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애인 납치·성폭행한 전직 경찰관

검찰에 따르면 두 사람의 ‘잘못된 만남’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했던 K씨는 우연히 A씨를 알게 됐다. K씨는 이미 기혼이었음에도 불구, A씨가 미군기지 내 우유를 납품할 수 있는 중개 사업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몇 번의 만남 끝에 진지하게 사귀게 된 이들은 내연의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부터 A씨가 K씨를 갑자기 멀리한 것.

A씨의 검찰 진술내용에 따르면 A씨는 K씨가 자신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재산까지 노리자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K씨를 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지옥의 문’을 여는 첫걸음이 되고 말았다.


‘물불 안 가리는’ 엽기 만행

K씨는 A씨가 자신의 연락을 계속 피하고 만나주지도 않자, A씨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K씨는 A씨의 재산은 물론 A씨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주물러야겠다고 결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엽기 범죄행각을 꾸몄다.

올해 1월 초, K씨는 서울 강남에서 귀가하는 A씨를 차량에 태워 청테이프로 입을 막아 얼굴 등을 수차례 때린 뒤, 인근 모텔에 끌고 가 성폭행을 했다.

이 과정에서 K씨는 A씨의 손목과 발목에 수갑을 채워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금하는가 하면, 성폭행 후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A씨의 나체사진을 찍어 수치심을 자극하는 등 잔인하다 못해 파렴치한 행위를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K씨는 밧줄을 A씨의 목에 걸거나 등산용 칼로 찌를 것처럼 위협, “우유 중개 사업권을 넘기라”며 살해 협박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K씨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씨의 약점을 잡기 위해 A씨의 부모님에 대한 철저한 뒷조사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

K씨는 A씨의 나체사진, 주민등록증 사진, 가족들의 전과, 재산세 납세확인자료 등 각각의 자료를 한권의 파일로 만들어, 이를 A씨에게 보여주며 본격적으로 협박하기 시작했다. “너와 네 부모 뒷조사를 마쳤다. 재산이 많은데 3년간 재산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더라.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살해한 뒤 파일을 네 부모에게 보내고, 왜 네가 죽었는지 알게 해 주겠다”고 협박했던 것.

이같은 K씨의 치밀한 뒷조사와 서슬 퍼런 위협에 겁먹은 A씨는 결국 사업권 양도 확약서를 넘긴다는 약속을 하고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경기도, 강원도 일대 등으로 K씨에게 끌려 다닌 지 112시간 40여분 만에 만끽하는 ‘자유’였다.

하지만 K씨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며칠 뒤 그는 재산 명의를 자신의 앞으로 해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다시 A씨를 붙잡아 낭떠러지로 끌고 가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재산 및 육체 포기각서 강요

A씨는 일단 K씨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는 말로 안심시킨 후 ‘목숨 걸고’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내 K씨에게 붙잡혀 전신을 구타당해 심한 외상을 입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A씨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한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모든 재산을 K씨의 명의로 한다. 부부임을 서로 인정하며 다른 남자와 만나지 않는다. 약속을 어기면 30억원을 준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공증을 하기에 이른다.

이 같은 치졸하고 파렴치한 방법으로 중개 사업권 확약서 및 혼인각서를 손에 거머쥐게 된 K씨. 그의 바람대로 애초에 계획했던 ‘목적달성’을 하게 됐지만, 이후에도 A씨에 대한 구타와 강간은 멈추지 않았다.

한 검찰관계자는 “K씨는 확약서를 받은 후에도 A씨를 수차례 납치해 구타와 강간을 일삼으며 괴롭혔다”면서 “뿐만 아니라 A씨에게 재산과 육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는 각서까지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K씨의 악랄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브레이크 없는 K씨의 만행에 견디다 못한 A씨는 결국 검찰에 고소했고, 이로써 K씨의 범행은 막을 내리게 됐다.

검찰관계자는 “조사결과 K씨는 지난 1월 사직했으며, 사직하면서 수갑을 반납하지 않고 범행의 도구로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또 그는 사직하기 직전에 A씨를 협박하려고 범죄경력조회, 수사경력조회를 발급받으면서 ‘수사’ 목적에 쓸 것이라고 속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각종 수사를 하는 경찰에게 부여된 특권을 오히려 범죄에 악용한 셈이다.

검찰은 K씨에 대해 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착수했다. K씨는 검찰이 소환을 통보하자, 지난달 말 미국으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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