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남 부인에 독극물 주사

영화 의 한 장면.

‘백의의 천사’가 악마로 돌변했다. 유부남의 사랑을 얻기 위해 독극물 주사로 살인까지 불사한 20대 간호사가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벌어졌다.

광주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6일 간호사 이모(28) 여인과 내연남 조모(34)씨를 살인 및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이 여인은 유부남 조씨와 짜고 부인 박모(36)씨에게 약물을 주사, 살해한 혐의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박씨 명의로 무려 7개 생명보험 상품에 가입, 7억원에 달하는 보험금을 노려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한 사실도 밝혀졌다.

자칫 영원히 묻힐 뻔한 끔찍한 범행은 무덤 속 시신까지 꺼내 부검한 경찰의 수사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영화 같은 이들의 사랑과 참혹한 치정극 전모를 들여다본다.

비극을 불러온 이들의 첫 만남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간다. 출·퇴근용으로 쓸 차를 고르던 이 여인은 자동차정비업체에서 일하는 남동생을 통해 조씨를 소개받았다.

중고차 중개상이었던 조씨는 아는 사람 소개로 온 이 여인에게 각별히 친절했다. 결혼적령기의 이 여인이 성실하고 자상한 조씨에게 빠져든 것은 한순간.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조씨가 이미 결혼한 남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충격을 받은 이 여인에게 조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당신과 살겠다”고 맹세했다. 물론 이 여인은 그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조씨 부부의 이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미 11살 딸과 9개월 된 아들을 둔 부부를 갈라놓을 구실이 없었던 것이다.

불같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마음은 급해졌다. 엎친데 덮쳐 조씨가 사업에 실패, 빚더미에 올라앉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눈엣가시’ 같은 본처를 죽이고 거액의 보험금을 타낼 욕심에 결국 두 사람은 살인을 공모하기 시작했다.


잔인무도 치밀한 ‘살인 각본’

경찰에 따르면 이 여인과 내연남 조씨는 완전범죄를 위해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총동원했다. 경력 5년차 간호사인 이 여인은 의학지식을 이용, 애인의 아내를 살해할 구체적인 방법을 구상했다. 전직 보험설계사인 조씨는 서류를 조작해 살해된 부인의 보험금을 타내는 일을 맡았다. 지난해 12월 아내 이름으로 7개 보험 상품에 가입한 조씨. 받을 수 있는 보험금만 7억2천3백만원에 달했다.

두 달여에 걸쳐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두 사람은 마침내 지난 2월 16일 거사를 치렀다. 조씨가 평소 불면증에 시달리던 부인에게 ‘좋은 약을 놓아줄 간호사’라며 이 여인을 소개한 날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친정에 가 며칠 쉬다 와라. 그 전에 저녁이나 같이 먹자’며 집 밖으로 아내를 유인했다. 피해자 박씨는 남편의 살가운 요구에 집을 나섰다 변을 당한 것이다. 광주 방림동 한 식당으로 박씨를 데려간 조씨는 부인 술잔에 몰래 수면제를 탔다. 오래지 않아 박씨는 정
신을 잃었다. 조씨는 이 여인과 함께 승용차에 부인을 싣고 10km정도 떨어진 광주 포충사 인근 도로로 향했다.

한적한 곳에 이르자 이 여인은 일하던 병원에서 빼돌린 칼륨원액 20cc를 박씨 오른쪽 손등 혈관에 주사했다. 병원에서 주로 신장병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약물이다. 하지만 희석되지 않은 칼륨원액이 10cc이상 몸에 주입되면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음에 이를 만큼 독성이 강하다.

주사를 맞은 박씨는 곧 혼수상태에 빠져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하지만 불륜커플의 잔인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조씨는 축 늘어진 아내를 차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부인의 머리를 딱딱한 도로에 있는 힘껏 내리쳤다. 박씨가 교통사고 충격으로 죽었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였
다.

이 여인은 머리에 큰 상처를 입은 박씨를 다시 차에 싣고 근처 광주 J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 도착한지 10여분만인 밤 8시 20분께 박씨는 결국 숨졌다.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박씨의 사인은 사고로 인한 두부 손상과 간파열, 저혈당성 쇼크사였다.

이 여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도 “포충사 근처 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뛰어든 여자를 치었다”는 그의 말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사건이 일단락되자 조씨는 본격적으로 아내의 보험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는 부인의 장례를 치른 직후 2개 보험사로부터 사망보험금 9천7
백만원을 받아냈다. 이 돈은 모두 조씨의 사업 빚을 갚는데 들어갔다.

돈이 궁해진 조씨는 지난 2월 말께 다른 보험사 2곳을 상대로 5억2천3백만원의 보험금을 한꺼번에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조씨가 지난해 말 한꺼번에 7개 생명보험 상품에 가입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숨진 박씨 친정도 갑작스런 사고와 돈 챙기기 급급한 조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결국 보험사와 박씨 가족의 신고로 경찰은 지난 3월 초 사건을 다시 수사했다. 경찰은 검찰로 넘어간 교통사고 사건기록을 확보, 해당지역 CCTV를 분석해 이 여인의 신고 내용이 거짓이었음을 밝혀냈다. 경찰은 또 박씨의 사인을 확실히 알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아 이미
장례가 치러진 시신을 발굴하는 초강수를 뒀다.


“무덤 속 시신 부검할 줄 몰랐다”

박씨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로 보내 정밀감식을 의뢰한 경찰은 지난 3월 25일 국과수로부터 “박씨의 사인은 사고가 아닌 약물에 의한 쇼크사”라는 답을 받았다. 조씨와 이 여인을 잡아들인 경찰은 증거를 토대로 이들의 혐의를 추궁했다.

마침내 경찰은 이 여인으로부터 “내연남 조씨와 짜고 박씨를 죽였다”는 자백을 받았다. 끔찍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간호사가 사랑에 눈이 멀어 전문지식을 범죄에 악용했다. 위험약물을 병원 밖으로 빼돌린 경위와 보험서류 작성 과정에서 또 다른 불법은 없었는지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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