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보조작가 투신자살 내막
SBS 보조작가 투신자살 내막
  • 이수영 기자
  • 입력 2008-09-04 10:03
  • 승인 2008.09.04 10:03
  • 호수 72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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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아르바이트 보다 못한 처우 죽고 싶지 않겠어요?”
SBS ‘긴급출동SOS24’ 홈페이지.

대형 연예제작사가 연루된 뇌물 스캔들로 뒤숭숭한 방송계가 20대 구성작가의 자살 사건까지 더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SBS 간판 시사프로그램 ‘긴급출동 SOS24(이하 SOS24)의 보조작가 김모(22·여)씨가 지난달 28일 새벽 SBS 사옥 23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건을 조사 중인 서울 양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김씨의 명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방송사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한 현직 구성작가는 “갓 입사한 막내작가들은 잡일을 도맡는 것은 물론 인격적 모독에 시달리는 일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김씨의 죽음은 열악하기 그지없는 제작업계에서 예고된 사고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김씨의 죽음이 알려지자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는 방송작가 세계에 대한 성토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김씨가 제작에 참여한 SOS24는 폭력과 부당한 대우에 노출된 피해자들의 처지를 개선해 주는 솔루션 프로그램.


“자기 식구부터 구조하라”

이에 네티즌들은 “다른 사람보다 자기 식구부터 긴급구조 했어야 한다”며 제작팀을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해당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누가 누구를 구조한다는 말인가. 그 어린 친구가 혼자 옥상까지 뚜벅뚜벅 걸어 올라갔을 걸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SOS24 팀이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실상을 자체적으로 취재하라’는 의견까지 내고 있다.

김씨는 투신하기 직전인 지난달 28일 새벽 2시30분경까지 사무실에 남아 동료들과 야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연출자와 조연출, 다른 보조작가 등 5명이 함께 있었다.

숨진 김씨와 마지막까지 함께 사무실을 지켰던 제작진은 경찰 조사에서 “김씨가 자리를 비웠기에 먼저 퇴근한 줄 알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제작진 가운데서도 가장 경험이 적은 일명 ‘새끼작가’였다.

선후배 관계가 명확한 방송계에서 막내가 말도 없이 먼저 퇴근한다는 일은 흔치않다. 때문에 제작진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김씨를 방치한 게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양천경찰서 형사1팀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제작진 가운데서도 유독 업무부담감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김씨가 나이도 어려 경험이 적고 일처리까지 미숙해 동료, 선배들에게 자주 도움을 받곤 했다”며 “과중한 업무 부담까지 더해 가족들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해왔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가 부족한 경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일거리에 시달리다 결국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는 얘기다.

밤낮없이 일하는 방송계의 애환은 많이 알려져 왔지만 제작진 특히, 막내작가(보조작가)의 설움은 더하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 전 케이블 프로그램 막내작가로 입사한 송모(28·여)씨는 “죽음을 선택한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송씨에 따르면 일단 프로그램에 투입된 막내작가들은 ‘주7일 근무’가 일상이 된다.

일주일 중 하루는 휴일로 정해져있지만 제작 스케줄에 따라가다 보면 일주일 내내 일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더구나 막내 작가들의 업무는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허드렛일이 대부분이다.


방송 아카데미만 대박?

“하루 종일 섭외전화 돌리고 자료조사에 자막 수정까지 하다 보니 없던 눈병이 생겼다”는 송씨. “아침프로그램 하나 맡으면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는 건 사치”라고 밝힌 그가 월급으로 받은 급여는 50만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송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보다 못한 대우 받으면서 내가 이 짓을 왜하나 싶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며 “실수라도 한번 하면 나이어린 선배들에게 ‘저능아’라는 폭언까지 듣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올 초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긴 송씨는 조만간 일을 그만두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갈 작정이다.

문제는 노동력 착취나 다름없는 이 같은 병폐가 방송가에선 일종의 ‘관례’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메인작가로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3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한다. 제작진 선후배 사이에도 막내작가의 고된 삶은 경력을 쌓기 위해 ‘원래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인식된다.

또 방송작가 지망생을 교육하는 전문 학원(방송아카데미) 역시 업계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보다 졸업생을 늘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 학원에서 6개월 코스 강좌를 받는데 드는 수강료는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결국 작가 지망생들은 한 달에 50만원짜리 ‘막일’을 위해 수백만원을 쏟아 붓는 셈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