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촛불… “막힌 것 뚫고 굽은 것 펴야”

하루 전 해킹 피해를 입은 한나라당 홈페이지 첫 화면(위)과 게시판(가운데).지난 2일 해킹당한 서울 경찰청 제1기동대 홈페이지 첫화면(아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과 물가폭등 등으로 불거진 국민의 반정부 정서가 정점에 달했다. 지난 6일 CBS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또다시 최저치를 경신하며 16.9%로 주저앉았다. 1주일 만에 무려 7.6%나 빠진 수치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12월 기록한 최저 지지율 12.6%에 견줄만하다. 국민의 불신은 비단 대통령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 경찰과 여당을 비롯해 바야흐로 대통령 이하 모든 정부 권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주목할 것은 국민의 대응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촛불집회 등 시위에 참여해 정권 퇴진 구호를 외칠 뿐 아니라 해당 정부 기관 홈페이지를 해킹해 웃음거리로 만드는 인터넷 발 ‘극약처방’도 등장했다. 일부 시민은 논란이 된 경찰과 정치인을 상대로 법정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나섰다. 일련의 사건들로 짚어본 2008년 대한민국은 ‘민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폭풍에 휘말리고 있다.

지난 1일 한나라당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쥐(이명박 대통령을 지칭)를 잡는 고양이 사진이 올라왔다.


첨단 디지털무기 총동원 된 ‘민란’

시민들의 건의사항과 자유토론을 담는 게시판에는 ‘명바기 잔다’는 댓글이 관리자 명의로 도배됐다.

한나라당 홈페이지를 순식간에 초토화 시킨 장본인은 미국 위스콘신 대 출신의 경력 8년차 프로그래머 김모(37)씨였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고양이 해커’ ‘홍길넷’으로 불리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국민들이 쇠고기 수입에 반대함에도 정부는 장관 고시를 강행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알리기 위해 여당인 한나라당 홈페이지를 노렸다”고 진술했다. 대형 포털사이트에는 ‘국민을 즐겁게 한 해킹이다’ ‘부조리에 대한 국민의 경고다’며 김씨의 무죄방면을 요구하는 누리꾼들의 청원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집권 여당에 대한 민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지난 2일에는 서울 경찰청 제1기동대 홈페이지가 수난을 겪었다.

첫 화면에 주저앉아있는 북극곰 사진과 ‘때..때리면 아..아프다네!! 쥐..쥐새끼나 때려 잡으시게나!!’라는 문구가 올라온 것. 해커의 공격을 받은 기동대 홈페이지는 지난 2일 오후 결국 폐쇄됐다.

최근에는 언론중재위원회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지난달 27일부터 언론중재위 홈페이지가 해커의 공격을 받아 일부 게시판 기능이 마비된 것. 일각에서는 이번 해킹이 언론중재위가 광우병 위험성을 알린 MBC 'PD수첩‘에 대해 반론 보도 결정을 내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언론중재위를 시작으로 한나라당, 경찰 기동대 홈페이지 해킹 사건이 모두 연장선상에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시위 참가자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지난 2일에는 전경대원이 여학생을 목 졸라 숨지게 했다는 이른바 ‘여학생 사망설’이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올라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이 글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5일 사망설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최모(48)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관련,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최씨가 처음이다.

한편 최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자신을 ‘경기도 모 지방지 취재부장’이라고 소개했지만 이 역시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소속된 ‘A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기자협회 등에 등록돼 있지 않을 뿐더러 2007년 11월 ‘A일보 수습기자’라는 직함으로 쓴 최씨의 또 다른 글은 블로거들이 활동하는 ‘도깨비 뉴스’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한마디로 최씨는 기자가 아닌 블로거일 뿐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검거된 최씨는 ‘여학생 사망설’을 허위로 올린 혐의를 인정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최씨가 없는 사실을 지어냈다는 자백을 받았다”며 “사망설을 퍼트린 경위에 대해 추궁하자 그가 인터넷에서 ‘뜨기 위해’ 글을 올렸다 털어놨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학생 사망설’은 여전히 누리꾼 사이에 또 다른 음모론으로 재생산 돼 퍼져나가고 있다. 경찰이 시민 폭행·사망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양심 증언을 한 최씨를 붙잡아 가뒀다는 것이다.

여기엔 ‘정부발표를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회의적 반응부터 ‘최씨는 두 눈으로 본 것을 알렸을 뿐이다. 구속은 말도 안 된다’며 사망설 자체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의견도 많다.


국회의원과 ‘맞장 뜬’ 시민

6·4 재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지난 1일에는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이 폭행 시비에 휘말렸다. 서울 강동구청장 선거 지원유세에 나섰던 김 의원과 수행원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민에게 폭언과 폭행을 퍼부었다는 것.

현역 국회의원과 평범한 시민의 폭행 공방은 고소와 맞고소로 이어져 첨예한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1일 오후 강동구청장 보궐선거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섰다. 이 자리에는 같은 당 소속인 나경원 의원과 고승덕 의원도 함께 했다.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나섰던 시민 김모(34)씨는 나 의원을 향해 “쇠고기 수입하지 마세요. 쇠고기 문제부터 해결하세요”라고 말했고 곧장 김 의원 수행원들에게 끌려가 폭언과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이에 김 의원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김 의원은 “김씨가 막말을 하며 유세를 방해했고 폭행당한 것은 우리 쪽 수행원들”이라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지난 4일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했다. 이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함께 시민 폭행 사건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시민들은 김 의원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우리가 아직 야당 의원인 줄 아느냐”며 윽박지른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김 의원은 “야당 시절 당한 기억도 많아 답답해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민심의 역풍은 거셌다.

김 의원의 개인 블로그에는 ‘국민이 우습게 보이냐’ ‘진정한 위선자의 표본’이라는 식의 공격성 댓글만 9천개 이상 달려 김 의원을 곤혹스럽게 했다.

사건 조사를 담당한 서울 동작경찰서 관계자는 “양쪽 입장이 180도 달라 대질 심문을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목격한 4~5명의 목격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유명 국회의원과 시민의 ‘전쟁’은 거대한 진실게임으로 번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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