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폭행사건 파문 <3> 김승연의 두얼굴

김승연 회장의 유별난 자식사랑
보복폭행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승연 한화회장의 유별난 자식사랑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자식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잘못됐지만 분명 김 회장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자식사랑이었을 것이라는 일종의 ‘동정론’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 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김 회장은 ‘재벌총수’에게서 연상하기 힘든 ‘다정다감한 아버지’로 사람들에게 알려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아들이 경기를 펼치는 경기장까지 찾아가 격려를 하는 모습, 아들의 명문대 합격소식에 기뻐하는 모습들은 모든 아버지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들이나 한화 측은 이러한 김 회장의 자식사랑이 그가 아버지를 일찍 여읜데서 비롯됐다고 말하고 있다. 부모에게서 다 받지 못한 사랑을 내 자식에게만큼은 아낌없이 줘야 한다는 일종의 내리사랑에 대한 강박관념이 이번 사건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대한 비난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던 지난달 29일 한화그룹은 기자들에게 인간 김승연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A4지 9장 분량의 보도자료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마지막에 “김승연 회장은 1981년 갑자기 29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이러한 김 회장의 자식
사랑은 아버지를 일찍 여읜 김 회장의 보상 심리였다”라는 대목이었다.

오랜 외국 생활에서 생겨난 ‘부정(父情)에 대한 갈망’이 그대로 자식을 향한 부정(父情)으로 이어졌으니 이번 사건도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이 일으킨 사건이 아닌 ‘아버지 김승연’으로서 일으킨 사건으로 봐달라는 의미다.

실제로 김 회장이 자라온 과정들이나 자식교육 과정들을 보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김 회장은 젊은 시절 오랫동안 외국에서 공부한 탓에 아버지 김종희 창업주와 함께 할 시간이 적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것도 외국에 있을 때다. 그 때 김 회장의 나이가 29살이었다. 젊은 나이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총수 자리에 올라선 것. 부정을 그리워할 틈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9살 때 아버지 타계
아버지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지 못한 한(恨) 때문이었을까. 김 회장은 선친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이를 모시는데 온갖 정성을 쏟았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몇 개월전 본지에서 충남 공주에 위치한 김 회장 선친 묘를 찾았을 때 그곳에서 만나본 주민들의 김 회장에 대한 칭송은 대단했다.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김 회장은 명절이나 기일 이외에도 틈만 나면 이곳에 들를 정도로 정성을 쏟고 있다”며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부모와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선친묘 자리를 둘러봐도 정성을 들인 흔적들이 역력하다. 선친묘는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명당’자리다. 한 풍수지리 전문가는 “김종희 창업주 묘자리 주변은 마치 여자의 자궁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묘가 있어 정기를 받기 좋은 곳”이라고 전했다. 마을사람들의 전언들을 종합해볼 때 김 회장이 ‘가정’에 대해 갖는 애착이 남다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식사랑이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
선친묘를 통해 아버지 사랑을 그리워했던 ‘아들 김승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아들과 관련된 일화는 ‘아버지 김승연’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김 회장의 큰아들 동관군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공군 장교로 복무중이며, 둘째 아들은 예일대, 셋째 동선군은 승마로 유명한 미국 태프트 스쿨에 재학 중이다.

특히 셋째인 동선 군은 지난 2006년 도하아시안 게임에 승마국가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당시 김 회장은 카타르까지 가서 동선군을 격려하고 시합을 지켜봤다. 두 아들이 미국 명문대인 하버드대와 예일대에 합격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소문도 있다. 또한 세 아들 모두 외국에서 공부하는 탓에 가끔씩 가족들이 다 모이는 기회가 생기면 한화콘도 등지에서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갖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일련의 일들을 종합해봤을 때 결국 이번 사건은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식에게라도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방법으로 나타난 일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여론은 “아들이 폭행당한 것을 아버지가 전면에 나서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 과연 진정한 자식사랑인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하다.

한화 관계자는 “김 회장이 자식들을 외국으로 보내 교육 시키면서 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해왔었는데 아들이 폭행을 당해 얼굴을 다쳤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며 “아버지로서, 경영자로서 김 회장의 인간적 측면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폭행사건에 대한 여론 아직은 비판여론 대세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2일 저녁, 본지 취재팀은 북창동 골목을 찾았다. 사건 이후 북창동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취재팀이 들어간 한 포장마차에서 때마침 주인과 손님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손님은 “나 같아도 아들이 맞고 들어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다”며 “재벌그룹 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커진 것이지 아버지로서의 김 회장의 입장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장마차 주인은 “아무리 그렇더라도 힘이 없었으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냐”며 “명백한 권력남용”이라고 받아쳤다.

이처럼 여론은 ‘대기업총수 김승연의 권력남용’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아버지 김승연’을 동정하는 여론으로 양분돼있다. 물론 비판론이 대세이기는 하나 동정론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러한 여론은 김 회장과 비슷한 나이대인 50대 중반이나 40대 이후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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