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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K 김무성과 TK 김문수의 결합
이이제이 전략으로 친박 포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 사이의 ‘문-무 합작’을 깨기 위한 친박계의 저항이 하루가 다르게 거세지고 있다.(일요서울 1065호 참조) 그러자 김 대표의 ‘친박 색채 지우기’도 급물살을 탔다. 특히 김무성 대표 체제의 신주류는 1990년 민정-민주-공화당 3당 통합 이후 소수파인 민주계를 이끌던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다수파인 민정계를 몰락시킨 과정을 벤치마킹하는 모습이다.

서청원 재등장 결집 노려

현재 친박계의 재결속 움직임은 매우 구체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의 재등장이다. 서 최고위원은 7·14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서 친박계의 간판주자로 나섰다가 김 대표에게 패배한 이후 침묵을 지켜오다 최근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일 경기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선 친이계 이재오 의원 등이 공론화에 불을 댕긴 ‘개헌론’이 화두가 됐다. 서 최고위원은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된 만큼 개헌논의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상조다. 개헌논의는 내년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신중론을 폈다.

앞서 9월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선 세월호특별법 협상과 관련해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야당이 카드가 없더라도 만나라”며 훈수를 두기도 했다. 또 김문수 위원장을 비롯한 비박계 일색인 보수혁신위원회 인선과 관련, “골고루 사람들을 등용해서 써야 하는데 그게 아쉽다”고 비판했다.

서 최고위원은 김 대표를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어느 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독선, 독주한다고 이야기를 해놓고 지금 와서 당의 얼굴이 바뀌었다고, 전철을 밟아서 자기들하고 친한 사람들 데려다가 인사를 한다면 그것 자체가 개혁이 아니다”고 독설을 날렸다.

친박계 재결속을 위한 노골적인 움직임도 포착된다. 서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박 핵심들이 참여하고 있는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의 재가동이다. 이 포럼은 지난해 11월 중순 친박계 유기준·윤상현·홍문종 의원 등 30여 명이 결성했다. 하지만 7·14 전당대회, 7·30 재·보궐선거 기간 활동을 자제했다.

그러나 친박계의 위기감이 높아지자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매고 있다. 지난 25일에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두 달 만에 열었다. 이번 달엔 ‘김무성 대항마’로 떠오른 친박계 핵심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초청해 ‘한국 경제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또 7·30 재·보궐선거를 통해 등원한 이정현 최고위원 등을 새로 영입해 몸집을 불리기로 했다. 포럼 소속 홍문종 의원은 친박 의원들을 별도로 규합해 통일·경제 연구 모임을 결성할 것이라고 한다.

박대통령이 김대표 견제?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김 대표를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9월 16일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재합의안 준수를 못 박은 발언도 김 대표가 ‘자기 정치’를 위해 야당에게 대폭 양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쐐기를 박았다는 시각이다.

김 대표는 최근 몇몇 친박계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친박-비박의 힘겨루기가 잇달아 언론에 보도되는 데 대해 당혹감을 표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김 대표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청와대와 각을 세운다고 보도한다.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청와대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 것도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는데, 언론은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다고 보도하더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런 발언은 친박계 의원들과의 모임 자리였기 때문에 나왔다고 봐야 한다. 실제론 김문수 위원장과 이재오 의원을 비롯한 비박계 규합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한편, 과거 자신을 따랐던 친박계를 포섭하기 위한 구상에 나섰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YS 벤치마킹론’이다.

새누리당의 뿌리는 민주자유당이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만든 정당이다. 처음엔 다수파인 민정계가 당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 9단’인 YS는 합당 직후부터 민정계 무력화 전략을 세워 하나하나 실행해 나갔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실시되는 차기 대통령선거에 민정계, 그 중에서도 박철언 전 의원을 내세우려고 했다. 이때부터 YS의 대(對)민정계 투쟁이 시작됐다. 먼저 막강한 사조직인 ‘월계수회’를 이끌고 있던 박철언 전 의원과 권력투쟁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뒀다.

당시 내각제 합의 각서 유출 파문은 YS가 당내에서 민정계 색채를 지우고 민주계 색깔로 채우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3당 통합 당시 내각제를 추진키로 합의한 문건이 외부로 유출됐고, YS는 이를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이며 마산으로 내려가 칩거 했다. 민정계가 내각제 합의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각서를 언론에 유출했다며 여론전을 펼친 것이다.

YS 도운 김윤환 전 의원

결국 여론을 등에 업은 YS는 당을 장악했다. ‘YS 대세론’이 퍼지자 박철언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이었던 강재섭 전 의원을 비롯한 민정계들이 속속 YS의 그늘로 몰려들었다. 결국 1992년 대선에서 YS는 여당 후보로 나서 대권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허주는 경북 선산(현 구미) 출신으로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 32회 동기인 민정계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YS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민정계 의원들을 전향시키는 데 앞장섰다.

허주의 YS 캠프 합류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YS의 PK(부산·경남)에 허주의 TK(대구·경북)가 합류해 영남권 전체의 표 결집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때 허주는 고향 대구·경북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남이가”를 구호로 외치면서 영남권의 결속을 다져나갔다.

김무성 대표 진영은 이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PK 김무성’에 TK의 유력인물이 가세하면 ‘대세론’이 형성될 것이고, 이 경우 친박계는 자연스럽게 붕괴되면서 김무성의 그늘 아래 모여들 것이란 마스터플랜이다.

적합한 인물도 있다. 바로 김 대표가 끌어들인 김문수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경기도지사를 지냈지만 경북 영천이 고향으로 대구 경북고를 나온 TK 출신이다. 그는 최근 들어 대구에서 택시를 몰면서 민생탐방에 나서는 등 부쩍 TK를 챙기고 있다.

물론, 아직은 김 위원장이 TK를 규합하기엔 힘이 약하다. 친박계 일색인 TK에선 오히려 최경환 부총리라는 강력한 김무성 대항마도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의 합류는 김 대표가 대구·경북지역에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혁신위 첫 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와 저 사이에 경쟁, 이런 얘기를 하는데 경쟁이 있다면 혁신의 경쟁이다. 경쟁 이전에 우리는 동지이고 친구이고 앞으로 일을 해나갈 협력자”라고 말했다. ‘문-무 합작’의 공고함을 거듭 강조한 발언이다.

김 대표는 이런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김 대표의 부인 최양옥 여사가 친박계를 포함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부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진 것도 차곡차곡 친박계를 포섭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최 여사는 이날 90여 명의 의원 부인들과 예술의전당 내 한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한 뒤 콘서트홀에서 열린 ‘대한민국국제음악제’를 관람했다. 최 여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으로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최치환 전 의원의 딸이다.

김 대표 진영은 내년 5월에 실시되는 원내대표 경선을 친박 색채 빼기의 고비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 때까지 1차 친박계 포섭 작업을 완료한다는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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