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發 개헌 정국 손익계산서

▲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9일 국회에서 201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여야 지도부와 회동을 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여당, 결속력 다지고 권력 2인자 권력 분점 효과
야당, 대통령 흔들기로 반박근혜 전선확장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여권발 개헌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과 같다’며 개헌 가이드라인을 정해놨음에도 집권여당 당 대표에 이어 제1야당 대표까지 나서 개헌 불지피기에 나섰다. 살아있는 현재 권력인 박 대통령과 여야 미래권력을 노리는 인사들 간 고도의 이해관계 속에 정치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집권 여당의 경우 야당보다 후폭풍이 셀 수밖에 없다. 정권을 탄생시킨 세력이 현직 대통령을 ‘식물인간’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야당은 ‘대통령 흔들기’에다 적전분열, 나아가 존재감 과시까지 다목적 카드로 사용되고 있다. 개헌공방을 둘러싼 숨겨진 진실을 살펴봤다.

개헌 공방이 사그라들 기세를 보이질 않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인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밝혔음에도 여당 대표에 이어 이번에는 야당 대표까지 나서서 ‘개헌도 골든타임이 있다’며 개헌론 불지피기에 나섰다. ‘개헌 전도사’를 자청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으로 시작해 김무성 당 대표-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까지 나서 개헌론을 설파하면서 청와대를 옥죄고 있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개헌은 블랙홀과 같다’고 부정적인 뜻을 밝힌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블랙홀?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화약고’

하지만 지난 10월29일 국회 시정 연설 후에 가진 여야 지도부 비공개 회동에서 박대통령은 김무성 당 대표와 간단한 악수만 나눈 채 싸늘하게 돌아설 정도로 냉랭한 모습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오죽하면 동석한 문희상 위원장은 이를 의식해 “김 대표가 야당이 하도 개헌 얘기를 하니까 (개헌 봇물론을) 말한 것”이라며 “김 대표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 화해하라”고 ‘중재’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문 위원장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고 하지만 김 대표는 좌석 배치에서 야당에게 로얄석을 양보하고 회담 내내 저자세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개헌은 권력 누수를 최대한 막으려는 현재 권력과 미래권력을 노리는 양측간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화약고로 돌변했다. 일단 여야간 개헌카드 뒤로 숨긴 노림수는 중첩되는 측면이 있고 미래권력을 노리는 잠룡들 역시 동상이몽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여야간 개헌을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공통된 배경은 차기 대권을 앞두고 여야 모두 당내 유력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점이 한몫하고 있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과 같은 제왕적 대권 후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든 ‘4년중임 정부통령제’든 권력 분점을 할 수 있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과거 개헌론이 터져 나올 때마다 여야 유력한 대권 주자들은 개헌에 공감하면서도 박 대통령처럼 ‘차기 정권’으로 공을 넘긴 배경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강한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 분점, 권력서열 2인자들의 ‘설움’

또한 여야 모두 개헌론을 통해 현재 권력인 대통령과 맞서면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다. 김 대표나 김태호 전 최고위원의 경우 대중들로부터 차기 대권 주자감이라는 인식을 주고 자기 세력을 결집시키는 ‘1타2피’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살아있는 현직 대통령과 맞서면서 확실하게 권력 서열 2인자로 자리잡고자 하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야당의 문재인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문 의원이 최근 박 대통령을 겨냥해 ‘개헌 논의를 막는 것은 월권이고 독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야당 잠룡군 중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나아가 ‘개헌 찬성세력=반박근혜 전선구축’으로 범야권 지지층 결집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단지 문 의원이 김 대표와 차이 점은 ‘개헌 카드’를 통한 친박 비박 등 여당 내 적전 분열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이고 김 대표는 개헌 찬반 세력을 나눔으로써 당내 ‘아군과 적군’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여야간 개헌을 주장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권력 탈환 세력과 정권 연장 세력이라는 근본적인 입장 때문이다. 집권 여당 한 관계자는 “부부가 10년 동안 살다보면 지겨울 때가 있다”며 “하물며 정치는 어떻겠느냐? 권불십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고 차기 정권에서 보수정권이 또 잡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는 곧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당내에서 차기 대권에 도전하는 잠룡으로선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 이원집정부제나 4년정부통령제로의 개헌은 여당이 권력을 잡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권력 분점 효과를 가져와 최소한 무소불위한 야권의 ‘제왕적 대통령’의 탄생을 막을 수 있다.

반면 야당은 보수 정권 10년이 끝나는 차기 대선은 정권을 탈환할 호기임에 틀림이 없다. 제대로 된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현재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조사를 보면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의원 등이 여당 후보에 앞서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박 시장은 ‘차기 대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고 문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패배의 경험에다 ‘친노 적자’라는 족쇄가 발목을 꽉 잡고 있다. 게다가 정치권 밖에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차기 대선 1년을 앞둔 2016년 임기를 마치고 국내에 들어온다. 현재 차기 대권 주자로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데다 ‘충청권 대망론’까지 업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개헌카드 ‘연정’으로 가는 가교 역할

상황이 이렇다보니 야권의 경우에는 개헌을 전제로 새누리당 후보로 거론되는 반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낼 수 있는 토대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절 시도했다가 실패한 여야간 연정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책임총리제’를 도입하며 야당에게 절반의 장관직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총리를 야당에게 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정부 부지사 자리를 야당 몫으로 주며 연정을 실현하고 있다.

결국 여야 모두 개헌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복잡한 현재의 정치역학구도와 맞물려 차기대권 지형이 불안정하다는 점이 한몫하고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인 대권 게임보다는 권력을 분산시켜 권력을 쥔 세력의 전횡을 방지해 정치적 보복을 최소하하고 권력을 서로 분점하자는 속내가 짙게 깔려 있는 셈이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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