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폭행사건 파문 <5>
김승연의 두얼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이번 폭행사건으로 2년 전 유사사건까지 재론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유별난 자식 사랑이 불러온 보복폭행이 그룹 전체의 이미지를 추락시킨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법정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변수는 경찰의 증거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경찰은 현재 김 회장이 직접 폭력에 가담했는지, 조폭을 동원했는지, 폭행도구를 사용해 위협했는지 등에 대해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때늦은 ‘뒷북 수사’로 증거와 증인의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찰이 재벌그룹 회장의 불법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폭력사건에 대한 첩보가 접수된 지 한 달이 넘도록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대목은 여전히 석연치 않다. 일각에선 경찰 고위 간부 또는 정치권의 ‘입김’이 수사라인에 전달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또, 언론보도로 촉발된 경찰수사가 여론 등에 떼밀려 강경일변도로 진행되고 있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당 사건을 빌미로, 대선시즌을 앞두고 재벌기업의 정치적 움직임을 단속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김 회장 사건이 지연된 이유와 뒤늦게 불붙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집중 추적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저지른 ‘보복폭행’ 사건은 발생일로부터 한 달이 훌쩍 지나서야 비로소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사후에 강경수사로 돌아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복폭행 사건은 지난 3월 8일 김승연 회장의 아들이 청담동 소재 유흥업소 ‘가스통’에서 술을 마시다, 유흥업소 종사자들과 언쟁이 붙어 결국 폭행사건으로 번졌다. 여기서 김 회장의 차남은 미간이 찢어지는 등의 폭행을 당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김 회장이 그 즉시 업소를 급습해 ‘한밤의 느와르’를 연출한 것이다.


김승연 회장, 의혹에 휩싸인 행보
당시 목포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조폭이 동원됐다는 의혹과 야구방망이 등 폭력도구가 폭행에 사용됐다는 내용이 흘러나와 수사의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업계 일각에선, 북창동은 목포출신 건달들이 상경해 자리를 잡고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정기관에 따르면, 김 회장이 3월 8일 승용차 6대를 동원해 경호원 등 20여명이 나눠타고 청담동 소재 가라오케 ‘가스통’, 북창동 ‘서울클럽’, 청계산 등을 누비며 폭력에 가담한 유흥업소 직원들을 구타했다.

사건 당일 동원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행동대원들은 폭행현장에서 김 회장을 말리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만큼 현장의 분위기가 험악했다는 증거다.

그러나, 한화그룹은 “당일 (김 회장과) 함께 현장에 갔던 사람들은 회사 직원과 용역업체 소속”이라고 해명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오히려 “언론 보도가 너무 앞서 나가는 바람에 우리도 억울한 면이 많다”면서 “지금으로선 대응 자체가 더 큰 파장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수사결과가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 달 이상 공개되지 않았던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은 어떻게 불거지게 됐을까.

경찰도 이 부분에 대해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초로 첩보보고서를 올린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오영승 경위 등에 대해 감찰을 벌인 것도 정보 유출의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찰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광역수사대 소속 수사관에 대한 감찰을 끝내고, 남대문경찰서도 감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오 경위는 보고라인을 통해 이번 사건의 전말을 보고했지만, 오히려 서울경찰청에서 사건을 남대문서에 이첩시킴으로써 해당 사건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일부 경찰들은 “오히려, 오영승 경위가 할 말이 많을 것”이라며 내부 감찰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럼에도 경찰의 수사 정보 유출은 계속됐다. 김 회장의 집무실과 자택 압수수색 정보가 새나간 것.

가해자 혐의를 받고 있는 김 회장은 중요 대목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피해자들은 후환을 두려워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도 이번 사건의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뒷북 수사’와 잇단 정보유출 등의 책임을 묻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장 등 핵심 지휘라인을 출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행자위 소속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 등이 구체적인 내용 보고를 요청하고 나설 태세다.

하지만, 김 회장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지연된 것과 관련 “행자위 소속 의원들이 도움을 줬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는 루머가 국회 안팎에서 제기돼 파장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행자위 업무보고에서 김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뒷북수사’ ‘강경수사’의 노림수
반면, 경찰측은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인데, 국회에서 진행상황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상임위 출석에 반대입장을 전달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화그룹 고문을 맡고 있는 최기문 전경찰청장이 보복폭행 사건의 경위를 묻기 위해 경찰 고위인사에게 전화를 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전현직 고위 경찰 간부들이 이번 사건에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경찰의 초동 수사가 미흡했던 원인 중 하나라는 ‘오해’를 사고 있는 것.

경찰청 관계자는 그러나 “단순히 전화를 한 통 했다고 해서 마치 무언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의혹을 부풀리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면서 관련 소문을 일축했다.

한편에선 경찰이 돌연 강경수사 방침으로 돌아선 배경에는 ‘재벌기업과 대선’의 역학관계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물론, ‘뒷북 수사’라는 비난
을 받고 있는 경찰로서는 철저한 수사가 원칙일 수밖에 없는 정황도 있다.

지난 대선에서도 보여졌듯 재벌기업들은 유력 대선주자에게 상당한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해 왔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게 말이다.

17대 대선을 7개월여 남겨둔 시점에서 일부 대기업들이 또 다시 ‘줄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권 차원에서 강경한 수사를 주문
함으로써 조기에 ‘경고음’을 울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현재 대선구도는 한나라당의 ‘대세론’이 유지되면서 2002년 상황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
다.

유력 대선주자 캠프진영이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을 터다. 이쯤 되면 대선시즌에 ‘큰손’으로 자리매김한 재벌기업이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마련이다. 최근 들어 경제계 일각에서 이 부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정치권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구속영장 기각될 가능성 높아
정보기관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우발적으로 일어나긴 했지만, 이를 기회로 재벌기업들의 ‘운신의 폭’을 좁혀놓았다”며 “대선시즌을 앞두고 자금난을 겪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사정도 그렇거니와 대기업 손보기 차원에서 강경 수사를 주문한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한화그룹은 보수적 색채가 강한데다, 한나라당에 우호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파악한 집권세력 일부가 ‘보이지 않는 힘’을 가동했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없지 않다.

최근 정권과 사이가 벌어진 검찰이 수사 지휘권을 확실하게 가동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도 여론 또는 ‘제3의 압력’에 의해 수사가 진행돼서는 안된다는 검찰 나름의 판단이 들어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 법원 일각에선 김 회장의 영장청구가 결국 기각될 것이라는 쪽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직업적인 ‘조직 폭력배’가 아니고, 김 회장이 적정한 선에서 진술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구속여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법조계 출신 한나라당 A 의원도 “재벌 회장이기 때문에 여론에 밀려 가중처벌 식으로 가서는 안된다”면서 영장이 기각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화 김승연 회장과 정치권력의 친밀도는?

한화그룹은 화약제조 등을 주력사업으로내걸고 성장한 기업답게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다.

특히, 우익을 대변하고 있는 미국 공화당과도 상당한 친밀도를 자랑한다. 한나라당 한 중진 의원이 최근 미국을 다녀온 직후, 사석에서 “한화그룹이 미국 정가에서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한화는 공화당에 정치 후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벌기업 후계자인 김승연 회장은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1993년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된 바 있으며 2002년에는 대한생명 인수 로비의혹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당시 김연배 부회장이 모
든 책임을 지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돼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샀다. 김 부회장은 노무현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현업에 복귀했다.

2004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당시 김 회장은 돌연 해외 유학을 떠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한화의 로비력과 정관계 친밀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사건에 이름을 올린 김 회장은 대한생명 인수 이후 법무팀을 강화한 바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은 통이 큰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며 “일부 정치인과는 사석에서 터놓고 지낼 정도로 가까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이 불거지면서 정치권과의 친밀도 또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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