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염건령 교수가 분석한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실종사건(화성실종사건)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이 사건이 제 2의 ‘살인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화성실종사건은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7일까지 실종된 3명의 여성이 모두 화성시 반경 10Km 안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여기에 지난 6일에는 화성 동탄면에서 30대 중후반의 여자변사체가 발견돼 화성의 공포는 더욱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사정은 이렇지만 화성실종사건은 목격자, 피해자의 시신, 용의자의 흔적 등 수사에 활용될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어 60일 이상 미해결 사건으로 표류하고 있다.
이에 경찰은 수사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42)교수를 비롯해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장석헌(47)교수, 한림대 심리학과 조은경(45)교수,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43)교수 등 교수 4명과 서기만(67·전서울청 강력반장), 윤영문(58·전서울 송파서 강력반장), 김원배(59·전경찰청 강력계 근무. 현 경찰청 범죄연구관)씨 등 전직 경찰관 3명 등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범죄심리전문가들은 화성실종사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연쇄살인 전문가인 표창원 교수와 범죄심리학의 전문가 염건령 박사를 통
해 이 사건을 진단해 보았다.


“부모 또는 가족들로부터 학대받거나 소외돼 자라오면서 반사회적인 성향을 키운 인물. 그는 변태성욕자라기보다 심리적으로 내재된 증오표출 대상을 물색했을 가능성이 높음.”

범죄심리학 염건령 박사(35)가 화성실종사건의 범인에 대해 내놓은 프로파일링이다.

경찰은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화성실종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정지역 안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강간, 절도, 살인 등 각종 연쇄범행의 공통점은 대부분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점이다. 신촌지역의 유영철, 대전지역의 발바리, 서남부 지역의 정남규 등이 그랬다.

이 점을 감안할 때 화성 비봉면 부근 10Km 반경 안에서 발생한 이번 화성실종사건의 경우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수법 면에서도 세 건의 사건 모두 거의 동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범인이 새벽에 자동차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납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피해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이는 사건의 성격을 완전히 달리 해석하게 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경찰은 수사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다.

연쇄살인사건 전문가 표창원 교수의 견해

‘한국의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표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쇄살인사건 전문가다.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는데 있어 매우 조심스러워 했다. 자신이 무심코 한 말이 일선 수사관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표 교수는 “이번 사건의 경우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확인 연쇄실종사건이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며 “특히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연결시키는 일은 현단계에서 시기상조다”라고 말했다.

또 그에 따르면 도시화가 진행된 곳일수록 발생 빈도가 높은 연쇄살인은 우리나라에서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표 교수는 이번 화성연쇄실종 사건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일문일답을 통해 들어 보았다.

- 화성연쇄실종사건이 장기화되면서 이를 연쇄살인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이 사건은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실종이냐 연쇄살인이냐를 단정 지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범행 수법에 대한 분석이 먼저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황으로 볼 때 실종자들의 생존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 이번 사건과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어떤 유사성이라도 있나.
▲ 내가 보기에는 어떠한 유사성도 없다. 장소가 화성이라는 점과 범행대상이 여자라는 점 외에 범행 수법 등 모든 것이 다르다.

- 이번 사건이 하필 화성에서 발생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 참 어려운 질문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연이라고 본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지리적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 많다는 것 정도다. 범행 수법으로 비춰볼 때 이번 사건의 범인이 화성의 ‘유명세’를 특별히 의식했다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의식하고 이를 모방한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고 범행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싶어 하는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 범인이 자동차를 이용해 납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데 교수님의 견해는.
▲ 만약 자동차를 이용했다면 그것은 주변 지리를 사전에 숙지했거나 잘 아는 자일 가능성이 크다. 또 운전이 직업인 사람일 가능성도 있다. 차량을 이용해 범행을 저지를 경우 지리에 익숙하지 않으면 신속한 도주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뜻하지 않은 목격자가 나올 수 있다. 때문에 차량을 이용해 범행을 저지를 경우 익숙지 않은 길을 이용하는 예는 거의 없다.

- 화성에서 강력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원인이라도 있는가.
▲ 지금까지 화성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보면 연쇄살인사건 이후 모방범죄가 제일 많았다. 중요한 것은 실제 사건 발생비율을 볼 때 화성이 다른 지역보다 특별히 사건 빈도가 높은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이 화성을 ‘살인사건의 명소’로 만든 경향이 적지 않다. 이런 사건은 서울에서 더 자주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이 화성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끄는 것 같다.


범죄심리학의 염건영 박사의 견해

심층범죄심리 전문가인 염 박사는 이번 화성실종사건에 대해 “절대 지능범의 소행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그러나 과거 화성연쇄살인사건 보다 진보된 형태의 범죄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사건은 납치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또 사건 발생 이후 상당시간이 지났음에도 피해자들의 행적이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어 납치 후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염 박사는 “만약 동일한 인물이 시간차를 두고 여러 여성들을 납치한 것이라면 여성들의 생존가능성은 낮아진다”며 “과거 범행의 사례를 보면 살인이 아닌 경우 동일범에 의한 납치는 한두 사람에 그친다. 반면 살인일 경우 동일범에 의한 납치는 여러 차례 반복되는 예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납치범의 입장에서 가장 힘든 점은 피해자의 신병을 어떻게 관리하는 가에 있다. 식사문제를 해결해야 함은 물론 갑작스런 공격이나 탈출 등에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납치할 경우 이를 관리하는 공범은 보통 두 명 이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납치한 뒤 피해자를 헤칠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염 교수에 따르면 이 경우에는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공범도 필요 없기 때문에 2차 3차 계속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

경찰은 현재 이번 3건의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그만큼 낮다고 볼 수 있다.

- 이번 화성연쇄실종사건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 이 사건에서 제일 많이 고민해야 할 사항은 왜 하필 사건발생 지역이 화성인가하는 점이다. 범죄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실종됐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왜 범행지역이 화성인가 하는 점을 먼저 규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있는데, 사견을 들자면 현재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주변지역 거주자거나 과거 이 지역을 자주 오갔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 범죄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해 말한다면.
▲ 이번 사건의 범인에 대해 전혀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에 인물적 특성을 언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이런 종류의 범행을 저지른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을 말하자면 속칭 ‘사이코에 의한 범죄’가 아닌 이상 대부분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보인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대 멸시 받았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부류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약 이번 사건이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이라면 이같은 특성을 가졌을 것으로 본다.

- 나름대로 이 사건의 범인에 대해 프로파일링한 것이 있나.
▲ 범죄심리학자로서 학문적인 근거에 기초해 말하자면 범인은 30대~ 40대 남성인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지만 납치 후 살해했다면 기력이 센 연령대의 남성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한다.
또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변태적인 성욕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범은 대부분 여성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억압된 스트레스를 갖고 있다. 이런 트라우마(정신적인 외상)가 제대로 치유되지 못할 경우 여성에 대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내의 변심으로 살인을 하게 된 유영철이 그 대표적인 예다.

- 연쇄살인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 가운데 지역적인 특성도 있나.
▲ 그렇다. 희대의 연쇄살인사건 발생 비율이 높은 영국은 안개가 많은 나라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안개가 많은 지역에서 강력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날씨나 자연 환경에 따라 자살률이나 사건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화성 지역도 큰 호수가 많아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것은 이번 사건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 경찰수사가 벽에 부딪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실종자들의 신병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납치든 살인이든 그 범행 종류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단서나 증거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재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체도 없고 납치 흔적도 없다. 심지어 목격자도 없다. 말 그대로 ‘증발’인 셈이다. 때문에 수사방향의 초점이 잡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국내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은 어떤 특성이 있나.
▲ 외국의 연쇄살인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주인공 한니발 렉터같은 사이코 살인마도 실제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쇄살인은 사이코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반사회적 성향의 살인마가 많다. 지존파, 막가파, 정남규, 유영철 등이 여기에 속한다.

- 연쇄살인범도 지능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 지능화돼 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시대가 복잡해지고 경찰 수사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범인들도 이를 계산하고 범행을 저지른다. 또 인터넷의 발달로 각종 범죄 정보가 쉽게 전달되는 점도 원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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