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Alibaba)’가 지난 19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상정되자마자 주식 공모 가격이 38.07%나 뛰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공모가가 68달러에서 93.89 달러로 폭등한 것이다. 19일 알리바바의 시가 총액은 2314억 달러로 미국 페이스북(Facebook)의 2016억 달러를 능가했고 아마존닷컴(Amazone.com) 1531억 달러와 이베이(eBay) 650억 달러를 합친 총액을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1706억달러를 크게 앞질렀다. 인터넷 기업중에서는 구글(Google)의 4061억 달러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알리바바는 15년 전인 1999년 35세의 마윈(馬雲: 영문이름 잭마: Jack Ma)에 의해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서 창업되었다. 그는 가난한 경극배우의 아들로 1964년 출생했다. 162cm의 작은 키에도 싸움을 잘해 얻어맞는 친구들을 살려주는 협객 노릇도 했다. 그는 영어에는 소질이 있었으나 수학은 지지리 못해 고등학교를 재수해서 들어갔다. 대학은 삼수 끝에 항저우사범학원 영어과에 정원 미달로 겨우 턱걸이했다. 졸업후에는 영어교사가 되었다.

마윈은 1995년 통역회사 대표로 미국을 방문, 처음 인터넷을 보고는 자신의 일생을 거기에 걸기로 작심했다. 교사직을 사임하고 2만위안(329만원)을 투자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해주는 정보기술(IT) 회사 하이보(海博)네트워크를 세웠다. 창업 당시 사무실에는 중고 컴퓨터 한 대가 전부였다. 창업자금 2만위안은 대부분 회사 설립 등록비 등으로 썼고 컴퓨터와 집기 등을 더 마련할 여유는 없었다.

그 때만 해도 중국에 컴퓨터를 갖고 있는 가정은 극히 드물었다. 그는 e메일을 보내는 방법도 몰랐다. 인터넷을 열고 맥주와 중국을 찾아보려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마윈은 전자상거래회사 설립 허가를 받기 위해 정부 관리를 면담했다. 그는 관리에게 “오늘날 외국인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전 세계 어디로 부터도 상품을 구입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홍콩, 대만, 싱가포르로부터 컴퓨터를 통해 상품을 주문하는데 오직 중국만 그렇지 못하다.”며 전자상거래회사 설립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거절했고 그는 중국 상무성에 들어가 웹사이트 창설을 지원하였다.

기어코 마윈은 1999년 기업 대 기업 거래 회사인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2000년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20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했고 2003년엔 인터넷 쇼핑몰 타오바오(海寶)를 설립, 수수료를 받지 않으며 사세를 확장해갔다. 이베이는 중국의 인터넷 쇼핑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결국 마윈의 수수료 무료 공세에 견디다 못해 2006년 중국에서 철수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13억 인구 중 6억 명이 인터넷을 이용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2배에 달하는 숫자이다. 연간 가계 수입 9000 달러–34000 달러에 속하는 중국 중산층은 매년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앞으로도 중국 경제의 팽창과 함께 크게 확장하리라 예상된다. 그러면서도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과정에서 짝퉁 모조품이 끼어들어 신뢰성에 흠집을 낸다. 짝퉁 문제로 한때 입생로랑과 구찌로부터 고소를 당했던 일도 있었다. 짝퉁은 앞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어 새로운 난제로 떠올랐다.

마윈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미국의 큰 회사들처럼 주식을 전 사원에게 배당한다. 그의 주식 배당은 중국인들이 주식 개념도 모를 때였다. 그러나 마윈은 19일 주식 상장으로 6000여 전 현직 사원들에게 대박을 안겼다. 그도 중국 최고 부호가 되었다. 그는 알리바바를 일궈 중국 젊은이들에게 도전과 벤쳐기업 정신의 사표가 되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고교 재수와 대학 3수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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