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국가대표 포상금 갈취한 ‘철면피 감독’ 스토리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전·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들이 소속팀 감독에게 억대의 금품을 뜯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선수들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와 은메달리스트 장성호와 김민수, 아시아유도선수권자 윤동식 등 총 13명. 지난 5월 22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따르면 이 선수들은 현역시절 우승으로 받은 각종 포상금 및 입단 계약금 등을 감독의 ‘서슬 퍼런 요구’에 못 이겨 6년간 150차례에 걸쳐 2억여 원을 뜯긴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하도록 물밑에서 지원해주기는커녕, 선수들의 돈을 상습적으로 갈취한 이 모 감독. 그는 과연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기에 이 같은 억대의 돈을 손에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일까.


경찰에 따르면 국가대표 유도선수들을 ‘등친’ 장본인은 한국마사회 유도부 전 감독 이모(46)씨. 그는 1998년 8월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6년간 소속선수 13명으로부터 150차례에 걸쳐 2억여 원을 뜯어낸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이씨는 1986년부터 평화민주당에서 정당관료로 일했으며, 98년 감독 취임 직전에는 새천년민주당 청년부장을 지낸 ‘정치권 인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명색이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이씨에게 유도 선수경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 그저 학창시절 취미로 유도를 배워본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비결은 ‘낙하산’이었다. 민주당이 집권을 하면서 불어 닥친 ‘낙하산 광풍’을 틈타 공기업 체육부 감독 자리를 차지했던 것.

한국마사회 유도부 감독직은 웬만한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도 맡기 힘든, 유도계 최선호 직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처럼 전문성은 없고 ‘돈에 눈먼’ 이씨가 감독직에 앉은 것이 화근이었다.

이씨는 99년 초 선수들을 불러 “유도단 운영이 너무 힘들다. 앞으로는 포상금의 20%씩을 걷겠다”고 통보했다. 불합리하고 일방적인 통보였지만
선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대회출전권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스카우트와 재계약 등 그야말로 감독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씨는 선수들이 불응하면 국내경기 출전을 제한하거나 재계약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협박하여 돈을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의 ‘막무가내식’ 결정에 모두가 따른 것은 아니었다.

유도선수 황모(32)씨는 “우리가 왜 돈을 내야 하느냐”며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혹독한 훈련뿐이었다. 심지어 부상을 당해도 계속 연습만 시켰다. 결국 황씨는 부상 후유증으로 젊은 나이에 선수생활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가 선수들에게 돈을 뜯어낸 방법도 가지가지다.

이씨는 2001년 황희태(28·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부터 “한국마사회에 입단시켜 줄테니 계약금을 가져오라”며 1000만원을 뜯어냈다.

2003년엔 김민수(31·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받은 대회 우승 포상금 중 150만원을 가져갔다.

뿐만 아니라 이씨는 장성호(29·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씨로부터 4년간 23차례에 걸쳐 각종 대회 출전 포상금 1500만원을 뜯어냈으며, ‘한판승의 사나이’로 불리는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 프라이드 FC에서 활약 중인 윤동식 선수에게서도 상당한 금액의 돈을 갈취해 간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이씨는 선수들의 전국체전 훈련지원비까지 수백만~수천만원씩 뜯어간 것으로 알려져 유도관계자 및 경찰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이런 식으로 이씨가 선수들에게서 뜯어낸 돈은 무려 2억여원. 6년여 간 총 150차례에 걸쳐 긁어모은 액수다. 선수들의 ‘피땀 섞인’ 돈을 선수들의 ‘생사 여탈’ 권한을 들먹이며 6년여 간 총 150차례에 걸쳐 긁어모은 액수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한국마사회에서도 자체감사를 통해 인지, 이씨를 직권면직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지난 4월 관련 첩보를 입수해 계좌를 추적, 관련자 사실 확인 등으로 구속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당시 피해자들이 팀에 소속돼 있어 피해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못했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금품 액수 및 방법 등 구체적인 갈취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마사회 측은 쏟아지는 비난에 난감해하는 분위기.

한 관계자는 “당시 포상금 등으로 선수단 경비를 충당했는데, 이중 일부를 감독이 유용한 점이 문제가 됐다”며 “이후 선수들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밝혀 사건이 마무리됐는데 이제 와서 왜 다시 불거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스포츠계 전반적 ‘관행’

이번 사건은 스포츠계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유도뿐만 아니라 수영, 리듬체조 등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감독들의 횡포는 이미 관행화돼 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이 대회 출전권뿐만 아니라 스카우트와 재계약, 제명권, 훈련지도 등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감독들의 횡포는 더욱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부산의 모 대학에서 수영부 감독이 동계훈련기간 학점과 대회출전 여부 등을 이유로 신입생들에게 1인당 300만~500만원 상당의 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올 초에는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발전을 둘러싸고 편파 판정 의혹과 함께 금품 상납 관행이 불거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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