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동영상’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양씨의 자살소식이 알려지자 지인들이 그의 미니홈페이지에 찾아와 추모의 글을 남겼다.(좌) 양씨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미니홈피 게시글.

국내 유명 비보이(B-Boy. 브레이크 댄스를 주로 추는 댄서)팀 출신의 20대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유서대신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촬영한 ‘자살 동영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지난 16일 저녁 8시 경 인기 비보이 그룹 ‘라스트포원’ 출신 양모(23)씨가 서울 역삼동에 있는 숙소 욕실에서 가스 배관에 목을 맨 채 숨져있는 것을 사촌동생 신모(21)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양씨가 숨진 욕실 선반 위에서 그의 최후가 고스란히 담긴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전화기는 숨진 양씨의 것이었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양씨가 욕실 선반위에 휴대전화를 올려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과정을 촬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자살을 시도할 만큼 정신적으로 쇠약한 사람이 동영상을 찍을 여유가 있었겠느냐는 또 다른 의문이 제기돼 논란의 여지가 남았다. 제3자가 촬영과정을 도운 것이 아니냐는 또 다른 의혹의 불거진 것이다. 23살 젊은이의 죽음과 충격적인 ‘자살동영상’을 놓고 벌어진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양씨가 동영상을 남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네이버, 다음 등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일명 ‘자살 동영상’을 찾는 누리꾼들의 호기심으로 도배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양ㅇㅇ군 자살 동영상’이라는 제목의 글로 방문자들을 속여 조회수를 높이는 ‘낚시질’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씨의 자살 동영상은 인터넷을 포함한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다. 증거물로 수집된 문제의 동영상은 이미 지워졌기 때문이다.


“유출되면 큰일, 문제 영상 삭제”

사건을 담당한 수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양씨의 ‘자살 동영상’은 지난 18일 삭제됐다.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충격적인 영상이 유출될 경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서 발견된 휴대폰을 증거물로 확보했지만 혹시 밖으로 새어나가면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의견이 수사팀 내부에서 나왔다”며 “회의 끝에 유족들 동의를 얻어 문제의 동영상을 완전히 지우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양씨가 욕실 파이프에 허리띠를 묶고 목을 매는 장면을 본인이 직접 욕실 선반에 휴대폰을 올려놓은 뒤 녹화 버튼을 눌러 촬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3자에 의해 동영상이 촬영됐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팀 관계자는 “촬영 각도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 현장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정황을 찾지 못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길 만큼 용의주도하게 자살을 준비했던 양씨가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도 아닌 조악한 휴대폰 동영상으로 현장을 기록했다는 것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23살의 젊은이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양씨는 2006년 12월 국내 유명 비보이 그룹인 ‘라스트포원’의 주니어 팀인 ‘라스트마스’에 몸담은 뒤, 주요 국제 대회를 휩쓸며 승승장구하던 춤꾼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부상이 양씨의 꿈을 짓밟았다. 지난해 12월 무릎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으로 춤을 접어야 했던 것.

부상 후유증으로 6개월 전 팀을 나온 양씨는 최근 ‘소울헌터스’라는 또 다른 비보이 팀으로 소속을 옮겨 재기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양씨는 일본어 학원을 다니며 유학을 준비하는 등 새 진로를 놓고 고민하며 지인들에게 자주 힘든 신경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예전에 한솥밥을 먹던 비보이 동료들이 독일 등 유럽무대로 진출해 화려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남다른 박탈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함께 활동했던 팀 멤버들이 성공한 것과 달리 춤을 포기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죽기 하루 전에도 자살시도

양씨가 몸담았던 '라스트마스'는 지난 6일부터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유로 2008(유럽축구선수권 대회)'에 초청돼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양씨의 지인들은 경찰 조사에서 ‘적어도 한 달 전부터 양씨가 죽음을 암시하는 행동과 말을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그의 미니홈페이지에는 이 같은 흔적이 엿보였다.

지난 5월 14일 양씨가 강에 뛰어들 것 같은 사진이 ‘열받으면 확!’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이에 대해 한 지인이 ‘아니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잖아’라고 하자 양씨가 ‘그렇긴 하죠’라는 댓글을 올린 것.

한편 경찰은 양씨의 친구들이 ‘그가 죽기 하루 전 목에 긁힌 상처가 있는 것을 봤다’고 증언함에 따라 그가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실패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곧 사건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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