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소매치기 드림팀‘충격’

<제목 : 무방비도시2 / 주연 : 평균나이 63.7세, 평균전과 16범 베테랑 소매치기단 ‘봉남이파’ 조직원 4인 / 장르 : 70대 나이에 ‘명품 기계’ 반열에 오른 할머니 소매치기를 통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교훈을 일깨우는 실버영화 / 개봉 : 지난해 6월 첫 개봉, 1년 장기 상영 뒤 지난달 24일 종영>

배우 손예진이 매력적인 소매치기로 분해 화제가 됐던 영화 ‘무방비 도시’가 최근 70대 노파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완벽하게 재연됐다. 다만 주인공들이 경찰의 쇠고랑을 차게 된 상황만큼은 연출이 아닌 진짜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서울 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4일 작년 6월부터 최근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 백화점과 재래시장을 무대로 쇼핑객들의 지갑을 훔쳐온 장모(71·여)씨 등 4명을 비롯해 5개 조직 소속 전문 절도범 10여명을 잡아들였다고 밝혔다.

4개월에 걸친 경찰의 체포 작전 가운데 가장 큰 ‘월척’으로 꼽힌 것은 단연 평균전과만 16범에 달하는 베테랑 조직 ‘봉남이파’다.

특히 조직의 우두머리 장씨는 수십억대 재산을 거머쥔 장밋빛 인생의 주인공이자 소매치기 업계에선 ‘명품 기계(피해자들의 가방을 면도칼로 찢어 지갑을 빼내는 역할)’로 추앙받는 존재다. 막강한 재력을 앞세워 귀부인 행세를 해온 장씨는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황금 손’으로도 유명해 그를 붙잡은 경찰들은 애를 태우고 있다.

경찰에 덜미를 잡힌 ‘봉남이파’ 조직원은 리더 장씨를 포함해 모두 4명. 그 중 전과 24범의 장씨와 20범 임모(68·여)씨는 1970년대부터 면도칼을 휘둘러온 몇 안 되는 고수로 알려졌다. 이들은 10여 년 전 같은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큰집 선후배’로 인연을 맺었다.


유능한 변호사 고용, 법망 피해

나머지 조직원 김모(63·여)씨 등 두 명도 같은 감방 동생으로 장씨와 막역한 사이였으며 이들 역시 절도 전과만 10범에 달하는 준전문가 수준이었다.

하지만 ‘명품 기계’로 불리는 장씨와 임씨 앞에서 나머지 조직원들은 ‘하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봉남이파가 애용한 일명 ‘빽따기’는 수법은 소매치기 업계에서 고전으로 통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솜씨만큼은 수도권 내에서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였다.

목표물의 지갑을 손에 넣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겨우 30초에 불과할 만큼 이들은 짜여진 각본대로 교과서처럼 움직였다.

먼저 나서는 것은 목표물 근처에 접근해 망을 보는 ‘안테나’. 그가 사복경찰이나 경비원의 시선을 돌린 사이 표적의 주위를 끄는 게 ‘바람’의 역할이다. 장씨는 조직원들의 비호아래 목표물이 완전히 의심을 거뒀을 때 비로소 행동에 들어가는 ‘기계’를 자처했다.

옷소매 안에 숨긴 면도칼로 순식간에 가방을 찢고 파고드는 장씨의 손놀림은 CCTV 화면을 연거푸 느리게 재생해야 육안으로 겨우 확인이 될 만큼 정교하고 재빨랐다. 하지만 수사팀이 장씨를 업계 최고봉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접수한 ‘명품 기계’에서 수십억원대의 재산가로 변신한 장씨는 경찰의 처벌을 피하는 데도 비상한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개발붐이 일던 90년대 초 경기도 부천에 5층짜리 건물을 사들였고 신형 그랜저 승용차를 몰고 다닐 만큼 당당한 재력가로 알려졌다.

부두목인 임씨도 벤츠와 경기도 분당에 건물 3채를 소유한 지역 유지였다. 문제는 장씨와 임씨가 범죄 혐의를 벗는데 막대한 재력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경찰에 붙잡히면 곧바로 비싼 수임료를 동원해 유능한 변호사를 샀다.

이렇게 고용된 변호사는 의뢰인이 ‘우울증’등 정신적인 이유로 습관성 도벽에 빠졌을 뿐이라고 호소해 영장 청구를 기각시키는 방법으로 조직원들을 구제했다.

장씨가 조직을 결성한 지난 1년 간 경찰에 적발된 것은 줄잡아 4차례. 그럼에도 봉남이파 일원들은 돈의 힘을 빌려 법망을 보기 좋게 피해간 것이다.

경찰조사 결과 장씨 등이 지난 1년 간 9차례에 걸쳐 훔친 금품은 350여만원 정도다. 이들이 몰고 다닌 고급 승용차의 기름값 정도에 불과할 만큼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라 할 수 있다. 즉 봉남이파의 범죄행각은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지갑에 손을 대는 생계형 범죄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해외 유학까지 마친 자녀들의 부양을 받을 뿐 아니라 건물 임대료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해온 이들이 어째서 남의 가방을 탐냈을까.


“짜릿한 손맛 그리워서…”

오랫동안 소매치기범을 상대한 서울 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소매치기들은 지갑이 손에 달라붙는 순간의 ‘독특한 손맛’에서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장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40년 동안 일정한 직업 없이 소매치기로 살아온 이들에게 남의 가방을 찢는 일은 몸에 밴 습관과도 같았다.

더구나 최근 쓸 만한 젊은 인재가 드문 소매치기 업계에서 수 십 년 관록의 ‘명품 기계’는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습관과 명성. 이 두 가지 조건이 ‘할머니 소매치기’의 두 번째 전성시기를 열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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