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대공수사검사 보강 시급하다

간첩사건마다 수사적법성 문제 삼아 무죄 이끌어
수사 노하우 공유, 검사·수사관 교육 방안 강화해야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2014년은 검사들에게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음란행위를 비롯해 각종 간첩사건의 잇단 무죄판결은 서슬 퍼렇던 공안검사들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검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스템의 부재, 수사 방법의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지적되는 가운데 민변의 활약이 검사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도 많다.

올 한 해는 유독 간첩사건과 관련된 판결이 많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보위부 직파 간첩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피의자들 모두 재판과정에서 핵심진술을 번복했고 결국 무죄판결이 났다. 재미있는 점은 이 재판에 모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맡는 사건마다 좌편향 논란 불러

민변은 1970년대 유신정권에서 시국사건 변론을 주로 담당했던 인사들이 모여 1988년 5월 28일 변호사 51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진보성향 변호사들로 회원수는 지난 5월 기준 935명이다.

민변의 모태는 1986년 구로동맹파업사건을 공동 변론한 인권변호사들이 만든 정의실천법조인회(이하 정법회)다. 정법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무렵까지 권인숙·박종철·김근태 씨 등에 대한 고문사건의 변론을 담당했다.

그러나 민변은 문익환·임수경 방북 사건을 변론하면서 사회 쟁점화를 시도한 데 이어 2008년 광우병 사태로 인한 촛불집회, 보수 신문사 광고 중단 등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좌편향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굵직한 간첩 사건마다 변호인으로 나서 수사과정에서의 적법성 문제 등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날고 뛰는 민변 프로와 아마추어의 싸움

검찰 내부에서는 민변 변호사들을 ‘선수’ 즉 ‘프로’라고 부른다. 대부분 경력이 5년에서 10년 이상이 되다보니 시국사건이나 공안사건에서 검찰에 실력으로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보 시민단체들과의 끈끈힌 연결고리는 각종 사건을 사회쟁점화 하는 데 능수능란하다.

하지만 검찰은 10년 동안 공안분야에 몸 담았어도 풍부한 대공수사 경험을 가진 검사는 드문 게 현실이다. 인기도 없고 힘든 분야인 만큼 공안검사직에 책임감과 의무를 가진 전문 검사도 없으려니와 그동안 내부에서는 공안검사를 키우는 데 인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민변은 날고 뛰는 ‘프로’가 됐고 공안검사는 ‘아마추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검찰 내부에서도 대공수사 검사들의 수사 경험·전문성 부족을 인정하고 있다. 또 과거와 달라진 수사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반성하고 있다. 사회의 모든 것이 변했는데 검사들만 변하지 않았다.
급기야 검찰은 대공사건 정보와 수사기법을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 노하우를 공유하고 검사와 수사관 교육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무선전화 감청 수사절차 개선 필요

공안검사들이 이렇게 위축된 사이 국내로 잠입하는 간첩수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과거와 달리 탈북자 출신의 간첩과 포섭된 간첩이 주를 이룬다. 간첩의 활동 폭은 더 넓어졌고 목적도 더 다양해졌다.

하지만 대공수사는 각종 제약이 더 많아져 위장 탈북자를 색출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화감청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선전화 감청만이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국내와 외국 간 통화는 국가안보상 감청 대상이지만 증거로 법정에 제출할 수 없다. 국내 휴대전화 간 감청은 장비가 없어 불가능한 상태인데도 1월 발의된 관련 법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미국 CIA는 통화 조회, 위치 정보 등 정보 열람이 가능하며 통신 감청의 경우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정보수사 뿐만 아니라 인질강도, 테러범, 살인범에 대한 감청이 허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15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8개 지검 대공수사 전담 검사 18명이 참석한 ‘전국 대공전담 검사회의’에서는 ‘보위부 직파간첩 사건’을 계기로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에서 이뤄지는 행정조사와 수사 절차를 분리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법원에서는 합신센터에서 이뤄지는 조사에 엄격한 절차적 적법성을 요구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또 외국 안보형사법 입법례를 근거로 대공사건은 일반 형사 절차보다 간소하고 신속하게 진행하는 별도의 형사사법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령을 내린 사람이 국내가 아닌 북한이나 타국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형사사건처럼 압수수색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사건의 신속한 수사와 해결을 위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말이다.

대공수사 강화 선택 아닌 필수

대공수사는 국가안보와 직결된다. 하지만 대공수사 기관의 손발을 묶어 놓은 상태에서 일반 형사사건처럼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다면 간첩 혐의 입증이 힘들 수밖에 없다. 물론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공안검사들도 조작이 아닌 확실한 증거와 자료로 피의자들의 죄를 물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대공수사가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날고뛰는 민변이라 해도 명백한 증거 앞에서는 꼼짝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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