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보도 리빈 전주한 중국대사 본국서 수사받은 내막
국내 언론사의 현직기자가 리빈(李濱·51) 전주한 중국대사에 대한 기밀누설혐의를 반박하는 주장을 제기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리 전대사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방중과 관련된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를 받고 2006년 12월부터 조사를 받아오다 결국 해임된 것으로 지난달 27일 확인됐다. 리 전대사는 2005년 8월까지 주한 중국대사를 지냈으며, 귀국 후 북한핵문제 전담 대사에 이어 작년 5월부터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의 부시장으로 일해 왔다.
이같은 중국 정부의 갑작스런 조치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아무 것도 없다. 중국 중앙정부가 그의 자세한 혐의내용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콩 언론 등은 “리 전대사가 한국에 김 위원장의 극비방중 정보를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 한 기자가 ‘김정일 방중’에 대한 정보 입수 과정을 밝히며 리 전대사의 기밀 누설혐의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일선에서 직접 취재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그의 전언은 신뢰성이 높아 보인다. 그의 말이 사실이고 리 전대사가 실제 기밀누설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면 이 소식을 접한 중국정부가 차후 어떤 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


능수능란한 한국어 구사와 깊은 한국문화의 이해로 유명한 리 전대사가 기밀누설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해 12월 경의 일이다.

지난해 5월, 그는 산둥성 웨이하이 시(市) 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웨이하이시는 한국인 1만5,000여명, 한국 기업 2,000여 회사가 진출한 한-중 경제교류의 전초기지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그가 이곳으로 발령 나자 국내 언론을 비롯한 중국 소식통들은 이를 두고 중국 정부의 적절한 인재배치라고 평가했다.

또 웨이하이 시의 부시장 자리에 앉게 된 리 전지사는 한국에 근무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양국 경제교류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알 수 없는 중국 정부의 속내

그는 현재 국가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중국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하게 드러난 바는 없다. 다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일정 사전 누설과 6자 회담과 관련된 알 수 없는 문제로 곤경에 처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만이 전해지고 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일정 누설 혐의일 가능성에 무가게 실리고 있는데, 이는 중국 외교부 관련자 네 사람이 2004년 4월 진행된 ‘극비 방중’이 있은 지 넉 달 후 사전 언론 노출을 이유로 처벌받은 것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홍콩 명보(明報)는 리 전대사가 지난해 1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관련한 국가기밀 누설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최근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의 김일성대학 조선어학과를 나온 리 전대사는 한국주재 대사뿐 아니라 북한 대사관에서도 장기간 근무하는 등 중국 외교부 내에서 손꼽히는 남북한 전문가로 평가돼 왔다. 때문에 그의 해임 배경에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사안이 깔려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 소식통들에 따르면 리 전대사는 웨이하이시 부시장으로 가기 직전부터 중국 정부의 은밀한 내사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명보는 리 전대사가 지난해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때 이 계획을 한국에 미리 누설한 것과 북한 핵문제 전담대사로 6자회담에 참여한 전력을 들어 6자회담과 관련한 정보를 누설한 것, 이 두 가지를 그 이유로 꼽았다.

명보는 리 전대사가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을 한국 및 일본 언론에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 근거로 당시 한국과 일본 언론이 김 위원장의 우한, 광저우, 선전 방문 일정을 정확하게 보도했다는 점을 들었다.


리 전대사는 결백하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명보가 보도한 대로라면 리 전대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정보를 누설시키지 않은 이상 북한내 정보 채널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한국 언론이 이런 기밀 사항을 알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 기밀을 알 수 있는 고위 간부, 그 가운데 국내에 머물고 있는 인사인 리 전대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모 언론사의 A기자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리 전대사가 결백하다는 주장과 함께 그 근거를 일목요연하게 나열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1년 이상 묻어두었던 김 위원장 방중 보도 경위를 공개한다며 입을 열었다.

A기자는 “리 전대사가 구체적으로 무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지는 몰라도 알려진 바와 같이 김 위원장의 방중 기밀을 한국에 누설한 혐의라면 그는 절대 결백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정보는 우리가 직접 중국내외의 각종 정보망을 이용해 얻은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리 전대사에 대해 “그가 6자회담 관련 기밀을 흘렸을지 몰라도 김 위원장 방중과 관련된 기밀 누설은 없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며 “김 위원장의 극비 방중 사실과 그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우리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린 김 위원장의 방중 일정을 결코 리 전대사를 통해 알아내지 않았다”며 “그런 방법으로 비밀을 알아냈을 거라고 유추한다면 이는 우리의 열정과 노력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 같이 밝히는 이유에 대해 리 전대사에 씌워진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우리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방중 내용은 북한소식과 관련, 그동안 지속적으로 구축해둔 정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김 위원장이 움직일 때면 화물 반출입금지, 경비강화 등 북측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기 마련인데, 당시에도 이 같은 움직임이 포착돼 중국 현지와 북한 내 정보망을 풀가동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방중 계획 보도의 진실

A기자는 “김 위원장은 방중 시 특별열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출발 2~3일 전부터 접경도시인 단둥(丹東)은 경비가 삼엄해진다. 국경 무역업자들의 화물 반출입도 중단된다”며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예상은 단둥의 무역업자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졌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취재팀은 현지의 망원(정보원을 일컫는 말)을 동원해 현지 경찰로부터 김 위원장의 방중 일시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고 이후 역마다 사람을 보내 열차가 선양(瀋陽)을 통과할 때까지 김 위원장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김 위원장이 중국으로 들어온 뒤의 행적을 쫓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는 “김 위원장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특별열차는 선양 이후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처음에는 베이징을 첫 행선지로 생각했다가 다시 상하이를 주목하는 등 혼선을 겪은 끝에 이틀 만에 오리무중이었던 김 위원장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무수한 인터넷 사이트를 끈질기게 뒤져서 얻은 개가였다”고 설명했다.

그가 밝힌 인터넷 사이트 활용법을 살펴보면 수 많은 블로거들이 쏟아내는 중부 내륙 우한(武漢)의 이상 징후를 추적했다. 이런 방법으로 우한 공항에서 둥후(東湖)호텔에 이르는 도로의 교통이 이틀째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그에 따르면 광케이블 제조업체인 창페이(長飛)유한공사에 다니는 한 블로거가 “우리 회사에 북한의 VIP가 다녀갔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중국 주요 도시에 브랜치를 두고 있는 국내 모 항공사 관계자에게 부탁해 우한공항에 고려항공 민항기와 중국 정치지도자들이 이용하는 소형 비행기 ‘걸프 스트림’이 계류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그는 전했다.

A기자는 “둥후호텔에도 여행객으로 가장해 전화를 걸어 ‘외국의 중요한 손님’ 때문에 일반 예약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며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대개 비슷한 방법으로 김 위원장의 행적을 조각그림 맞추듯 추적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다음 행선지를 남부의 대도시로 추정하고 인터넷을 뒤진 끝에 이번에는 광저우쪽에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데 이어 경비가 극도로 엄격한 바이톈어(白天鵝)호텔이 김 위원장의 두번째 숙소라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일본 언론도 우리가 정보 제공

그는 “이 호텔 로비에서 일본 NTV가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최초로 그의 모습을 영상으로 포착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일부에서는 일본의 정보를 우리가 받은 것으로 잘못알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일본에 정보를 줬다”고 말했다.

A기자에 따르면 NTV는 영상 특종을 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자사 보도를 내보내기 전에 우리에게 알려주고 먼저 보도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고.

한편 그는 “중국 당국이 우리의 보도가 중국 정부 내 누군가의 제보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다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의 치밀하고 정확한 보도를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라며 “중국 당국자가 이 글을 보게 되기를 빈다. 중국 당국이 리빈 전대사에게 김정일 위원장 방중 기밀 누출 혐의를 두고 있다면 당장 거두어야 할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음을 거듭 확인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리빈 전대사는 누구 - 중국내서 손꼽히는 북한통

리빈 전대사는 김정일 조선노동당 총서기와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0년 3월 5일 김정일이 당시 소원하던 북·중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돌연 평양주재 중국대사관을 방문, 오후 7시부터 거의 자정 무렵까지 5시간 가까이 머물러 온 세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리빈 전대사는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공사로 근무하고 있던 시절 김정일은 리빈 공사에게 “술 한잔하자”고 제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북·중 관계를 논의했다는 것이다.

리빈 전대사와 김정일의 인연은 김이 지난 1986년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 상하이(上海)를 둘러볼 때 리빈 전대사가 통역을 맡은 것으로 시작됐다. 리빈 전대사는 김정일이 13년 뒤인 1999년 다시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도 안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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