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으로 간 ‘론스타 게이트’

지난 2006년 4월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론스타 사태 관련 기자회견을 가진 서울 63빌딩에서 전국 금융산업노동조합 회원들이 반대시위를 벌이던 모습.

지난달 24일 주가조작(증권거래법 위반)과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무죄방면 됐다. 이로써 유 대표와 함께 1심에서 250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외환은행과 론스타 역시 이번 무죄 판결로 단 한 푼도 낼 필요가 없게 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유 대표의 주가조작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 징역 5년의 실형과 벌금 42억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한바 있다. 4개월 만에 유죄에서 무죄로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 재판부의 속내는 무엇일까.

검찰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 “무조건 상고하겠다”며 3라운드를 예고했다. 이에 론스타의 법적 대리인이자 최대 법조권력 ‘김앤장’도 검찰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어 론스타를 둘러싼 마지막 전쟁의 승자는 누가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3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사태로 묶인 자금은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의 15%에 달한다. 국민 재산 108조원이 5년째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론스타 관련 재판은 현재 다섯 곳에서 계류 중이다. 최근 유 대표와 론스타에 대해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는 론스타를 둘러싼 다섯 가지 쟁점 중 하나다. 당초 검찰은 외환카드의 주식감자설을 허위로 퍼트려 주가를 조작, 403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유 대표와 론스타를 기소했고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유 대표에게 징역 5년의 실형과 벌금 42억원을 선고한 뒤 법정구속 했다.

4개월 만에 2심 판결을 이끌어낸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 사건은 론스타 관련 공방 중 가장 진행 속도가 빠르다. 때문에 이번 판결은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관련 공판의 향방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최대 쟁점 불 지필 분수령

론스타 사태의 최대 쟁점이자 핵심은 다름 아닌 외환은행 불법 헐값 매각 의혹이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국장을 비롯해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 등이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비율)을 조작해 감사원 추산 최소 4106억~최대 1조59억원에 달하는 국민재산에 손실을 입힌 혐의로 1심 재판에 서고 있다.

이와 함께 론스타 펀드가 114억원 조세를 포탈하고 145억원에 달하는 수익률을 조작한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투기자본감시센터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론스타와 수년 째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주목할 것은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던 유 대표와 론스타의 불법 혐의가 2심에서 대부분 무혐의로 판결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나머지 재판에서 론스타의 입장이 다소 유리해졌다는 점이다.

검찰이 2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반드시 상고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론스타의 주가조작 유무죄 공방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 재판은 하급심과 달리 재판 기한을 정하지 않아 결론이 나기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1:1로 맞붙게 된 검찰과 론스타 변호인단의 치열한 전쟁이 예고된 만큼 론스타 사건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관련 공방 중 가장 먼저 최종심 결과를 발표할 대법원의 입김에 따라 론스타와 108조원의 행로가 결정되는 것이다.

1심에서 유죄로 판결됐던 론스타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왜 2심에서는 무죄로 뒤집혔을까. 증권거래법에 따라 주가조작 혐의가 인정되려면 주가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도’가 입증돼야 한다. 이에 대한 재판부의 시각은 180도 달랐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03년 론스타의 감자계획 발표를 실제 감자가 아닌 주가에 영향을 미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실제 감자 의사가 있었을 뿐 주가를 조작하려는 불순한 의도는 없었다고 보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론스타 무죄 법원의 독심술 덕분?

재판부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 등 통해 외환은행 외환카드를 흡수·합병하려는 측에서 감자 필요성을 사전에 논의한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론스타는 2003년 11월 외환카드의 감자 계획을 공식 발표했지만 시장 상황의 변화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감자(減資)는 일반적으로 부실 한계기업들의 마지막 생존 장치다. 즉 기업 부실로 자본이 잠식됐을 때 재무구조를 개편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극약 처방으로 감자계획 발표 후 해당 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큰 폭으로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정보에 어두운 소액주주들은 무방비로 큰 손해를 떠안게 되기 때문에 결정되지 않은 감자 계획은 섣불리 발표하지 않는 것이 기업 불문율로 알려져 있다. 상법에선 감자를 결정할 땐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감자계획 발표 직전 이사회를 통해 감자를 검토한 만큼 실제 감자 의사가 있었다고 봐야한다”며 “감자계획을 발표하고도 실제 감자를 하지 않았다 해서 주가조작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과 시민단체는 재판부가 내놓은 근거에 대해 큰 불만을 표하고 있다. 론스타가 외환카드 합병과 대주주 자격 유지를 위해 주가를 일부러 떨어트린 정황 증거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장화식 정책위원장은 “론스타가 하지도 않을 감자계획을 밝힌 의도는 따로 있다”며 “외환카드 합병에 나선 론스타가 소액주주들에게 주는 보상금을 아끼기 위해 일부러 주가를 폭락시켰고 합병 뒤에도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려 외환카드 주가를 떨어트린 뒤 싼 값에 사들이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1심에서 인정했던 모든 불법 혐의가 2심에서 모조리 무혐의 처리된 것은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당시 외환은행 이사회 녹취록에 따르면 ‘실제 감자를 하는 게 아니라 주가를 떨어트려 합병 비용을 줄이고 대주주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감자 계획을 유포하자’는 내용의 이야기가 나온다”며 “이 같은 근거로 유 대표가 1심에서 징역 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또 2심 판결일이 원래 6월 17일로 예정돼 있었는데 1주일 연기됐다. 참고자료 검토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어떤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가 단순히 감자 계획을 논의한 이사회 회의를 실제 감자 의사가 있었다는 정황 증거로 삼은 것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는 목소리는 관련노조에서도 나오고 있다.


“은밀한 범죄 혐의 입증 힘들어”

사무금융노조는 지난달 25일 성명을 내고 “이는 ‘외환은행 불법 매각’과 관련해 론스타와 당시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맹비판했다.

노조는 특히 “법원이 새로운 증거나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단지 ‘주가 하락 전에 감자에 대해 논의를 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미리 논의만 하면 주가조작이 합법으로 둔갑하느냐”고 되물었다.

검찰은 이번 판결이 최근 중점 수사하고 있는 재벌 2·3세 주가조작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재판으로 법원이 내세운 무죄 추정 원칙이 주가조작을 시도하는 세력에 단골 면죄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허위공시 등에 의한 주가조작은 실제 기업의 공시 실행 의지, 공시 시점과 주가의 상관관계 등을 고려해 확실한 물증이 있을 때 기소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번 법원의 판단은 소액 투자자의 피해를 감안하지 않은 다소 관대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법원 판단은 존중돼야 하지만 지능적 화이트칼라 범죄의 은밀한 수법을 옹호하는 판례가 나오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촛불시위로 불거진 민심이 ‘투기자본에 의한 국부유출’이라는 민감한 지적으로 옮겨 붙고 있는 가운데 론스타 사태의 키는 대법원이 쥐게 됐다. 5년을 끌어온 지루한 싸움의 줄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론스타 품은 김앤장, 역할론 재점화

‘힘께나 쓰는’ 김앤장 고문단, 론스타 사건서도 한몫?

합동법률사무소 김앤장의 이름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 9월 론스타가 주식 초과보유 승인신청서를 금융감독위원회에 제출하면서부터다.

김앤장은 론스타의 국내법 자문을 맡아 관련 사항 검토와 신청서 작성 등 현지 업무를 대신했다. 3년 뒤 외환은행 매각 협상에서도 김앤장은 론스타의 법률대리 업무를 맡았고 현재까지도 론스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불법 매각 논란에 깊게 관여한 의혹이 불거진 인물이 김앤장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론스타를 둘러싼 모든 의혹의 중심에는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있다. 그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무렵 김앤장의 고문이었다.

감사원과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자 이 전 부총리를 중심으로 재경부, 금감위, 금감원 등이 손발을 맞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김앤장이 론스타의 주식 초과보유 승인신청서를 금감위에 제출한 다음날 재경부가 금감위에 승인 협조 공문을 보낸 점 등이 이런 사례로 볼 수 있다.

김앤장은 법률·금융 분야의 고위관료들이 퇴직하면 그들을 영입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 결과 경제부처·법원·검찰 등의 고위직 출신 고문들만 수십 명에 이른다.

한승수 총리와 서동원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등 현 정부에서도 고위직 인사를 대거 배출해 하나의 권력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론스타 사태가 새 국면을 맞은 최근 시민단체들을 필두로 ‘김앤장 고문단’의 역할론이 뜨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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