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빠른 여름 더위가 시작되던 지난 6월 12일은 6.4지방선거를 치른 지 딱 일주일 지난 날이었다. 이날 김맹곤 김해시장이 김해을(乙)지역 출신의 김태호 의원으로부터 폭언과 협박을 받았다는 발언이 나왔다. 김 시장이 언론에 김 의원이 했다고 밝힌 협박내용은 김 의원이 다짜고짜 “(당신을) 죽일 힘이 있어, 죽이겠어”라며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선거 때 감정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지난 9일 당선 축하전화를 한 것은 사실이다”며 “그런데 전화하자마자 다짜고짜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통화하기 싫다고 하길래,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반박하는 와중에 서로 고성이 오갔다”고 해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리고 한 달 열흘 후인 지난 7월 22일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소방관 영결식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물의를 빚었다.

이날 오전 강원도청에서는 세월호 수색작업을 돕던 광주 헬기 추락사고로 탑승자 5명 전원이 순직한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1항공구조대 대원들 합동영결식이 엄수됐었다. 이런 자리에서 김 최고위원은 정복과 사복을 입은 여성들과 잇따라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저사람 제정신인가?”,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온다”, “유족들 앞에서 저러고 싶을까?”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이 일 있고 딱 3개월 뒤인 10월 23일 그는 당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김무성 체제는 출범 100여일 만에 엉뚱한 시련에 부딪혔다. 김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 회의 도중 “국회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곳인지, 밥만 축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나 자신부터 반성하고 뉘우친다는 차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놀라 자빠질 만한 충격을 받은 건 김무성 대표였다. 비박계의 김태호가 이렇게 나오면 친박 최고위원들이 얼씨구나 하고 줄 사퇴서를 던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도부 리더십 부재로 새 비상지도체제가 들어서 임시전당대회까지 가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도부의 균열 봉합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김 최고위원의 기습적 사퇴 선언 당일 오후부터 다음날 24일 하루 종일 그는 ‘김태호 사퇴’ 만류를 위해 혼자서 ‘삼고초려’에 나섰다.

김 의원의 사퇴사유가 납득하기 어려워 퇴로조차 없어 보였던 때다. 그런 만큼 명분없는 사퇴파동이 결국 멋쩍은 해프닝정도로 끝날 줄은 예상됐던 일이다. 그런데 일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그 하나는 정치 지도자급 반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조급증과 또 하나는 이 기회에 김무성을 한번 밟고 서보자는 것 말고는 설명이 어렵다. 아니면 그의 ‘돈키호테식’ 정치에 어리둥절해 할 따름이다. 어떠한 정치적 노림수를 계산 해봐도 도통 퍼즐이 맞지 않는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만약 비박계인 김 최고위원의 사퇴가 그대로 이뤄졌다면 새누리당의 저울추가 친박계로 넘어가 또 한바탕 청와대 공작설이 정설처럼 퍼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김 의원은 아직도 정치적 촌티를 못 벗었다고 했고, 정치의 테크닉도 부족하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따뜻한 가슴이 없고 겁대가리 없는 야심만 가득차 있으니 국민이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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