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불 지핀 ‘중국 반란’ 속내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 당 대표의 ‘상하이發 개헌 발언’으로 여권 내 후폭풍이 거세다. 김 대표는 중국 방문길에 올라 ‘개헌은 불가피하다’는 발언을 해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이 부정적인 발언을 한 지 얼마되지도 않아 집권 여당의 대표 입에서 개헌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후폭풍을 감안한 듯 귀국 후 가진 국감 대책회의 자리에서 ‘대통령께 죄송하다’고 꼬리를 내렸다. 김 대표는 ‘단순한 실언’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YS정치문화생으로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략’이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박 대통령과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 대표간 대결구도가 본격화 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6일 중국 방문 중 기자간담회를 마친 자리에서 개헌론을 전격 제기하면서 향후 당·청 간 상당한 파문이 일 전망이다. 김 대표는 이날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론) 봇물이 터질 것이다.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며 개헌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 이에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개헌론에 대해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집권여당 대표가 실언이건 기획이건 개헌 불가피론을 펴면서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모양새가 됐다.

박 대통령에게 ‘반기’든 무대 왜

김 대표는 방중 마지막 날인 이날 중국 상하이 홍치아오 영빈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우리 사회가 철저한 진영논리에 빠져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이기 때문에 권력 쟁취전이 발생하고, 권력을 분점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개헌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도 내각제에 대한 부침 때문에 정·부통령제를 선호했는데 이원집정부제도 검토해봐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개헌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으로, 직선 대통령이 외교와 국방을 담당하고 국회에서 뽑힌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언급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으로 개헌 구상안까지 내놓았다. 김 대표는 “(우리 사회가) 과거엔 중립지대를 허용 안 했다. 이제는 중립지대를 허용해 연정으로 가는 게 정치안정을 가져오고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며 정당 간 합종연횡하는 ‘연정’을 강조했다. 특히 김 대표는 “다음 대선에 가까이 가면 (개헌은) 안 되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과 친박(친박근혜)계 주류의 ‘시기상조론’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당장 친박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3년이상 남았는데 너무 일찍 ‘개헌 발언’을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상당수 차지했다. 나아가 “현직 대통령이 대통령을 만들 수는 없어도 안 되게는 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내놓으며 김 대표를 압박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 대표는 귀국 후 ‘개헌 발언’ 관련해 고개를 숙여 박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김 대표는 문제의 발언 다음날인 17일 당 국감대책회의에 참석해 “중국에서 예민한 개헌 논의를 촉발시킨 것으로 크게 확대보도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식사하는 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있던 기자와 환담하던 중 개헌에 관한 질문에 답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민감한 사항이었으므로 답변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불찰이었다”며 “박 대통령께서 이탈리아 아셈회의에 참석하고 계신데 예의가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이어 회의가 끝난 후 가진 국회 출입기자와 일문일답에서 “기자간담회 끝나고 밥먹는 자리에서 개헌 얘기가 나와 평소 생각한대로 정기국회 끝날 때까지 개헌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렇게 폭발적으로 될지 몰랐다”며 “항상 겸손한 사람이라서 내가 얘기한 게 이렇게 크게 강조될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청와대와 물밑 교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전혀 없었다”며 “어쨌든 대통령이 해외에서 고생하시는데 ‘대통령과 정면충돌’ 이래 기사가 나와 미안하게 됐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자세를 낮췄다.

나아가 김 대표는 “내가 원래 경계심이 없는 사람이라 기지간담회 끝나고 밥 먹으면서 얘기하길래 얘기했다”며 “‘연말까지 해선 안 된다’ 이거하고 ‘정기국회 끝나면 얘기 튼다’는 의미에서...이유야 어떻든 이럴 때에는 공인이니깐 내 잘못을 인정하고 빨리 해명하고 잘못된 건 잘못한다고 하고 끝을 내는 게 맞다”고 밝혔다. 특히 개헌논의 관련 201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저자세를 유지했다.

단순한 실언? 치밀하게 기획된 발언?

하지만 김 대표의 ‘단순한 실언’이라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친박 비박을 떠나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비판이 당내에 일고 있다. 여권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김 대표는 치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말실수로 보는 게 맞다”면서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 리더십에 생채기를 입었고 친박이 결집하는 계기가 된 데에다 청와대와 각을 지는 불안한 당 대표 모습을 보였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어 이 인사는 “현직 대통령이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못해도 안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며 “사전에 청와대와 물밑 교감이 있었다면 관계도 좋고 청와대가 지원하는 분위기로 좋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고 덧붙였다. ‘너무 빠르다’고 평가한 배경에 대해서도 이 인사는 “대통령 임기가 3년 이상 남아 레임덕이 올 시기도 아니고 국정 지지도가 50%대로 안정적인데 너무 앞서게 아닌가 싶다”면서 “친박계 의원들 역시 불만은 없지 않지만 당 대표가 공천권을 갖고 있어 말을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여당 비박계 한 당직자는 다른 평가를 내놓았다. 이 인사는 “개헌에 대한 필요성은 국회의원 231명이 찬성하고 있고 국민여론조사에서도 높게 나오고 있어 해야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통령이 ‘개헌논의를 하지마라 해라’는 것 역시 입법기관인 국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으로 부적절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는 “여당 당 대표가 개헌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며 “단지 시간과 장소 상황이 적절했느냐는 지적은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중국을 방문했으면 북핵이나 북한 인권, 대중 교류를 언급하는 게 적절하지 개헌 발언은 국내에 와서 최고위원 회의자리나 여야 대표 회담에서 꺼내는 게 자연스럽다”며 “청와대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고 대통령도 외유중인데 방중효과가 별로 없다는 조급증에서 나온 실수같은데 치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인사는 ‘개헌발언’보다는 ‘사과발언’으로 김 대표의 ‘면’이 더 상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사과는 우선 국민들에게 ‘혼선을 줘 죄송하다’고 한 다음에 대통령에게 사과를 했어야 했다”며 “왕조시대도 아니고...”라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대통령과 ‘각’ 대권주자로 존재감 과시

한편 김 대표의 개헌 발언으로 ‘생채기’만 입은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고도의 계산된 정치적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개헌 전도사’로 나선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이 동반 방문했다는 점에서 ‘상하이 개헌연대’가 형성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당초 김 위원장은 ‘개헌은 혁신 대상이 아니다’고 부적절한 모습에서 최근에는 ‘김 대표와 상의해보겠다’고 한 발 물러선 상황이다.

3인은 과거 1987년 6월 항쟁의 단초가 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주도한 YS정치 문화생으로 ‘87년 한계’를 전면에 내걸고 ‘이원집정부제’를 내세울 경우 정국을 뒤흔들 이슈를 선점할 수 있다. 바로 김 대표가 꼬리를 내렸지만 ‘일종의 치고 빠지기’식으로 일단 야당의 전폭적인 환영 의사가 나온 만큼 개헌 논의 자체에 탄력을 붙였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은 어느 정도 정치적 효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고만고만한 여권내 잠룡군에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차기 대권 주자로서 존재감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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