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부리다…빈털터리 전락한 ‘얌체도둑’

서울 강남지역의 고급 아파트와 빌라만을 골라 절도행각을 벌인 전문 털이범이 쇠고랑을 찼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26일 전과 7범 김모(39)씨에 대해 2006년 9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49차례에 걸쳐 금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가 대기업 임원과 사장, 약사, 유명 연예인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싹쓸이한 물품은 시가 100억원에 달한다. 또 훔친 물건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낮에는 부유한 사업가 행세를 하며 여심을 흔들기도 했다.

6000만원짜리 일제 렉서스 승용차를 선물하고 생활비조로 매달 1000만원을 내놓는 통 큰 사나이에게 반하지 않을 여자는 없었다. 강남 부유층을 벌벌 떨게 만든 김씨의 기막힌 범행 수법과 호화의 극치를 달린 이중생활을 낱낱이 공개한다.

절도 전과만 7범인 김씨는 전문적인 빈집털이범이었다. 2005년 같은 혐의로 구속돼 1년을 복역하고 2006년 5월 출소한 그에게 절도는 마약과 같았다.

감옥을 나온 지 4개월 만인 같은 해 9월 다시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한 그. 경찰이 파악한 절도 물품은 현금과 수표, 귀금속, 명품의류, 달러화, 엔화, 유로화 등 다양하다. 한마디로 돈이 될 만한 것은 싹쓸이 했다는 편이 정확하다.

김씨에게 당해 집을 털린 피해자 중에는 운동선수 출신의 인기 방송인 K씨도 포함돼 있었다. K씨는 명품 청바지와 시계 등 180만원 상당의 금품을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가 한 개에 수천만원씩 하는 명품 시계를 많이 훔쳤다. 국내에서 파는 명품 브랜드는 한번쯤 다 훔쳐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고급주택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침입하기 쉬운 아파트나 빌라의 1층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다.


“잃어버린 적 없다” 숨는 피해자

경찰 관계자는 “강남 고급 아파트나 빌라 가운데 불이 꺼져있는 집을 골라 베란다를 통해 들어갔다. 주로 1층을 노렸고 1,2층 집을 연달아 털기도 했다”고 전했다. 범행을 저지르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10분. 이 짧은 시간동안 한 번에 최소 수천만원 상당의 물건을 훔쳐 시중가의 1/10 가격을 받고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도난 사실을 숨기거나 신고하지 않는 피해자들이 많아 범죄를 부채질했다는 점이다. 신고가 접수된 사건을 토대로 경찰이 파악한 김씨의 범행은 49건이지만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추측이다.

특히 김씨가 훔쳤다고 자백한 물건 가운데 가장 고가품인 2.8캐럿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경찰은 애를 태우고 있다. 감정가만 1억원에 달하는 최고급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은 수수께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지 않는 바람에 김씨는 2년 동안 마음 놓고 도둑질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절도로 적지 않은 재산을 모아 동거녀와 호화생활을 즐긴 사실도 드러났다. BMW를 몰며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을 ‘기업체의 재무이사’로 소개한 김씨.

사업자금이 필요한 친척에게 선뜻 1억원을 내놓는 것은 물론 룸살롱과 골프클럽을 전전하며 인맥도 넓었다.


‘2.8캐럿’ 다이아몬드 주인은?

그는 서울 잠실에 월세 150만원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를 동거녀 A씨(32) 명의로 얻어 함께 지내왔다. A씨에게 시가 6000만원짜리 렉서스 승용차를 선물하고 매달 1000만원씩 생활비로 건네는 등 통 큰 씀씀이를 자랑한 것도 김씨다. 두 사람은 명품 가구로 집을 단장하고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상류층 생활을 누린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또 동거녀에게까지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겼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씨가 매일 아침 양복 차림으로 출근해 회사에 다니는 줄 알았다. 꿈에도 절도범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한편 그는 경찰에 잡힐 것을 대비, 자신의 범죄가 생계형 범죄로 보이도록 위장하기위해 경기 구리시에 월세 40만원짜리 다세대 주택을 얻어 꼬박꼬박 세를 내며 꿀림방(숙소)으로 삼았다. 생계형 범죄의 경우 법원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또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장물을 팔아 번 돈을 여러 개의 차명 계좌에 예치해 관리하는 등 치밀한 범죄를 계획한 정황도 포착됐다.

경찰은 “또 다른 범죄자가 비슷한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절도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김씨가 갖고 있는 범죄수익금을 모두 몰수하겠다”고 밝혔다. 어설픈 꼼수로 범죄행각을 감추려던 영악한 절도범이 쇠고랑과 함께 빈털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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