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피해 도망치는 소녀 13번 찔러 죽였다”

지난 14일 J씨의 현장검증 모습.

처참한 토막시신으로 돌아온 안양 실종 어린이사건으로 전국이 불안에 휩싸인 가운데 이번엔 중학생 소녀가 끔찍한 변을 당했다. 경기도 양주시 화암동에 사는 강모(13·중1년)양이 지난 7일 밤 온몸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것. 4일 뒤인 지난 11일 강 양을 살해한 필리핀 출신 불법체류자 J씨(31)가 경찰에 붙잡혔고, 사건은 일단락 됐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갈수록 들끓고 있다. 어린소녀가 외국인에게 10번 이상 칼에 찔려 숨진 엽기적 사건에 대다수 언론이 지나치게 조용한 까닭이다. 특히 J씨가 성폭행을 목적으로 강 양을 계획적으로 유인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지만 여전히 사건은 주목받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진보성향 매체를 비롯한 일부 언론들이 사건을 은폐·축소보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우발적 범행 아닌 계획된 살인

경찰의 탐문수사로 지난 11일 붙잡힌 J씨는 경찰에서 “동료와 오후에 술을 마신 뒤 친형을 만나러 갔다. 형에게 가는 중 처음 본 강 양이 욕을 해 홧김에 형 집에 있는 부엌칼로 살해했다”고 말했다. 술에 취해 저지른 우발적 범행이라는 것. 하지만 경찰조사가 진행되자 숨겨진 진실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 본 피해자가 욕을 해 죽였다”는 범행동기부터 거짓말이었다. J씨는 평소 동료 집에 드나들며 얼굴을 익힌 강 양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흉기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J씨는 지난 7일 저녁 7시 20분께 피해자집 근처를 맴돌다 강 양 부모가 집에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근처에 있는 친 형의 기숙사에 들른 J씨는 부엌칼을 숨겨나왔고 곧바로 다시 강 양 집으로 갔다.

동료이름을 부르며 현관문을 두드린 J씨에게 강 양이 잠시 문을 열어준 게 화근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칼을 들이댄 J씨는 겁에 질린 피해자의 목을 휘감아 집밖으로 끌고 갔다. 강 양을 30여m 떨어진 근처 밭으로 끌고 간 J씨는 성폭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박이 느슨해진 틈을 타 강 양이 도망치자 J씨는 이성을 잃었다.

강 양의 머리채를 잡은 J씨는 피해자 등을 한 번 찔렀다. 강 양은 피를 흘리면서도 계속 J씨를 피해 집 쪽으로 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J씨에게 뒷덜미를 잡힌 강 양은 목과 가슴, 배를 12번이나 난자당해 쓰러졌다. 집에서 10여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골목에서였다.


“대다수 언론 입 닫고 있다”

J씨의 끔찍한 범행이 낱낱이 드러났지만 이는 ‘서울 마포 네 모녀 살해사건’과 ‘안양 어린이 실종·살해사건’ 등 굵직한 이슈에 언론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대다수 매체들이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뒤늦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발생 초기부터 현장검증까지 이를 비중 있게 다룬 <경기북부일보>관계자는 “일부 매체들이 기사를 통제해 사실을 가리려 한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범인이 잡혔을 때도 소위 ‘메이저 언론’들이 사실을 줄여 보도했다. ‘필리핀 출신 불법체류자’란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모 일간지는 아예 ‘친오빠가 범인일지 모른다’는 추측기사를 내 유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 뒤 우발적 범행이 아닌 계획범죄란 경찰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후속기사를 쓴 매체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02년 미군장갑차에 의해 숨진 두 여중생의 죽음과 비교해도 뉴스로서 가치는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신분과 소속이 확실한 군인보다 지문날인조차 없어 신원확인이 안 되는 불법체류자에 의한 살인사건은 상대적으로 더 큰 문제라는 것.

그는 “이번 사건은 운 좋게도 CCTV자료 등이 있어 비교적 빨리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가 연루된 강력범죄는 대부분 증거불충분으로 미궁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적잖다”고 전했다.

사건을 보도한 <경기북부일보>는 1천여 관련 댓글들이 이어지며 누리꾼들의 높은 관심을 얻고 있다. 누리꾼들은 관련기사를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퍼 나르며 기존 언론들과 불법체류자에 대한 비난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말 안 통하면 경찰도 수사 못해”

붙잡힌 J씨는 조사과정에서 한국어를 못하는 척하며 경찰을 속이려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한국말을 못한다. 통역 없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버티며 진술을 거부했다. 7년 전 한국 땅을 밟은 J씨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경찰에 전문통역원이 없어 정확한 조사를 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경찰관계자는 “몇몇 시민단체가 경찰이 외국인을 상대로 통역 없이 무리한 조사를 한다며 항의한 적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노동자를 동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하는 외국인범죄자들도 있어 문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외국인범죄자들은 조사과정에서 ‘인권’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면 국가인권위원회나 시민단체에 신고하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1년 4328건이었던 외국인범죄는 6년 만에 1만4524건으로 세 배 이상 불어났다. 범죄유형도 단순폭력·절도에서 사기·횡령 등 강력·지능 범죄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범죄자 검거율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3개월 미만의 단기체류자일 땐 지문날인을 하지 않아 신원확인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한편 지난 14일 벌어진 J씨의 현장검증을 취재한 <경기북부일보>관계자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숨져간 피해소녀에게 가장 미안하다. 살인을 저지른 불법체류자의 인권이 13살 자국민 소녀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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