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숨겨둔 ‘금괴’ 있다”

인천 산곡동 미군부대 인근 · 인천 산곡동 일대 · 부평 부동산 시세표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

도심 한복판에 금덩어리가 묻혀있다? 영화 같은 소문이 인천 부평을 중심으로 파다하게 돌고 있다. 7년 사이 금시세가 5배로 뛰어 금 1돈에 20만원을 호가하는 등 금값이 천정부지다. 이런 가운데 도시 한복판에 막대한 금덩어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뉴스는 솔깃한 화제가 아닐 수 없다.
소문은 ‘일제시대 인천 부평에 주둔해 있던 군부대와 군수 기업들이 수탈한 금붙이를 지하에 은닉하고 떠났다’는 내용이다. 즉, 일본군이 미처
본국으로 챙겨가지 못한 이 금덩어리들은 6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땅 밑에 고스란히 묻혀있다는 것.

더구나 지난 2월 서울에 사는 관련 업자 두 사람이 ‘해당 지역을 채굴하고 싶다’며 인천시를 찾아온 사실이 알려져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일본군 금괴창고’가 정말 존재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더욱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인천 한복판에 잠들어있다는 막대한 금 덩어리의 진실을 파헤쳐본다.

인천에 금괴가 있다는 소문은 최근 실제로 ‘보물사냥꾼’이 등장하면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천시청 기업지원과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이모씨 등 60대 남자 2명이 시청을 찾아왔다. 이들은 담당 공무원에게 “평소 금맥과 지하자원 개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씨 등이 시청을 찾아온 목적은 간단했다. 인천 한복판에 묻힌 금덩어리를 파내기 위한 허가를 얻고 싶다는 것.

이씨는 담당자를 만난 자리에서 “옛 일제 병참기지가 있던 부지(현 부평미군부대 근처)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이 지역에 ‘금 성분이 많이 함유된 금속물질’이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에 대한 채굴 허가를 받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시청 기업지원과 박성석 담당관은 “구체적으로 이씨가 시에 채굴허가를 요청하는 민원서류를 접수하지는 않았다. 해당지역이 산림청 소유의 부지인 만큼 일반인이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씨와는 관련 절차를 상담하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고 밝혔다.


관련업자, 시청에 채굴 문의

국유지를 개인이 개발할 수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박 담당관은 ‘일정 수준의 점용료를 내면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에서 금을 캐기 위해 채광권을 따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시의 입장이다.

그는 “이씨가 지목한 산림청 부지의 채광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광업등록사무소에 등록해야 한다. 그 뒤 땅 소유자, 관련 기관과 합의를 거쳐야 시에서 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개인이 이 같은 절차를 모두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 담당관은 또 ‘이씨가 해당지역 채굴권을 인천시에 요청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다소 과장된 면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관련 사실을 보도한 몇몇 언론이 마치 시에서 ‘금괴’의 존재를 언급한 것처럼 기사를 썼다. 나를 비롯한 담당 공무원 중 누구도 기자들 앞에서 ‘금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없다”고 전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소문을 일부 언론이 ‘금괴’라는 단어를 빌어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관련 보도가 나간 뒤 ‘이씨 등과 같은 문의를 해온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담당관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몇몇 언론에서 취재요청을 받은 적은 있지만 채굴권을 요청하는 일반 기업인·업자의 방문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반면 최근 불거진 이 같은 소문과 이씨의 시청 방문 사실을 처음 보도한 ‘인천일보’ 취재기자의 말은 조금 다르다.

지난달 19일 관련 보도를 처음 내보낸 취재기자는 “여러 명의 인천시 공무원으로부터 해당지역에 금괴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금괴’라는 단어를 기사에 실은 것은 이런 사실 확인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관련 소문이 10년 전부터 인천시 공무원 사이에 퍼져있었다. 이씨는 ‘금 성분을 많이 함유한 금속물질’이라고 했지만 소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금괴’라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담당기자는 또 “이씨가 최근까지 관련 사업을 벌이기 위해 인천시 관계자와 수차례 통화를 하는 등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씨가 소문에 기대 인천시에 단순 상담을 요청했다는 시청 관계자의 설명과는 상당부분 차이가 있어 의문으로 남는다.

이씨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지 문의한 기자에게 담당 공무원은 “단순 상담이었던 터라 이씨의 연락처를 따로 받아두지는 않았다”고 말한바 있다.


소문의 근원은 어디?

‘인천에 노다지가 있다’는 소문은 90년대 초반 인천 토박이들 사이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금이 묻혀있는 곳으로 지목된 곳은 일제시대 병참기지가 있던 인천 부평구 산곡동 일대. 현재 산림청 관할 국유지로 지정된 이곳은 근처에 미
군부대와 아파트, 쇼핑센터 등이 들어서 시내 중심지로 개발됐다.

그중에서도 금이 묻혀있을 가능이 큰 구체적 장소로 꼽힌 곳은 ‘삼릉(현 ‘동수’지역이다. 이곳은 일제 병참기지 건설 및 운영주체였던 일본기업 ‘미쓰비시’ 공장 사택과 노동자들의 거주 흔적이 남아있다.

또 다른 인천시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지역 토박이들 사이에서 ‘낭설’로만 돌던 금괴 소문이 1999년 인천지하철 1호선 개통을 앞두고 세간에 크게 퍼져나갔다. 인천지하철 건설 당시 삼릉 지역이 개통 노선에 포함돼 ‘이 지역을 파면 금괴가 나올지 모른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
다.

하지만 지하철이 완공 된 뒤에도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에서 실체가 발견되지 않자 소문은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해당 지역 주민들 중 금괴와 관련된 소문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시민들은 ‘뜬소문에 가깝다’며 담담한 반응이다.

인천 산곡동에서 부동산중계업소를 운영하는 최모(53)씨는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우리 동네에 금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소문이 있었지만 실체가 나오지 않아 다들 허무맹랑한 소리로 친다”고 말했다.

최근 소문과 관련해 산곡동 인근 땅이나 집을 알아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씨는 “딱히 금괴 소문을 믿고 이 지역 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고 답했다. 인천 부평 지역 집값은 최근 꾸준히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금괴 때문이 아니라 인천 부평이 주거지역
으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부동산중계인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천 토박이라는 김모(56)씨는 소문에 대해 “이 지역에서 수 십 년을 살았지만 잘 모르는 이야기”라고 입을 열었다.

김씨는 “만약 정말 금이 있다면 시에서 벌써 발굴 했을 것”이라며 ‘인천 금매장설’은 뜬소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인천시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시청 관계자는 “(인천시가) 강화·옹진군 등 해양지역을 중심으로 자원개발을 위해 약 50여개 권리구역을 설정했다. 하지만 인천 시내 등 내륙에는 단 한곳도 지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천 도심에 금이나 기타 지하자원이 매설돼 있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뜻이다.


떠도는 한반도 금매장 설

전국 곳곳에 금이 묻혀있다는 주장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해 꾸준히 이어졌다. 이번 ‘인천 금괴 매장설’과 가장 닮은 것은 제주시 산천단 곰솔에 일본군이 묻어둔 금괴와 골동품이 있다는 소문이다.

이 지역은 2006년 한 개발업체가 문화재청으로부터 허가를 얻어 실제 발굴 작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업체는 지하 17m 깊이로 지름 15cm 시추공 3곳을 뚫고 지질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금괴는 발견되지 않았고 작업은 중단됐다.

2002년 부산에서는 ‘금괴 450톤, 금동불상 36좌, 국보급 문화재가 보관된 어뢰창고를 발견했다’는 다큐멘터리 작가의 주장이 터져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2년 뒤 개인 발굴가가 연루된 도굴 의혹이 불거지며 보물의 존재는 오리무중에 빠졌다.

서울 시내에서는 실제 금맥이 터진 경우도 있다. 1998년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땅을 파던 중 금빛으로 반짝이는 돌덩어리가 쏟아져 나온 것.

감정 결과 이 돌덩어리에는 1톤당 ‘약간의’(14.5g) 금이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시공사는 그대로 아파트 공사를 진행했다. 금 채취로 얻을 수 있
는 수익보다 아파트 분양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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