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복서’ 최요삼 동생 최경호씨 리얼 인터뷰

지난 1월 4일 최요삼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에서 최씨가 조문객을 맞고 있다.

링 위에서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다 지난 1월 숨을 거둔 국내유일의 복싱세계챔피언 최요삼. 식어버린 한국 권투열기에 불씨를 당기고 떠난 챔프의 이야기는 한동안 세인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구멍 뚫린 권투계의 응급의료체계와 건강보험기금 비리 등 해묵은 문제점들이 ‘최요삼 사건’을 계기로 재조명된 것은 분명 의미가 크다. 최근 최요삼의 어머니가 지난달 14일 아들의 응급처치를 담당했던 순천향대병원을 상대로 2억3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 챔프의 비극을 다시금 곱씹게 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최요삼이 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병원 측 과실이 컸다’는 일부 의혹이 제기됐을 때 가족들은 “병원에 책임을 넘기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어 그 속사정에 관심이 집중됐다. 챔프가 떠난 지 4개월. 최요삼의 친동생이자 매니저였던 최경호(33·HO스포츠엔터테인먼트 대표)씨를 만나 힘겨운 싸움을 시작하게 된 진짜 이유를 들어봤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챔프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또 한번의 전쟁을 시작한 셈이다.

지난달 28일 비 오는 수요일 저녁, 최요삼의 친동생이자 그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했던 최경호 HO스포츠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만났다.


“내 인생 길잡이가 떠났다”

골프선수 출신답게 다부진 체격과 유순한 인상은 생전의 형과 닮은 듯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그가 챔프와 가장 가까운 혈육이자 친구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했다.

소주 한잔씩을 앞에 놓고 조심스럽게 최요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6남매 중 다섯째, 여섯째였던 두 사람은 20년 넘게 한 이불을 덮으며 훈련과 합숙을 소화한 사이다. 최 대표는 ‘서로에 대해 90% 이상 꿰고 있을 정도’라며 돈독한 우애를 자랑했다.

“형이 사고를 당한 후 언론보도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죠. 하지만 가족으로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이 사람이 죽어야했을까’란 거였습니다. 요즘은 무언가 결정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형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와요. 내가 요삼이형에 대해 잘 아는 만큼 형도 그랬으니까. 갈림길에서 가장 믿음직한 길잡이가 사라진 기분이 이런 거겠죠.”

인터뷰 전날도 형과 늘 함께 다니던 동네 사우나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는 그는 ‘내 반쪽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너무 컸다’며 말을 아꼈다.

“형과 사우나를 가면 그야말로 지옥이었죠. 권투선수에게 있어 체중감량은 상상 이상의 고통입니다. 50.8kg을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에 따라 경기 출전 여
부가 갈리니까요. 요삼이형은 항상 샤워를 하자마자 사우나에서 15분 이상을 버티며 땀을 빼곤 했습니다. 그땐 참 많이 힘들었는데… 형이 없는 지금, 저 역시 똑같은 습관이 생겼더군요.”

최 대표는 혼수상태에 빠진 최요삼을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긴 사연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아들이 뇌사에 빠졌다는 병원 검사 결과가 제발 오진이길 바라는 어머니 눈물에 가슴이 무너졌다는 것. 여기엔 최근 소송을 낸 이유기도 한 병원 측의 응급처치 미숙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묻어났다.


“소송은 ‘최요삼 엠블런스’ 위한 것”

“순천향대병원에서 뇌사판정을 발표하기 직전이었죠. 어머니께서 더 좋은 병원으로 가 다시 검사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쉽게 떠나보낼 수 없으셨던 거죠. 아산병원은 형이 사고를 당한 곳에서 가장 가까웠습니다. 당연히 제일 먼저 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간 것이 지금도 형에게 미안합니다.”

그렇다면 왜 최근에야 순천향대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걸까. 2억3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이 문제일까.

민감한 질문에 최 대표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미 출가한 형제들과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생활은 넉넉한 편이라는 것.

“요삼이형처럼 링에서 죽어가는 또 다른 복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첫 번째입니다. 복싱 경기가 있을 때 응급처치를 책임질 엠블런스를 요삼이형 이름으로 운영하고 싶은 거죠. 또 다른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만약 소송에서 이긴다면 그 돈은 고스란히 경기장 구급대를 꾸리는데 들어갈 겁니다.”

‘최요삼 엠블런스’. 최 대표는 인터뷰 내내 이 말을 반복했다.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챔프가 후배 복서들을 위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인 셈이다.

“돈은 벌만큼 벌었습니다. 지금은 100년이 지나도 ‘최요삼’이란 이름 석자를 사람들 기억에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런 비극은 다시 없어야겠죠. 저와 우리 가족이 바라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복싱에 미쳐 살았던 형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습니다.”

국내 최연소 복싱전문 프로모터인 최 대표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고(故) 최요삼 추모 프로복싱 코리안 컨텐더(이하 컨텐더)’를 위해 스폰서를 구하는 일부터 선수를 선발하는 것까지 전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량급인 플라이급(48~51kg), 벤텀급(51~54kg), 페더급(54~57kg) 등 3체급에서 8강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뽑아 스타선수로
키우겠다는 것이 기획의도다.


제2의 최요삼, 설욕전 나선다

뿐만 아니라 이번 컨텐더는 권투계를 떠난 노장 선수들의 재기의 장이기도 해 복싱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충분한 실력을 지녔음에도 경기가 없어 은퇴 아닌 은퇴를 하게 된 노장 선수들에게 링으로 돌아올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대회는 복싱계의 스타발굴이라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한국 복싱이 10년 넘게 침체기에 빠진 건 세계타이틀에 도전할 만한 스타가 없기 때문이죠.

이번 컨텐더에는 한국챔피언과 PABA(범아시아복싱위원회)챔피언을 따낸 노장 선수들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권투에 미친 복서들이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충분히 드라마틱하죠.”

최 대표는 특히 ‘제2의 최요삼’으로 꼽히는 전진만(29·한국챔피언)의 설욕전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그와 맞붙을 상대는 다름 아닌 인도네시아 출신의 헤리 아몰(24).

지난해 최요삼과 한국 복싱계에 ‘크리스마스 악몽’을 선사한 바로 그 선수다.

“요삼이형의 이름을 걸고 준비하는 대회니만큼 내용, 흥행 모두를 성공시키고 싶습니다. 아직 넘어야할 산은 많지만 그게 제 꿈이고 제가 가야할 길이니까요.”

‘챔프의 동생’에서 한국 최고의 복싱 프로모터를 꿈꾸는 그의 다짐은 예사롭지 않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 역시 고단한 챔프의 삶을 닮아있다.


#최요삼 10일간의 기록

‘영광에서 이별까지’

‘영원한 챔피언’ 고(故) 최요삼은 지난해 12월 25일 서울 광진구 광진구민체육회관 특설링에서 열린 헤리 아몰과의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컨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 1차 방어전을 치른 직후 의식을 잃었다.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자신의 몸을 쪼개 여섯 명의 생명을 구한 진정한 챔프의 마지막 10일간의 기록을 돌아봤다.

200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악몽
최요삼은 자신의 첫 지명 방어전 상대인 헤리 아몰과 12라운드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3:0 판정승을 따냈다. 하지만 경기 직후 링 위에 쓰러진 그는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수술을 받았고 생애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병원 중환자실에서 보내야했다.

2007년 12월 26일 순천향대병원 “의식 찾을 확률 10%도 안 된다”
수술을 받은 최요삼은 뇌압을 낮추기 위한 약물치료를 시작한 상태였다. 이날 한 언론사와 전화 인터뷰를 가진 병원측은 최요삼의 회복 가능성이 낮다는 소견을 밝혔다. 당시 병원 관계자는 “의식이 돌아올 확률은 10% 미만이며 수술 뒤 일주일 정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12월 27일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형을 놓지 않겠다”
홍수환, 장정구, 유명우, 지인진 등 고락을 함께한 권투인들의 병문안이 이어졌다. 하루 전 병원 측 소견을 전해들은 동생 최경호씨는 “단 1%의 가능성이라도 남아있다면 형을 포기하지 않겠다. 형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2007년 12월 28일 “이젠 피 냄새가 싫다…”
혼수상태에 빠진 최요삼에 대한 국민적 응원이 쏟아지는 가운데 챔프의 일기장이 공개됐다. ‘맞는 것이 두렵다’ ‘이젠 피 냄새가 싫다’ 권투를 천직으로 여긴 프로복서의 인간적인 고뇌에 전국이 눈물바다에 빠졌다.

2007년 12월 30일 “희망의 불씨가 꺼지면 형의 장기기증도 생각하고 있다”
순천향병원측은 최요삼의 뇌사판정을 위해 31일 교수회의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동생 최경호씨는 “형을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총동원하겠다. 그럼에도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다면 형의 장기기증을 생각하고 있다”고 처음 밝혔다.

2007년 12월 31일 “더 좋은 병원으로 가겠다”
31일 예정이던 최요삼의 뇌사판정이 연기됐다. 이날 오후 가족들은 최요삼을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겼다.

2008년 1월 1일 “마지막 12라운드 공이 울렸다”
뇌사판정을 위한 재검사 절차가 마련됐다. 동생 최경호씨는 “형이 평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다. 남은 검사가 끝나는 대로 장기 기증에 동의하겠다”고 밝혔다.

2008년 1월 2일 “마지막 인사… 챔프여 안녕히…”
불의의 사고를 당한지 9일 만에 최요삼에게 뇌사판정이 내려졌다. 오후 8시 가족과의 마지막 면회를 끝으로 챔프는 밤 9시 23분 장기적출을 위해 중환자실에서 수술실로 옮겨졌다.

2008년 1월 3일 “0시 1분. 법적 사망 선고”
심장으로 향하는 대동맥이 끊어지고 최요삼은 눈을 감았다. 고인의 심장과 간 등 주요장기는 6명의 생명을 살리는데 쓰여졌다.

2008년 1월 5일 “투혼의 복서. 영면하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챔프의 유해는 피땀 흘린 체육관과 자택을 돌아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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