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ㆍ北 극비대화 가려진 비밀

“김양건 비서가 리무진 차량 안에서 누군가와 접촉”
남-북-러 합작 등 우리측 인사와 논의 했을 가능성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북한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대남비서 등 북한 최고위 핵심인사들이 지난 4일 오전 전격적으로 남한을 방문, 같은날 밤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해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9시 평양을 출발, 서해직항로를 통해 오전 10시10분 인천공항에 도착해 북한 선수단을 격려하고 폐회식에 참석하고 난 뒤 밤 10시쯤 돌아갔다. 김 비서 등은 이날 인천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만나 환담하고 오찬도 함께했다.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최고위급 대표단을 전격 파견하자 그 배경과 의도를 두고 여러 분석과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방문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황병서 군부 총정치국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자리까지 꿰찬 인물이다. 또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다음으로 북한의 최고 실세로 평가받는다.
특히 황 정치국장은 사상사업과 조직 및 인사 등 북한군의 핵심업무를 총괄하는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방문은 단순 폐막식 참가 이상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까지 동반해 일부에서는 남-북 간에 중대한 극비 논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적지 않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대표단 파견은 북측이 지난 3일 남측에 갑작스럽게 방남 계획을 통보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북측이 먼저 제안해 성사됐다는 것이다.

북한이 최고위 핵심실세를 남측에 파견하면서 그 의도를 파악하려는 분석이 적지 않지만 최근 청와대 주변에서는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들이 들리고 있다. 이렇게 초중량급 대표단을 남측에 파견한 것은 이들의 파견이 남북관계 개선을 놓고 남측과 중대 사안을 논의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북 핵심실세들의 방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북한은 2009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김기남 당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조의특사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당시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만나 남북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북한 특유의 정치적 교란전술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더구나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간 직후인 지난 7일 남북 해군 양측이 NLL 해상에서 서로 경고사격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 이러한 분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손님의 의미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부에서는 북한이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계기로 최고위 인사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남측에 보내 박 대통령에게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전달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황병서와 최룡해를 폐막식에 보내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남한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상호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또 남북관계와 관련된 목적뿐 아니라 이번 대회에서 선전을 펼친 북한 선수단을 치하하고 국제적으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서 여자축구 우승을 비롯해 역도에서 4개의 금메달을 따는 등 금 11, 은 14, 동 14으로 종합 7위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12년 만에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순위10권에 진입해 북한 내부에서도 축제분위기가 완연하다.

북한의 이 같은 성적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로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식량문제를 비롯해 장성택 처형 등 끊임없이 체제 불안정 현상에 시달렸다. 김정은이 실권을 잡은 이후 국제적으로 북한이 발전적 성과를 보이자 이를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고 이를 위해 실세들을 남한으로 내려보내 이목을 끄는 이벤트를 벌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 최근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최고위급 대표단을 직접 보내 국가의 존재감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 제1위원장의 중요 정책 중의 하나인 체육중시정책을 통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만큼 이번 최고 실세인 황병서와 최룡해의 폐막식 참석은 선수들의 선전을 김정은 체제의 성과로 미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北 실세 3인방 방문 미스터리

일각에서는 황병서 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비서 등 최고 실세 3인방의 갑작스러운 방남을 놓고 몇 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이 과연 남한의 각 분야 실권자들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그리고 이들이 시선을 끄는 사이 뒤로 비선 접촉라인은 없었는지 등을 놓고 여러 말이 무성하다.

북한 최고위층 3인방이 왜 한꺼번에 방남했는지와 관련, 북한의 선전을 치하하기 위한 방남치고 지나치게 초호화 방문단이라는 느낌이 다분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아시안게임을 명분으로 내세워 남북한이 고위급 비공식 대화를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아울러 김정은이 우리측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핵심 최측근을 내려보낸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 핵심 3인방이 김정은의 전용기를 타고 방남했다는 것은 이들이 김정은의 특사자격으로 방남했다는 추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이 전용기는 김정은이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들에게 전용기 탑승을 허락하게 한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또 실세 3인방의 행보를 놓고도 여러 말이 나온다. 이들이 인천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할 당시 우리 측은 이들에게 각각 1대씩의 리무진을 제공했으나 최룡해 비서가 황병서 국장과 같은 차량에 타겠다고 해 한 대는 돌려보내졌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의전을 위해 제공한 차를 돌려보내면서까지 차량을 두 대로 나눠탄 이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선 두 사람이 리무진 내에서 우리 측 입장에 따른 외교 대응전략 시나리오를 검토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혼자 리무진을 탄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극비리에 혼자 누군가와 접촉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측에서 제공한 차량 안에서 북한 핵심실세들이 밀담을 나누는 것은 보안상 적절치 않다. 이 때문에 김양건 비서가 차량 안에서 별도로 누군가와 만남을 가진 것이고 나머지 두사람은 경호를 위해 한 대의 차량에 탄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또 지난 5일 평양 순안공항 인천 아시안게임 환영식 참석 인사에서 황병서 국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놓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필두로 한 환영식 참석 인사 중엔 깜짝 방한했던 최룡해, 김양건 노동당 비서의 모습이 있었지만 황병서 국장은 없었다.

이 시각 황병서 국장은 김정은을 비롯해 군부 핵심 실세들과 남한 방문 성과를 놓고 중요 논의를 하고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발목 수술 후 가족별장에서 요양 중인 김정은을 만나 대면보고를 하고 있었다는 말도 들린다.

남-북 협력사업 논의 메신저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들 3인방이 남한에서 교차행보를 함과 동시에 짧은 시간을 이용해 우리측 핵심 인사들과 만나 남-북-러 합작사업에 대한 논의와 남북간 협력 논의를 극비리에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이들 3인방은 방문 당일 가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과 가진 오찬회담에서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10월말〜11월초 남측이 원하는 시기에 하겠다는 입장을 전하는 등 대화 복원 의사를 밝혔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오늘 오찬을 겸한 회담에서 북측은 우리가 제안했던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10월말〜11월초에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고위급 접촉 개최에 필요한 세부 사항은 실무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임 대변인은 “북측은 ‘2차 회담이라고 한 것이 앞으로 남북 간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고위급 남북 당국자 간 만남인 이날 회담에서 양측 모두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 대표단은 김정은의 친서는 갖고 오지 않았지만 (대남) 메시지를 들고 왔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친서는 없었다. 회담에서 정상회담과 관련한 언급도 없었다. 실무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밝히면서도 “공식적으로 밝힌 것 이외 대화내용은 공개할 것이 없다”고 전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방문이 남-북-러 협력사업과 남북간 경제협력방안 논의를 위한 김정은의 메시지 전달 목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 같이 보는 근거는 러시아를 방문 중인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지난 7일(현지시간) 극동 하바롭스크주를 찾아 외국 자본 차입을 통한 농업 협력 등을 제안한 데 있다.

이 같은 협력제안은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의 UN순방에 이어 지난 4일 방남 이후 나온 것이어서 ‘핵심 3인방 김정은 특사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리 외무상은 이날 하바롭스크 주지사 뱌체슬라프 슈포르트와 면담하는 자리에서 북한이 카타르로부터 농업 개발 자금으로 수백만 달러의 차관을 들여오기로 합의했다면서 이 자금의 일부를 북-러 합작 사업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러시아 방문 기간에 농업분야 장기 협력 전망을 살펴보기 위해 일부러 극동 지역을 방문했다”면서 “양국 협력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가 농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곡물 및 채소 재배, 목축뿐 아니라 생산물 가공 공장을 설립하는 등의 장기적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카타르 차관으로 필요한 기술과 장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귀국 후 북-러 합작 사업 보고서를 작성해 카타르 정부로도 보낼 것이라며 차관 도입을 위해선 구체적 협력 계획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슈포르트 주지사도 리 외무상의 농업 분야 협력 제안에 동의를 표하면서 이밖에 문화·스포츠, 항공기 제작 등의 분야 협력도 제안했다.

리 외무상은 지난달 30일 모스크바에 도착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유리트루트녜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 니콜라이 페도로프 농업부 장관 등 러시아 정부 인사들과 회담한 데 이어 극동 지역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4~6일 아무르주를 방문해 농업·임업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한 그는 지난 7일 하바롭스크주 일정을 소화했다.

리 외무상은 뒤이어 8~9일 사할린주, 9~10일 연해주 등지를 방문한 뒤 10일 오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고려항공편으로 귀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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