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처리하면 돈 가질 수 있다” 대화녹음 확보

지난 4월3일 300억대 재산을 가진 강남의 60대 여성 재력가가 필리핀에서 총기살해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 박모씨(67·여)는 딸과 함께 필리핀에 여행 차 갔다가 필리핀 바탕가스주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인적이 드문 벌판이었다.

서울 서초경찰서와 필리핀 경찰이 당시 밝힌 바에 따르면 박씨는 머리에 45구경 권총의 실탄 두 발을 맞고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발생 후 박씨에 대해 조사하던 경찰은 청부살인의 냄새를 맡았다. 박씨가 수백억원대의 재산가라는 점과 그 재산을 둘러싼 가족들 간의 갈등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최근 박씨의 유서내용이 새롭게 바뀐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당초 유서엔 상속인이 자신의 남동생과 외손녀였는데 나중엔 두 딸로 바뀌었다. 사건의 여러 정황으로 미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박씨의 필리핀 여행에 동반한 딸 서씨다. 경찰은 서씨가 어머니 박씨의 재산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나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은 계속된 조사 끝에 최근 박씨를 살해해달라고 청부하는 내용의 휴대전화 녹음기록을 필리핀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수사 중이다. 경찰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현재 이 녹음기록을 국과수에 넘긴 상태다. 이에 가족의 탈을 쓴 추악한 범인의 실체가 드러날지 이 사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서초경찰서와 필리핀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3월 30일 서씨와 함께 필리핀에 도착했다. 투자 이민을 계획 중이던 박씨는 영어수업 차 한 달 정도 필리핀에 체류할 예정이었다.

경찰조사에서 서씨는 사건 당일 박씨가 누군가를 만난다며 마닐라의 샹그리라호텔에 갔다고 진술했다. 이에 서씨는 어머니 박씨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호텔 앞에 내려줬다는 것이다. 이때가 오후 6시쯤. 그리고 서씨는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박씨의 행적은 이때부터 묘연하다. 여기서 사라진 박씨가 발견된 장소는 남쪽으로 1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탕가스주다. 필리핀 경찰이 박씨를 발견했을 때 그는 머리에 두발의 총탄을 맞고 숨진 상태였다.


드러나는 충격사건 전말

경찰은 목격자가 “사건 현장 근처에서 흰색 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얼마 뒤 두 발의 총성이 들렸다”고 진술함에 따라 납치·살해당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였다.

특히 한국·필리핀 경찰은 박씨가 전문 살인청부업자에게 당한 것으로 파악했다. 그 이유는 ▲박씨를 밴에 태워 110㎞나 끌고 갔고 ▲종이가방에 5만1700페소(약 100만원)가 남아 있었으며 ▲머리의 총상 두 발 중 첫 번째는 살해용이고 두 번째는 확인 사살용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살인을 청부한 인물이 재산을 노린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잠정결론 내렸다. 따라서 유력용의자는 유서의 상속인과 상속자격을 가진 이들로 추려졌다.

이어 최근 경찰은 박씨의 살해를 사주하는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기록을 확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4일, 필리핀에서 권총에 맞아 숨진 박씨 사건과 관련, 청부살인을 암시하는 대화가 녹음된 CD를 필리핀 현지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CD에는 일(살인)을 성공해 박씨가 죽으면 돈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의 대화가 담겨 있다. 이 녹음에는 남녀가 등장해 영어로 대화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에게 완벽한 일처리를 당부하는 대화다.

경찰은 "CD는 박씨와 박씨 딸 서씨가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현지 가이드 겸 운전기사 B씨가 보관하고 있던 것“이라며 “B씨가 이 대화를 휴대폰으로 녹음해 저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B씨는 최근 필리핀 현지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서씨 육성이 담긴 이 녹음 파일의 존재를 경찰에 털어놨다. 현지 경찰은 이 녹음기록을 입수해 한국 측에 넘겼다.

B씨는 현지 경찰에 "서씨가 어머니 박씨를 죽여야 하니 살인 청부업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이에 친형을 통해 서씨에게 살인 청부업자를 소개해 줬다"고 진술했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서씨가 살인을 청부했다는 사실을 밝힐 경우 청부업자들에게 보복당할 것을 우려해 침묵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찰은 “조사 결과 B씨는 최근 1년 동안 박씨와 서씨가 필리핀을 방문할 때 현지 가이드를 맡았던 인물이었다”며 “현지 경찰은 박씨가 살해될 때 B씨가 갑자기 집안 사정을 핑계로 가이드 일을 맡지 않아 이를 수상히 여기고 그를 추궁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CD속에 등장하는 목소리 주인공이 서씨와 동일한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음성감정과 조작여부 등을 국과수에 의뢰한 상태다.

이와 함께 경찰은 필리핀 경찰과 함께 박씨를 살해한 청부업자를 쫓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은 7000여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기 때문에 이미 도주한 업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목소리 주인공 서씨 잠적

또 현재 서씨는 휴대전화를 꺼놓은 채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서울〉은 녹음기록에 대한 서씨의 설명을 듣기위해 서씨와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역시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져있었다.

앞서 경찰 조사에서 서씨는 “사고를 수습하고 한국에 들어온 뒤 B씨가 계속 돈을 요구했다. 그런 사람 말을 어떻게 믿느냐”며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바 있다.

한편 서씨는 박씨가 살해되던 당일 한국 돈 200만원을 현지에서 환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00만원은 서씨가, 나머지 100만원은 이날 현지 가이드를 맡았던 M씨가 바꿨다고 경찰은 밝혔다.

살해된 박씨는 서울 남대문 상가 주변에서 노점상을 하며 돈을 모아 부동산 투자 등으로 300억대 재산가가 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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