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관광 비자로 호주 원정 성매매
‘영어 배우러 갔다가 엉뚱(?)한 것만 배웠다?!’
해외원정 성매매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여성을 호주로 보내 성매매를 알선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학력이나 재산 등 특별한 자격조건이 없는 ‘워킹홀리데이’, 이른바 취업관광비자를 통해 여성들을 호주로 입국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호주에서 성매매를 한 여성은 모두 87명. 대학생, 학원 강사 등 일반인이 대부분이었다. 호주로 보내진 여성들 가운데 일부는 감금된 상태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영어공부도 하고 돈도 벌겠다는 욕심에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이들에게 ‘오스트레일리안드림’은 없었다.



대학생 김영미(23·여·가명)씨가 호주로 어학연수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10월.
‘호주 현지에서 일하면서 여행은 물론 돈도 벌 수 있다’는 한 인터넷 사이트의 구인·구직광고를 접하면서부터다. 취업을 위해 어학연수가 필요했던 김영미씨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광고 게시자와 연락을 취했다.


한 달에 4백만원 거뜬?

호주로 가기 위한 준비작업은 인력송출업체에서 모두 해결해줬다. 몇 가지 신체검사와 서류작성을 끝낸 후 며칠이 지나자 비자가 나왔다.

김영미씨가 받은 비자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일명 ‘취업관광비자’로, 노동력이 부족한 국가에서 외국 젊은이에게 1년간의 특별비자를 발급해 입국을 허가하고 취업자격을 주는 제도다. 호주와는 1995년에 체결됐다.

해외여행과 영어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핑크빛 환상에 젖어있던 영미씨. 하지만 정작 영미씨가 도착한 곳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 지방에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성매매업소였다.

도착 당일 영미씨는 여권과 비자를 모두 빼앗겼다. 중국인 사장은 “너를 데려오느라 2만 달러의 선불금을 지급했으니 갚아야 한다”며 윤락행위를 강요했다. ‘영어공부와 여행’은커녕, 매일 밤 뭇 남성들에 둘러싸여 성적 노리개가 돼야만 했던 영미씨는 지난해 12일, 생리 때문에 하루 쉬는 틈을 이용해 호주 경찰에 신고한 뒤에야 업소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학원 강사 박혜연(26·여·가명)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카드 빚에 시달리던 그녀는 지난해 8월 인터넷사이트 게시판에서 ‘호주의 식당(레스토랑)에서 한 달에 400만원까지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출국했다. 혜연씨가 취직한 호주 시드니의 A유흥업소는 한인 상대 룸살롱이었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의 경우처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이용해 호주에 입국, 유흥업소에서 성매매를 강요당한 여성은 무려 90여명. 서울경찰청 외사과는 지난 4월24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 받게 한 뒤 여종업원을 성매매 업소에 취직시킨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이모(33)씨와 홍모(28·여)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 등은 지난해 9∼10월 “호주에서 돈을 벌면서 영어도 배울 수 있다”고 속여 한국여성들을 모집한 뒤 호주 성매매 업소에 취업시켜 1인당 10만원씩을 받고 성매매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이용하면 학력이나 재산 등의 조건에 관계없이 1년간 체류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여성들을 꾀어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피의자 홍씨 등은 일자리를 소개해 준 대가로 7,000여만원을 챙겼다.


눈 딱 감고 벌면 되지…

경찰에 따르면 해외 성매매업소 취업 지원자 중에는 유흥업소 종사자 외에도 서울과 지방 소재 대학생과 휴학생, 학원 강사, 학원생, 회사원 등도 상당수다. 이들은 유흥업소에서 일할 것을 알면서도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 때문에 취업에 나섰다가 성매매까지 강요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호주로 취업을 떠난 여성 대부분이 돈 없는 유학생이거나, 국내 취업이 어려운 여성, 빚에 시달리던 여성들이어서 ‘울며 겨
자먹기’ 식으로 남성들을 상대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업소에 취업한 여성 2명은 성매매를 하는 것을 모른 채 호주로 건너가 여권을 빼앗기고 감금된 상태에서 호주, 터키, 중국, 베트남 남성 등을 상대로 윤락행위를 강요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피해여성(27)은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일할 수 있다는 얘기만 믿고 호주로 떠났는데, 막상 도착한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면서 “‘일자리가 없으니 일단 (유흥)업소에서 며칠만 아르바이트를 하라’는 제안을 믿었던 것이 문제였다. 시간당 3만5,000원, 2차(성매매)는 70만원, 개인팁은 200만원이었다. 기왕 온 거 눈 딱 감고 돈이나 벌어 가자는 심산으로 성매매까지 나서게 됐다”고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다.

경찰은 “성매매특별법 이후 성매매 여성뿐만 아니라, 회사원과 대학생들까지 호주로 원정 성매매를 가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면서 “성매매가 합법화된 호주에서는 허가를 받으면 성매매가 가능하지만 한국 여성들이 취업한 곳은 허가를 받지 않아 처벌 대상이 된다. 앞으로도 국내 여성들을 해외로 불법송출한 뒤 현지에서 성매매를 알선하는 조직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호주 경찰과 공조해 현지 취업 알선책인 손모(48·여)씨와 호주 유흥업소 운영자 김모(46)씨 등 2명을 추적하고 있다.


# 구인정보 사이트에‘원정 성매매’ 광고

이번 사건과 관련, 기자는 지난해 10월 이미 한 채용정보사이트에서 ‘호주 노래방 도우미’ 광고가 버젓이 게재된 사실을 확인·취재한 바 있다.

당시 A사이트에는 호주에 있는 노래방에 취업하면 월 4,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내용의 광고가 실려 있었다. 구인광고는 ‘호주 시드니 노래방도우미 모집’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돼 있었다.

구직자로 신분을 가장한 기자에게 업체 관계자(실장)는 “술 마시는 손님들 곁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말벗이 돼주는 일이 전부”라면서 “한국에서 오는 여성들을 위해 개인숙소도 제공하고 있다.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분들에게는 항공권도 공짜로 준다. 환경도 좋고 깨끗한 청정의 나라 호주 시드니에서 돈도 많이 벌고 영어공부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호주)에 오면 한 달에 1,000만원은 기본으로 벌 수 있다”면서 “3개월 이상 호주 업소에서 노래방 도우미를 해준다면 한국에 돌아갈 때 항공료는 공짜로 지급해 주겠다”는 제안까지 곁들이기도 했다.

당시 업소 관계자는 “한국에서 단속이 시작되면서 호주로 오려는 여성들이 많다”면서 “최근 며칠 사이만 해도 채용정보를 보고 문의해오는 전화가 많아 자리를 비울 수 없을 정도다. 호주에서 일하길 희망하는 도우미가 많아질 것을 대비해 룸을 몇 개 더 늘릴 것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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