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과 함께 사라진 여인들

지난달 17일 인천 강화 소재 K은행에서 현금 1억원을 인출한 뒤 고교생 딸과 함께 실종된 윤복희(47·여)씨의 행방은 공개수사로 전환된 지난달 27일 현재 오리무중이다. 이런 가운데 모녀의 행적을 추정할만한 몇 가지 실마리가 드러나 사건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먼저 그가 실종되기 직전 탔던 차안에서 발견된 3점의 혈흔은 모두 윤씨 본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거액의 현금을 갖고 있던 윤씨 모녀가 괴한에 납치, 범죄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수사팀 일각에서는 지난 3월 금전 문제로 네 모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전직 야구선수 이호성 사건의 복사판이 아니냐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속단하기는 이르다. 윤씨가 최근 몇 달 사이 이단으로 구분되는 교회 활동에 심취해 있었다는 주변인 진술과 정황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경찰은 윤씨가 교회 봉헌금 목적으로 거액을 인출한 뒤 딸과 함께 종교시설에 몸을 맡겼을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둔 채 수사를 압축하고 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4일 “윤씨가 실종되기 직전 타고 있던 무쏘 차량에서 발견된 혈흔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분석 결과 윤씨 본인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핏자국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뒷좌석 바닥에 버려진 휴지와 트렁크에 보관 중이던 돗자리 등 모두 세 곳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윤씨가 차 안에서 살해됐거나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발견된 핏자국이 오래됐을 뿐 아니라 양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일단 경찰은 발견된 혈흔이 실종과 무관한 상처로 생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무쏘차량 혈흔 ‘미스터리’

하지만 지난 3월 발생한 이호성 사건 역시 살해 현장으로 지목됐던 피해자의 아파트에서 적은 양의 혈흔만 발견된 바 있다. 수사결과 범인 이씨는 둔기로 모녀를 살해한 뒤 핏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김장비닐로 시신을 감싸 유기했던 것으로 드러나 이번 사건 역시 비슷한 수법이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씨가 지난달 17일 오후 현금 1억원을 가지고 탔던 검은색 무쏘는 모녀가 사라진지 사흘째인 지난달 19일 강화군 내가면 P빌라 주차장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차안에서 발견한 혈흔과 담배꽁초, 머리카락 50여점 중 22점을 곧장 국과수에 보내 감식을 의뢰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의뢰 결과 담배꽁초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가 피운 것으로 나타났고 머리카락에 대한 분석은 진행 중”이라 말했다. 차 안에 윤씨 모녀와 혈연관계가 아닌 한 명 이상의 남성이 함께 타고 있었다는 뜻이다.

경찰은 이에 앞서 윤씨가 돈을 인출한 K은행 직원으로부터 20~3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모녀와 함께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수사팀은 이 남자들이 사건의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보고 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윤씨 모녀가 납치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잠적했다는 주장은 이웃 주민들로부터 처음 나왔다. 경찰 조사에 응한 이웃들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 4월 1일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같은 달 중순부터 인천 강화읍에 있는 한 교회 신자로 등록해 열성적으로 활동해왔다.

문제는 윤씨가 몸담은 교회가 한국기독교계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한 A종교집단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30년 가까이 불교신자였던 윤씨가 불과 20여일 만에 개종한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친과 심각한 갈등을 겪은 사실이 경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모녀 실종에 A 종교집단이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어 수사 중이다. A종교에 모녀의 행방을 찾는데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윤씨가 다닌 교회 측은 A종교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씨 이웃들은 경찰 조사에서 “윤씨가 남편과 사별한 뒤 딸에게도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많이 고민했다”고 진술해 종교에 심취한 윤씨가 스스로 잠적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이와함께 수사팀은 실종된 윤씨가 현금을 인출하는 과정에 A종교와 관련된 50대 남자가 개입된 정황을 밝혀냈다.

경찰 관계자는 “A종교와 관계가 있는 50대 초반의 남자가 윤씨가 은행에서 현금 1억원을 찾는데 개입한 것 같다"며 “이웃이기도 한 이 남자는 윤씨가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와 친밀한 사이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윤씨가 실종되던 날 오전 딸 김선영(16)양의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보험금을 수령하는 법적 문제로 딸이 함께 가야한다’며 김양의 조퇴를 요청, 데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김양이 어머니의 조퇴 종용을 거부했다’는 학교 측 진술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윤여인, 가족과 종교문제로 갈등

경찰은 이 같은 진술을 토대로 김양 역시 특정종교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윤씨는 지난달 17일 오후 1시쯤 인천 강화읍 K은행에서 예금액 5억원 중 남편의 사망 보험금으로 받은 1억원을 현금으로 인출한 뒤 수업중인 딸을 불러내 함께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다음날인 18일 오전 윤씨 시어머니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모녀의 행방과 생사여부는 현재까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윤씨는 지난 4월 1일 남편과 사별한 뒤 시어머니, 딸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군복무중인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