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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반기문 대망론’VS ‘반기문 사석론’
안희정 지사는 문재인 대안으로 떠올라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차기 대권 경쟁 구도와 관련해 장외기대주로 머물렀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장내에 상장되자마자 상종가를 쳤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가 지난 17일과 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은 39.7%의 지지를 얻어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전국 규모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을 대권주자 반열에 올려 선호도를 물은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특히 반 총장 지지율은 박원순 서울시장(13.5%)의 3배에 가까울 뿐 아니라, 박 시장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9.3%),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4.9%),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4.2%)의 지지율을 다 합친 수치보다 높다.

이명박 정부때도 영입 시도

이런 압도적인 지지율을 두고 여의도 정가에선 두 갈래 해석이 나온다. 하나는 기성 정치권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정통외교관료 출신으로 최대 국제기구의 수장에 오른 비(非)정치인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반기문 대망론’이다. 다른 하나는 반 총장이 대선 출마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혔음에도 여권의 친박 핵심부에서 김무성 대표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띄운다는 ‘반기문 사석(捨石)론’이다.

‘반기문 대망론’은 이명박 정부 때도 있었다. 친이계는 미래 권력으로 자리잡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던 박근혜 의원(당시)을 견제하고 대항마로 내세우기 위해 반 총장 영입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또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서도 그 무렵에 ‘문재인 대항마’로 반 총장을 끌어들이려 했다.

하지만 반 총장은 여야의 러브콜을 모두 거절했다. 원래 정치 스타일이 아닌 데다 유엔 사무총장 연임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반 총장은 여야 의원들을 만난 자리서 “대선후보 영입설 때문에 곤혹스럽다. 사무총장직을 연임하고 싶은데 대선출마설이 유엔에서 저를 공격하는 소재로 사용된다”고 토로했다.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르다. 반 총장은 지난 2011년 결국 연임에 성공했다. 2기 임기는 오는 2016년 12월에 끝난다. 19대 대통령선거는 그로부터 꼭 1년 후에 있다. 따라서 반 총장 자신이 결심한다면 본격적인 대선행보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다.

‘반기문 대망론’은 ‘충청대망론’과 연결된다. 반 총장은 충북 음성 출신으로 충주고를 나왔다. 만일 정치권에 진입한다면 충청권의 대표주자가 될 수도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정권은 영남이 주로 잡았다.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영남이다. 호남도 한 차례 김대중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 기간에 충청은 캐스팅보터 역할만 했다. 김대중 정권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DJP(김대중+김종필)연대를 성사시켜 공동정부를 구성하긴 했다. 하지만 허울뿐인 공동정부였고, 이마저도 중간에 깨졌다.

이 때문에 대전·충남·충북 주민들은 “이제 우리 지역에서도 대통령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들어 충청 출신 정치인이나 출향인사들의 모임도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충청권의 한 국회출입 기자는 “요즘 지역 정치권에 활기가 느껴진다. 서울에 진출한 관계, 재계, 문화계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귀띔했다.

여야에 충청대망론 솔솔

충청대망론의 중심에 반 총장이 있다. 지역민들이 거는 기대도 크다. 최근의 한길리서치 조사 이전에도 충청지역에선 반 총장을 대권주자군에 포함시켰다. ‘대전일보’가 8월초 실시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선 반 총장이 36.1%를 받아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 13.5%), 문재인 의원(8.6%), 김무성 대표(6.2%)를 크게 앞섰다.

특히 김무성 대표가 언급한 오스트리아 이원집정부제 헌법을 가정하면 반 총장의 경쟁률은 더 높아진다. 이원집정부제는 외교와 국방 같은 외치의 경우 대통령이, 나머지 내치는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담당한다는 게 핵심이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장관 등을 거친 반 총장이 가장 적임자일 수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이 외치를 담당하는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있다. 발트하임은 1972년부터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1986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반 총장이 ‘제2의 발트하임’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기문 한계론’을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무엇보다 비정치인의 제도 정치권 진입 자체가 쉽지 않다. 한때 신드롬을 일으켰던 안철수 의원조차 현실정치의 벽에 가로 막혀 있는 상태다. 고건, 이홍구, 이수성 전 국무총리도 한때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랐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여기다 반 총장 본인의 권력의지도 불투명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선출마설이 돌 때 그는 지인들에게 “아주 황당하다. 내가 국내 정치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전혀 그런 의지가 없다. 이런 내 생각을 주변에 전해달라”고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도 마찬가지 기조라고 한다.

친박계 영입 추진 공들여

그럼에도 여지는 남아 있다. 새누리당, 특히 친박계에서 ‘반기문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때문이다. 최근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당에서 친박계 색채를 지워가며 여권의 대선주자 가운데 1위로 부상하자 친박 핵심들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반 총장을 띄운다는 분석도 나온다. 심지어 친박계 핵심 의원이 대학 동문인 반 총장의 최측근 인사와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다만, 친박 핵심의 이런 시도는 실제로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 차원이 아니란 관측도 있다. 반 총장이 여러 가지 한계로 대권을 꿰차기에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일부러 ‘반기문 대망론’을 부추긴다는 분석이다. 반 총장을 바둑의 사석으로 쓰면서까지 실리를 챙기려는 건 무슨 이유일까.

‘김무성 길들이기’가 해답이 될 수 있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계속 대립각을 형성하면 언제든 강력한 제3의 인물을 영입해 경쟁을 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날리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황태순 정치평론가의 분석이다.

“살아 있는 권력을 쥔 대통령은 후계자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이 있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실력자가 차기를 노리고 도발해 올 때 그를 주저앉힐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친박 핵심에서 ‘반기문 대망론’을 띄우는 게 사실이라면 실제로 영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김 대표를 겨냥해 자중하지 않으면 그냥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거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충청대망론’은 오히려 야권에 적용될 수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그 중심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안 지사는 ‘친노의 대안’으로 떠올라 있다. 친노 좌장인 문재인 의원이 2012년 대선에서 한 차례 실패했기 때문에 다음 대선에는 보다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야 된다는 분위기가 친노 안에서 확산되고 있다.

‘시사저널’이 최근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차세대 리더’ 설문조사에서 정치 전문가 150명은 안 지사(37.3%)를 1위로 꼽았다. 이런 영향으로 새정치민주연합 안의 비노계에서도 안 지사의 무게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차기 당권주자로 꼽히는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최근 충남도당 당원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자리에서 “옛날부터 중원을 장악해야 대권을 잡는다고 했는데 충청도에 큰 별이 있다고 해서 그 별을 보러 왔다”고 했다. 안 지사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충청권이 호남에 못지않게 새정치연합 색채가 강해진 대목도 ‘안희정 대망론’에 힘을 싣는다. 6·3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은 충청권 광역단체장 4곳(충남·북지사, 대전시장, 세종시장)을 싹쓸이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선 당시 민주당이 충남과 충북도지사 선거에서만 승리를 거뒀다.

결국 여러 상황을 감안해 판단하면 충청권 대망론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여권보다 야권에서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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