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익빈부익부 양극화가 끔찍한 살인 초래

경찰청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 · 서대문경찰서강력6팀 이대우 팀장 · 경찰대 번죄심리학과 표창원 교수

화성연쇄실종사건, 안양 초등생 납치살해사건에 이어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 등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묻지마 범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강력 범죄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생계형 범죄고 또 다른 하나는 충동에 의한 우발성 범죄다. 강간, 폭행, 살인 등이 우발성 범죄에 속한다.

최근엔 하나가 더 추가됐다. 사이코패스형 범죄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특별한 이유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무차별 살육행각을 벌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범죄를 선진국형 범죄라고 말한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일수록 사이코패스에 의한 범죄가 많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 범죄가 다른 범죄형태 보다 공포스러운 이유는 그 범인과 피해자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방이 쉽지 않은 범죄다. 더욱이 우
리나라에선 사이코패스 범죄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 정보가 부족한 편이다.

이에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가) 권일용, 범죄 심리학자 표창원, 강력계 형사 이대우 등 범죄전문가 3인을 통해 사이코패스 범죄에 대해 직접 들어 봤다.

“부모 또는 가족들로부터 학대받거나 소외돼 자라오면서 반사회적인 성향을 키워 심리적으로 내재된 증오표출 대상을 물색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 주변인들과 교류가 원만하지 않고 평소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인물.”

전문가들이 말하는 사이코패스 범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에선 누구나 사이코패스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평범한 보통사람도 영화, TV, 뉴스, 컴퓨터 게임 등을 통한 지속적 자극을 받으면 내제된 분노와 욕구가 폭발해 살인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이코패스 범죄의 가장 큰 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의 단절, 즉 주변으로부터의 고립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의사소통에 미숙한 이들을 잘 추슬러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경찰청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
사이코패스는 예전부터 있었다. 다만 몰랐을 뿐

권일용 경위는 국내최초의 프로파일러이자 최고의 프로파일러로 알려진 경찰관이다. 유영철, 정남규를 비롯해 얼마 전 발생한 안양초등생 사건의 정성현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강력 사건이 해결될 수 있었던 배경엔 그의 프로파일링이 있었다.

프로파일링은 범죄에서 다양한 특성들을 찾아내 범인의 인물 유형을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 최근 사이코패스 범죄가 늘고 있는데, 그 이유는?
- 최근 들어 사이코패스 범죄가 늘었다고 장담할 순 없다. 사실 사이코패스 범죄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우리가 그 유형을 몰랐다고 봐야 옳다.

▲ 사이코패스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들은 어떤 이들인가?
-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미숙해 주변으로부터 고립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신의 고립에 대해 주변원망을 많이 한다. 자신의 처지, 무능력, 외로움 등이 모두 부모 형제 동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립에는 스스로 혼자이길 원하는 자의적 고립과 주변인들에게 거부감 드는 언행을 자주해 고립되는 타의적 고립이 있다. 사이코패스는 타의적 고립자들에게서 자주 보인다.

▲ 정성현도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나?
- 그렇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는 그것만의 행동적 특성을 보인다. 정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죄책감이 거의 없었다. 운이 없어서 경찰에 잡혔다는 식이다. 또 생명을 하나의 물건이나 도구처럼 생각한다. 유영철처럼 감정이 식은 것이다.

▲ 정성현의 범죄는 어디서 출발했나?
- 그 역시 기본적으로 고립됐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하긴 했지만 그것은 범죄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었다. 그는 커뮤니티를 통해 아동포르노, 스너프필름(실제 살인장면을 담은 영상물) 등을 구했다. 이를 통해 범죄요령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 사이코패스가 여성 어린이 등 약자를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 살인에 쾌감을 느끼면 범인은 살인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하기 쉬워야하고 처리가 쉬운 상대를 찾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와 여성들이 피해를 입는다.


서대문 경찰서 강력6팀 이대우 팀장
무거운 범죄를 저질러놓고도 남들이 이해해주기 바란다

▲ 강력범죄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면 어떻게 변하고 있나?
- 일반적으로 우발적 범죄 횟수가 많아지면 지능범으로 발전하기 쉽다. 전과자가 지능범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엔 초범이라도 지능범인 경우가 많다.

▲ 사건 현장에서 볼 때 범인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 살인사건의 경우 범행목적이 뚜렷하면 현장이 참혹하다. 망설임이 없어 수법이 무자비해지기 때문이다. 반면 충동적인 살인은 그렇지 않다.

▲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다른 범죄자와 어떻게 구별되나?
- 사이코패스 범죄자는 일단 자신이 얼마나 무거운 죄를 저질렀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또 자신의 범행에 대해 남들의 이해를 바라는 편이다.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표창원 교수
연쇄살인사건은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발생빈도 높다

‘한국의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표창원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쇄살인사건 전문가다. 그에 따르면 연쇄살인사건은 도시화가 진행된 곳일수록 발생 빈도가 높다.

▲ 미제 강력 사건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 과거와 달리 목적이나 동기가 불분명한 살인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경우 범인이 단서를 남기지 않는 이상 추적이 쉽지 않다. 누군가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면 모방범죄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지존파와 막가파, 유영철과 정남규가 그 예다. 누군가 범죄에 성공을 거두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경기남부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 지리적으로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야산이 많아 이동이 쉽고 사체를 숨기기도 쉽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또 수도권이라고는 하지만 도심지를 제외하고는 인적이 드문 것도 중요한 원인일 것으로 분석된다.

▲ 범죄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사이코패스 범죄를 말한다면.
- 사이코패스는 단순한 범죄적 취향이 아닌 하나의 인격장애다. 이런 인격장애의 원인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정신과적 외상일 수도 있고 서서히 형성된 반사회적 성향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사이코패스가 스스로 이런 성격을 주위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변인들과 대화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점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안양의 정성현도 이웃집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자신을 드러낼 경우 주변인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주변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본지는 2007년 3월 15일자 “표창원·염건령 교수가 분석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염건령 교수의 프로파일링을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사에서 염 교수는 서남부연쇄실종살인사건에 대해 “범죄심리학자로서 학문적인 근거에 기초해 말하자면 범인은 30대~ 40대 남성인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지만 납치 후 살해했다면 기력이 센 연령대의 남성일 가능성이 더 크다 봐야한다”고 전했다.

이어 “또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변태적인 성욕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여성을 상대로 한 연쇄살인범은 대부분 여성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억압된 스트레스를 갖고 있다. 이런 트라우마(정신적인 외상)가 제대로 치유되지 못할 경우 여성에 대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아내의 변심으로 살인을 하게 된 유영철이 그 대표적인 예다”고 염교수는 프로파일링 했다.

경찰조사결과 정씨는 자신을 떠난 여성에 대한 원망이 많았으며 아동포르노를 즐긴 변태성욕자였다. 또 자신의 가정환경과 부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들이 가득했다.

염 교수의 프로파일링은 정씨의 모습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이는 범죄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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