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가 출산한 아이의 생부·조부모의 부양의무

순천에 살고 있는 도보리(21세, 여, 가명)는 같은 동네에 살던 이재화(22세, 남, 가명)와 사귀면서 임신을 하게 되었다. 혈혈단신인 도보리는 자신이 미혼모가 된 사실을 숨기도 딸을 낳았다. 도보리는 국밥집에서 배달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산을 하면서 수입이 끊겼다. 아이의 생부 이재화는 특별한 직업이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버는 정도지만, 이재화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하는 등 경제적인 능력이 충분하다.
출산으로 수입이 끊긴 도보리는 이재화나 이재화의 아버지를 상대로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을까.
지난 11월 7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창립 58주년 기념 심포지엄(‘미혼모와 그 자녀의 삶, 이제는 사회가 나서야 한다’:법 개정과 정책방향에 대한 심포지엄)에서 김상용 교수(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출생기록의 차단과 미혼모 부양’이라는 논문을 통하여 미혼모에 대한 생부의 부양의무를 인정할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독일 민법은 인신 기간부터 자녀가 3세가 될 때까지(경우에 따라서는 성년이 될 때까지) 생부가 미혼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고, 그리스와 폴란드 가족법의 입법례도 소개했다.
배인구 부장판사(서울가정법원)도 미혼모에 대한 생부의 부양의무와 관련하여 2015년 3월 25일부터 시행이 예정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비양육부·모가 부양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그 비양육부·모의 부모(조부모)가 손자의 양육비를 부담’하도록 한 규정이 도입되었지만 그 요건과 기간이 불명확한 점을 지적했다. 배 부장판사는 독일 민법과 같은 규정을 도입하여 자녀가 3세가 될 때까지 생부와 그 부모(조부모)가 연대하여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혼모와 그 자녀의 부양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입법도 필요하지만 현행 민법 규정을 합리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미혼모와 미혼모가 출산한 자녀에 대한 부양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민법 제974조는 직계혈족간 부양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민법 제977조는 ‘부양의 정도 또는 방법에 관하여 당사자간에 협정이 없는 때에는 법원은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부양을 받을 자의 생활정도와 부양의무자의 자력 기타 제반사정을 참작하여 이를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미혼모가 자녀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생부와 그 부모(조부모)를 상대로 가사비송사건으로 부양료를 청구하고 가정법원에서 미혼모가 출산한 자녀의 부양료를 정할 때 부양료를 돌보아야 하는 미혼모의 부양도 함께 고려한다면 자녀가 출생한 이후에는 부양의 받을 수 있다.”면서 현행 민법을 현실에 맞춰 합리적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종전 학설은 민법 제974조 내지 제979조의 규정(민법 제6편 친족 중 제7장 부양)은 미성년 자녀와 부모 사이 부양의무의 근거규정으로 보지 않았다. 종전 학설이 아무런 근거없이 직계혈족간 부양의무의 범위를 좁게 해석함으로써 미성년 자녀와 부모 또는 조부모 사이의 부양에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미혼모가 아니더라도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부 또는 모(한부모가정)는 이혼한 전 배우자로부터 자녀의 부양료(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런데,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부 또는 모(비양육친)는 재산이나 수입이 없더라도 그 부모(조부모)는 재산이나 수입이 상당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부 또는 모(양육친)는 부양료(양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부 또는 모(비양육친)의 부모(조부모)를 상대로 부양료 심판청구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
위 사례에서 도보리는 이재화를 상대로 딸의 부양료를 청구하면서 자신이 딸을 돌보기 위하여 수입을 얻지 못하는 사정을 고려하여 부양료를 산정해 줄 것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또한 이재화가 경제적인 능력이 되지 않을 경우 도보리는 이재화의 아버지를 상대로 부양료 심판청구를 하면서 자신에 대한 부양료도 함께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발견한 법이 예측가능성이 없을 때 법치주의 원리상 법을 새로 만드는 방식으로 법질서가 운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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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상황에 관한 설명의무 위반’은 이혼사유

부부 재산 내역이나 관리 상태를 남편에게 공개하지 않은 아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수원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잇따라 배우자에게 자신의 재산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혼사유가 된다고 판결했다.
올초 수원지방법원 가사3단독(노미정 판사)은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이혼을 청구하자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반소로 이혼과 재산분할 등을 청구한 사건에서 “부부갈등을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하지 아니한 채 재산을 자신 명의로 한 후 친정 식구들과 돈 거래에 관한 명확한 설명 없이 집을 나가 별거와 이혼소송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아내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아내는 남편에게 재산분할 9,000만원을 지급함과 동시에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편, 서울고등법원 제3가사부(이승영 부장판사)는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이혼과 위자료 등을 청구한 사건에서 “자신은 기존의 높은 소비수준이나 생활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소득을 초과해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면서까지 자신 가족들의 사업이나 소비를 지원했”고 “부부의 재정적 독립을 어렵게 만들고 아내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상처를 키웠으므로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다”면서 남편은 아내에게 위자료 3,000만원과 함께 재산분할로 4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부부 사이에는 동거, 부양, 협조의무가 있다. 부부는 재정상황에 관하여 배우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는데 최근 판결은 이런 의무를 확인한 것에 의미가 있다.
부부는 남녀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의미하지만 자녀를 포함한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끈끈한 경제적 결합이 당연히 요구된다.
부부가 동거하면서 외도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생계를 유지하고 장래를 도모할 수 있도록 재정상황을 설명하고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것만 탓할 것이 아니라 부부사이에 ‘신뢰’라는 자산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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