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부는 ‘개헌’ 바람 그 이면 대해부

“단임제 문제점 공감하지만 개헌은 때가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땐 반기문 총장 ‘주가 상승’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도입 땐 대권주자 간 합종연횡
친박계·청와대 “지금은 경제 살릴 때” 개헌 부정적

[일요서울 | 박형남 기자] 한동안 잠잠하던 개헌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여야에선 개헌 논의가 공론화되고 있다. 여야 의원 152명이 참여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지난 1일 조찬 모임을 했던 것이다. 지난 2월 전체 모임 이후 8개월 만이다. 그러나 여전히 개헌 여부에 대해서 대부분의 인사들이 물음표를 단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 등 역대 정권에서 회자되다가 사그라졌던 단골 메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권와 청와대에서는 개헌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이다. 게다가 친박주류, 비주류 측의 입장도 갈리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사뭇’ 다르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차기 대권 주자들이 ‘차기 대권 룰’을 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을 손질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에는 여야 모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태다. 한 언론사가 지난달 1~19일, 18일간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3.9%가 개헌에 대해 ‘매우 필요’, ‘필요한 편’이라고 답했다. 게다가 과거 ‘개헌’에 논의가 있었다.

실제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과 총선 주기를 일치시키고 권력구조를 5년 중임제로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열한 공방 끝에 18대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합의했다. 이후 개헌을 위한 연구 및 여론 수렴에 나섰고, 개헌 보고서까지 만들어졌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이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불발됐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당시 개헌 공약을 제시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에 대해 부정적이다. 경제 살리기에 주력할 시점에서 개헌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친박 개헌 반대 “경제 살리기 올인”

더구나 친박계 의원들도 개헌 논의를 현 시점에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친박계 원로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개헌을 한 번 논의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타이밍 상 금년에는 개헌 문제에 대해서 활발하게 논의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이정현 최고위원도 “대통령 단임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기에 논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면서도 “개헌은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친박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박 대통령이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이라는 것은 거대한 이슈이기 때문에 한번 시작되면 블랙홀 같이 모두 거기에 빠져들어서 이것저것 할 것을 못한다”며 “올해는 다함께 우선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내야 할 때”라고 강조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여권 내 한 당직자는 “친박계와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개헌’ 논의 자체에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개헌은 권력 누수와 관련 있기 때문”이라며 “후계구도를 논의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친박계와 청와대에선 기분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개헌 자체가 논의되는 것은 박 대통령과 ‘척’을 지고 따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점 때문에 친박계에서는 개헌추진에 대해 비관적이다. 박근혜 정부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정가의 분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강하게 밀어부칠 심산이다. 여야 의원 모임인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은 지난 1일 국회 일정상 지금이 개헌 적기, 개헌 현실화를 위해 10월 정기국회에서 개헌특위 구성 등에 대한 논의를 했다.

여당 간사 이군현 사무총장은 “개헌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의장이 여야의 뜻을 받아들여 조속히 개헌특위를 구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당 간사인 우윤근 정책위의장도 “여야 대표와 국회의장까지 만나 개헌특위를 반드시 만들어달라고 했다. 국회의장도 동의했고,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수락했다”면서 “김무성 대표는 즉답을 안했지만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이 개헌 필요성을 강조해 왔던터라 이번에는 개헌이 실현될 수 있다는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불붙는 개헌론 ‘권력을 잡아라!’

그렇다면 개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총선과 대선이 따로 치러지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선과 총선을 같이 실시하고 지방선거를 그 사이에 배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관계자는 “2017년 12월 대선이 치러진 뒤 2018년 2월 25일 차기 정부가 취임한다. 국회의원 선거도 이 임기에 맞춰야 된다. 결과적으로 20대 국회의원은 2년도 하지 않고 그만두라는 얘기인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에는 일부 인사의 정치적 꿈을 이루기 위한 의도가 짙다”고 말했다. 차기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인사들의 경우 20대 임기를 단축할 시 국회의원 중도사퇴를 하지 않고도 출마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차기 대권 룰을 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분권형 개헌이 될 경우 외교·안보·국방 등 외치(外治)를 대통령, 경제와 내치(內治)는 총리가 담당한다. 대통령에게 쏠려 있는 권력을 막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대통령과 총리 후보 간의 연대도 가능하다. 이 외에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도입하면 대통령-부통령 후보로 ‘러닝메이트’를 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손사래치고 있지만 여야에서는 영입 대상으로 늘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분권형 개헌이 이뤄지면 반 총장은 외교, 안보, 국방 분야에 주력하고 다른 주자는 경제와 내치에 주력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여권 한 당직자는 “당내 세가 없는 반 총장은 외치에 신경을 쓰고 나머지는 당내 인사들이 장악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권략을 잡고 싶은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얼굴마담으로 반 총장을 내세우고, 권력은 유력인사들이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태호, 이인제 최고위원, 이재오 의원, 정의화 국회의장 등도 차기 대권에 관심이 많고, 김무성 김문수 등에 비해 세가 약한 인사들에게는 권력을 잡을 수 있는 복안 중 하나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4년 정부통령제 역시 여야 대권 주자들 간의 합종연횡이 가능하다”며 “특히 여권 내 뚜렷한 대선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러닝메이트만 잘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유력 대권 후보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결과적으로 여야가 개헌에 힘을 목을 매는 것도 권력을 쥐기 위한 정치인들의 개인적 욕심이 내포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개헌에 힘이 점차적으로 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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