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폭행사건 파문 <2>김승연의 두얼굴

폭행사건 열쇠 쥔 A형사
한화 김승연 회장의 폭행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면서 경찰의 수사 은폐·축소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또 경찰은 사건을 둘러싸고 수뇌부와 일선경찰서 간의 이견으로 내홍을 겪는 등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고 있다. 국민들은 경찰이 이번 사건을 두고 헤매는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김 회장이 아닌 평범한 인물이 이 같은 사건을 일으켰을 경우 경찰의 대응은 전혀 달랐을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은폐나 축소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4일 사건에 대한 경찰의 내부 첩보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계속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문견에는 피해자들의 피해사실과 수사상황 그리고 그에 따른 적용법조항까지 기록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사건을 보고받은 경찰 수뇌부에서부터 일선경찰서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인 사건 축소·은폐 시도가 있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특별취재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경찰은 사건발생 직후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은밀하게 사건 축소·은폐 작업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일 북창동에서 수년째 영업을 해 왔다는 업주 P씨를 만날 수 있었다.

대화에 앞서 그는 자신들의 신분이 신문지면을 통해 드러나지 않을까 극도로 우려하는 눈치였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움츠리게 만든 것일까.

다소 겉돌던 만남의 자리가 무르익으면서 본격적인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P씨는 “우리는 오랜 경험을 통해 경찰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운 사람들”이라며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증언을 할 경우 증언자의 신원정보가 경찰에 의해 보복세력의 손으로 새 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심한 듯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전했다.

P씨는 “사실 기자들이 모르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여 운을 뗀 뒤 “이번 사건은 경찰이 조직적이고도 비밀스럽게 은폐하려 했던 것이다. 그 증거로 경찰 수뇌부가 이번 사건의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A형사의 입을 막은 것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P씨는 A형사에 대해 “북창동 등지에서 불법 변태 클럽을 집중적으로 단속했던 인물”이라고만 밝히면서 “내 생각에 그 형사의 북창동 정보원 가운데 누군가가 사건을 제보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A형사가 남대문경찰서 소속이냐는 물음에 “그건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A형사는 이 사건을 접수하고 북창동 업주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당시는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기 전인 상태로, 말하자면 초동수사 단계였다. 때문에 A형사는 경찰의 축소·은폐 시도 전에 수사를 진행했던 유일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그가 누구보다 사건에 대해 많
은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P씨는 “A형사는 사건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을 무렵 그에게 정보를 준 북창동의 정보원에게 ‘내가 김승연이를 이번에 구속시켜 버리겠다. 결과를 두고 봐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며 “그런데 어느날 A형사는 사건에서 손을 떼고 알 수 없는 과정을 거쳐 남대문경찰서가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P씨의 말에 따라 북창동 업소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A씨에 대해 따로 수소문해 보았다. 확인한 바에 따르면 A형사는 북창동뿐 아니라 다른 지역 유흥업소의 불법 영업소를 집중적으로 단속했던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업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A형사가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다”고 전해 P씨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이들의 증언대로라면 A형사가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를 상부에 보고했을 것이고 이 소식을 접한 경찰 수뇌부는 모종의 협의과정을 거쳐 A형사의 수사를 중단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이어 수뇌부는 이중조치의 일환으로 남대문경찰서로 사건을 넘겨 그를 수사에서 완전히 멀어지게 했을 수도 있다.

이 추론을 확인하기 위해 집중 수소문을 벌인 끝에 A형사의 개인 연락처를 힘겹게 알아낼 수 있었다.

다음은 A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이번 김승연 사건 때문에 연락하게 됐다.
▲ 김승연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이 없다. 그것 때문에 전화한 것이라면 대화를 짧게 마무리하고 싶다.

- 몇 가지만 질문하겠다. 사건 초기에 수사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는가.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라면 다른데 문의해 보라. 나는 할 말이 없다.

- 분명 A형사가 사건을 처음 수사했다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었다. 솔직히 말해 달라.
▲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 뒤) 사실 그 사건에 대해 상부로부터 외부에 입을 열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남대문경찰서가 언론확인 공식창구다. 상부에서 그렇게 정한 사항이기 때문에 나는 입을 열 수 없다.

- 자신이 수사하던 사건이 왜 다른 경찰서로 이첩됐는지 설명해 달라.
▲ 모르겠다. 지금 출동해야 되기 때문에 바쁘다. 통화를 마무리해야겠다.

이 전화 통화에서 A형사는 모든 질문을 시종일관 부인했지만, 수뇌부가 수사상 비밀유지를 빌미로 A형사의 입을 막은 것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일부 질문에 대해 모호하게 답변을 흐렸지만 자신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는데 대해 몹시 놀라는 눈치였다.

그와 통화를 마친 후 이번에는 그가 소속된 경찰서의 다른 부서로 전화를 걸어 간접 확인을 시도해 보았다.

전화를 받은 B형사에게 “A형사가 김 회장 사건을 처음 수사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라고 묻자 B형사는 “처음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사했던 것은 맞다. 나머지는 본인한테 직접 물어야 할 사항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상황 좀 이해해 달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에 이번에는 A형사와 과거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L형사와 통화를 시도해 보았다.

L형사는 “A형사가 그 사건(김 회장 사건)을 수사했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은 적 있다”며 “하지만 그 사건이 왜 남대문서로 갔는지 자세한 내막은 나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의 부실수사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왜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는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화의 로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과 경찰 내 김 회장 인맥이 뒤를 봐주기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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