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일가, 국적 ‘따로’ 사업 ‘따로’

▲ <구본능>


재벌家 상당수 미국 국적 취득 비율 높아
삼성·롯데·현대차 등 10대그룹 다수 포함

후계자들 외국인 학교 입학 비리까지 정황 드러나
정진후 의원 “사회지도층들의 도적적 해이 심각해”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우리나라 대그룹 총수들이 자녀들의 국적을 포기하게 만들면서 부를 세습하고자 노력해 온 실태가 드러났다. 특히 국내 10대 재벌 일가는 1세대부터 5세대 중 사망자를 제외한 921명 가운데 미국 국적자만 10%를 넘어가고 있었다. 또 이들 중 자녀들이 외국인학교에 불법·편법입학한 정황도 몇몇이 포착돼 사회적 파장을 예고한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일요서울]이 이를 다시 한번 짚어봤다.


재벌일가의 상당수가 외국, 특히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들의 국적을 면밀히 분석한 한 시사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파장이 뜨겁다. KBS 시사기획 창은 국내 10대 재벌일가의 1세대부터 5세대 중 사망자를 제외한 921명을 대상으로 삼아 이들의 국적을 확인, 방송했다.

조사는 정부에서 발간하는 관보를 통해 이들의 명단이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관보에는 우리나라 국적을 포기(이탈)하거나 상실한 사람, 국적 회복자가 나오는데 지난 1980년부터 2014년까지로 기간을 한정해 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그리고 조사 대상 중 상당수가 미국 시민권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의 손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셋째 딸 정윤이 씨,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딸 조현민씨 등은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은 물론 미국 시민이었다.

롯데그룹의 경우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씨가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가 또 다시 상실해 현재는 일본 국적로 남은 것이 확인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씨와 큰딸인 구연경씨도 자녀를 미국에서 출산했다. 이를 모두 감안하면 구본무 회장의 손자와 손녀 4명은 모두 미국의 시민권자인 셈이다.

결국 이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921명 가운데 외국 국적자는 115명이었고, 이 가운데 미국 국적자는 95명으로 나왔다. 10% 가량이 미국인이다. 또 이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대별로 따져보면 조사대상 921명 가운데 미국 출생자는 119명이었고, 1~2세대는 5명에 불과했지만 3~5세대는 114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미성년자 121명 가운데 38명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출생률이 31% 수준을 넘었다.

불법·편법 끝없는 활개

이런 와중에 재벌가 자녀들이 외국인학교 불법·편법입학 정황도 포착됐다. 외국인 학교는 전국에 51곳이 존재한다. 잔디구장을 비롯한 첨단 시설과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는 폐쇄성,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는 특징 때문에 많은 학부모들이 동경하는 대상이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녀가 외국인학교에 불법으로 입학한 정황이 포착됐고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의 차남,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의 두 딸, 정일선 BNG스틸 사장의 차녀가 편법 입학한 정황이 밝혀졌다.

또 이들 5명의 재벌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하기 쉬운 싱가포르나 에콰도르, 캄보디아의 영주권·국적을 취득했다. 해당 국가들은 모두 현지에 투자만 하면 영주권이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우선 구본능 회장의 장녀는 2009년 1월 사립초등학교에서 서울아카데미국제학교로 전학하는 과정에서 영주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국인전형(영주권 입학자격)으로 입학을 허가 받았다.

구본능 회장의 가족은 싱가포르 경제에 공헌한 공로로 영주권을 취득했고 외국인학교 입학 1년 후 싱가포르 영주권을 학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서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입학 후 제출한다는 전제하에 입학이 허용됐다.

싱가포르 영주권은 100만~150만 싱가포르달러(약 8억3443만 원~12억5165만 원) 이상을 투자해 직접 창업을 하거나, 현지 벤처캐피털 또는 기업·재단 등에 투자하면 취득할 수 있다.

박정원 회장의 차남 역시 마찬가지다. 편법으로 싱가포르 영주권을 취득해 서울국제학교에 입학했다. 박정원 회장은 2004년 두산상사 싱가포르 현지법인에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고 차남은 이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했다. 그러나 박정원 회장의 차남은 싱가포르에 거주한 적이 없었다.

정몽석 회장의 두 딸은 싱가포르가 아닌 에콰도르 영주권을 취득해 서울국제학교에 입학했다. 에콰도르 영주권은 싱가포르와 똑같이 약간의 투자로 획득 가능했다.

앞서 에콰도르 영주권은 2012년 브로커를 통해 허위국적 취득으로 외국인학교에 불법 입학해 검찰에 적발되었던 중남미 주요 국가 중 하나다. 에콰도르 영주권은 최소 2만5000달러(약 2652만 원) 이상을 은행에 1년 이상 예치하거나, 최소 2만5000달러 상당의 주택이나 토지를 구입하면 영주권 취득이 가능하다.

더불어 정일선 사장의 차녀는 2006년 1월 정일선 사장의 배우자와 함께 캄보디아 시민권을 취득했다. 취득 당시 나이는 7살에 불과했지만 불가능은 없었다. 정일선 사장의 차녀는 캄보디아 시민권 취득 2개월 후인 2006년 3월 서울아카데미국제학교에 외국인 전형으로 입학했다. 정일선 사장은 역시 차녀가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한 경로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캄보디아 또한 싱가포르나 에콰도르처럼 시민권 취득이 용이하다. 12억5000만 리엘(약 3억7132만 원) 이상 투자하면 시민권 취득이 가능하고, 10억 리엘(약 2억9705만 원) 이상의 현금을 국가재정에 기부하면 범죄기록이 없음을 증명하는 범죄기록 증명서 제출도 면제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진후 의원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을 위해 설립된 외국인학교가 사회지도층들의 불법·편법입학으로 설립목적이 변질되고 있다”며 “검찰은 구본능 회장의 자녀처럼 불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추가로 있는지 수사에 착수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육부 역시 2013년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방지대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외국인학교가 설립목적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대책을 내놔야한다”며 “교육부는 투자이민 등을 통해 해외국적을 취득하여 편법으로 외국인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없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정진후 의원이 경기교육청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들은 2012년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외국인학교 불법 입학으로 처벌했던 47명의 학부모 명단조차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연예인 자녀들이 외국인학교에 불법 입학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당시 국무총리 일가 등 사회지도층과 두산, 현대 등 재벌 일가들이 줄줄이 적발됐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학교를 자퇴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시사기획 창은 이와 관련해 “상당수의 자녀들은 미국 하와이 등에서 외국인학교 입학에 필요한 해외 체류기간 1095일을 채운 뒤 다시 국내로 들어와 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번의 단죄로 불법과 편법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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