는 오늘날 더욱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②] 낙산성곽길에서 만난 실학 선구자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 서울 탐방기-②] 낙산성곽길에서 만난 실학 선구자 동대문에서 시작하는 한양도성길이 있다. 낙산성곽길이다. 낙산에서 성곽길을 우측으로 벗어나 가다 보면 비우당, 원각사, 동망봉, 청룡사, 동망정, 동묘역 벼룩시장, 청계천까지 타원형을 그리며 약 4km 구간을 걸을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탄 느낌이 드는 곳들이다. 그 길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李睟光, 1563~1628)과 조선 초기의 청백리 유관(柳寬, 1346~1433), 숙부 세조에 의해 죽임을 강요당한 단종과 그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서울 탐방기-①] 낙성대 [박종평 기자의 2000년 수도서울 탐방기-①] 낙성대 최근 서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공감하는 사실은 서울이 한반도 역사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수도 서울의 역사를 보면, 백제가 처음 서울에 수도를 둔 이후, 대략 천 년이 지난 고려 문종 21년(1067년)에 고려의 사경(四京, 개성․평양․경주․서울) 중의 하나인 남경(南京)으로 승격되었다. 고려 말 우왕과 공양왕 때 잠시 수도가 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500년 수도가 되었고,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런 서울은 세계 역사에서도 드문 경우이다. 2천 년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