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촬영·신고까지 “노하우 전수해 드립니다”

P업체가 제공하는 200쪽 분량의 '파파라치 교과서'

“‘쇠파라치’를 아십니까?”

낯선 신조어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쇠파라치’는 바로 미국산 쇠고기의 원산지를 감시하는 파파라치의 일종이다. 오는 10월부터 쇠고기뿐 아니라 식품 원산지를 속여 표기한 업체를 신고하는 사람에게 정부는 최고 200만원의 포상금 지급을 약속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단속 공무원의 인력난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고 서민들로서는 불경기에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다.

이 같은 바람을 타고 의외의 호황을 누리는 곳이 있다. 바로 파파라치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원들이다. 이들 학원은 쇠파라치 외에도 카파라치(교통법규 위반 감시자), 선파라치(선거법 위반 감시자), 쓰파라치(쓰레기 무단투기 감시자), 성파라치(성매매 감시자), 담파라치(담배꽁초 무단투기 감시자) 등 신고포상금을 위해 활동하는 전문신고요원을 양성하는 게 주 업무다. 이름조차 생소한 ‘파파라치 양성소’. 이곳에선 누구에게, 어떤 내용을 가르치고 있을까. ‘제대로만 하면 대기업 임원 연봉 부럽잖다’는 파파라치 전문 학원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파파라치 전문 양성소 P업체. 개인 과외 수준의 ‘얼뜨기’를 제외하고 전국에 10여 곳 이상 운영 중인 파파라치 양성소 가운데 주류로 손꼽히는 곳이다.

약 80m²(24평) 규모의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개조한 학원은 생각 외로 아담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올라가자 일반 가정집 거실에 해당하는 곳에 직원용 책상과 4인용 소파, 테이블 등이 마련돼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린 대형 PDP 텔레비전. 직원용 컴퓨터와 연결된 텔레비전에는 업체소속 ‘전문요원’들이 촬영한 신고용 동영상 목록이 빼곡하게 나열 돼 있었다.

“기자님 혹시 카메라 갖고 오셨습니까?”

기자가 도착했을 땐 마침 업체 대표 H씨가 40대 부부를 상대로 파파라치 강의를 막 시작한 상황이었다. 자료사진을 찍기 위해 스틸카메라를 가져왔다고 하자 H대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여긴 파파라치 회사입니다. 사진 촬영은 물론이고 녹음도 절대 하실 수 없습니다.”

사전에 취재 요청을 한 기자의 눈과 귀를 가리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 탓에 기자와 업체사이에 한동안 실랑이가 이어졌다.

“얼마 전에도 OO뉴스 기자가 수강생으로 속이고 들어와 불리한 기사를 터트렸어요. 정부 인가업체도 아닌 저희 입장에서는 최대한 방어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의 중이던 H대표 대신 인터뷰에 응한 S실장의 말이다. 언론에 의해 ‘전문 신고꾼’으로 낙인찍힌 만큼 취재진의 이중적인 태도에 신물이 났다는 것이다.

오랜 설득 끝에 결국 S실장은 일부 ‘비보도’를 조건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기자의 옷 속에 숨은 녹음기는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기자는 오늘 하루 ‘파파라치의 파파라치’가 된 것이다.


“한 달 만에 1천만원 벌이는 허구”

P업체를 비롯한 파파라치 학원을 찾는 이들의 꿈은 ‘고수익’이다. 일부 업체는 한 달 만에 1천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며 회원들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하지만 S실장은 이런 광고 자체가 허구라고 털어놨다.

“유명 업체들 가운데도 이런 식으로 회원들을 모아 수강료와 장비 값만 챙기고 연락을 끊어버리는 일이 허다합니다. 사실 포상금으로 거금을 버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일반인이 신고포상금으로 돈을 벌려면 최소한 6개월 이상 꾸준히 발로 뛰어 노하우가 쌓여야 가능하죠.”

물론 신고포상금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소득이 생기는 건 맞다. S실장처럼 10여년 이상 전문 파파라치로 활동한 ‘꾼’들의 경우는 고수익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저 같은 경우 연봉으로 따지면 웬만한 대기업 사원보다 많이 법니다. 수익만 보자면 선거사범이나 불법의료행위 신고처럼 ‘판이 큰’ 건수를 노리는 게 좋지만 초보자에겐 쉽지 않죠. 저희가 주로 가르치는 건 신고포상제도 가운데 일반인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신고포상제도는 60여 가지가 넘는다. 학원은 이 중 30여 가지 정도를 추려 신고 요령과 증거 수집 방법 등을 수강생에게 가르친다. 교육기간은 사흘. 200쪽에 달하는 전용 ‘교과서’까지 있을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단 사흘 만에 습득하는 게 가능할까.

“물론 힘들죠. 모든 제도의 포상금을 욕심내기보다 본인이 주력할 몇 가지를 추리는 게 좋습니다. 교육기간이 끝나면 저나 대표님이 수강생과 함께 현장실습을 나가는데 이를 통해 담력을 키우는 훈련을 합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단돈 2만원씩이라도 통장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자신감이 생기죠.”


수강생 절반은 나가떨어져

<학력·성별·나이 제한 없음. 누구나 신고포상요원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P업체 공식 홈페이지에 기재된 ‘파파라치 자격 요건’이다. 실제로 기자가 머무는 동안 파파라치가 되고 싶다며 찾아온 사람들은 20대 대학생부터 50대 주부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업체 광고처럼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회사엔 하루 평균 8~10명 정도의 수강생이 몰립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이 중에 절반 정도만 실제로 일을 시작합니다. 파파라치로 데뷔했다 해도 어설프게 뛰어들었다 중간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강료와 장비구입 명목으로 들어가는 초기 투자비용도 부담요소다.

P업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파파라치 양성소는 노하우 전수 뿐 아니라 몰래카메라 등 장비 판매를 통해 적잖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날 S실장이 기자에게 보여 준 것은 10원짜리 동전 크기의 핀홀카메라와 무선 송신장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80~100만원 정도인 이 장비세트를 학원은 120~130만원대에 판다. 여기에 촬영 방법과 동영상 편집 과정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30
~35만원 정도의 추가 교육비를 받는다.

이렇듯 파파라치 학원을 통해 전문 신고요원으로 데뷔(?)하려면 수강료를 비롯해 1인당 200만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파파라치 양성소가 수년 전부터 우후죽순 늘고는 있지만 실제 업계에서 활동하는 전문신고요원은 3000~40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상담만 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반, 장비까지 모두 갖추고도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또 많고.”

S실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파파라치를 꿈꾸는 수강생들은 값비싼 수강료를 부담하며 매일 몰려든다.

‘누구나 쉽게 고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보통사람들에게 이보다 솔깃한 정보는 없다. 파파라치 학원이 사회적 불신주의를 조장한다는 도덕적 질타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파파라치 비법 최초 공개

‘유사휘발유(세녹스)’ 제조 공장 잡으면 700만원 굴러들어와
“안산인근 반경 30km 이내, 화물차 노려 오토바이로 미행”

파파라치 고수에게 듣는 노하우 강의는 일반에 쉽게 공개되지 않는다. 일정 수강료를 받고 전수하는 일종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원칙은 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나 기자는 H대표를 설득한 끝에 어렵사리 강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세 명의 수강생을 상대로 강의를 시작한 H대표는 ‘유사휘발유(세녹스)’ 불법 제조 공장을 잡는 방법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H대표에 따르면 판매상이 아닌 세녹스 제조공장을 잡아야 돈이 된다.

주로 조직폭력배에 의해 운영되는 제조공장은 2~3개월에 한 번씩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특히 최근엔 움직이는 화물차 안에서 제조가 이뤄져 이들을 잡기 위해선 특별한 미행 노하우가 필요하다.


▶ 판매상에게 물건 내려주는 제조차량을 쫓을 것-세녹스 판매상은 안산 시내에 특히 많다. 자정~새벽 4시 사이 물건을 내려주기 위해 제조차량 또는 공장에서 보낸 승합차나 탑차가 온다. 이 차를 따라잡는 것이 관건.

▶ 차량보다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것이 용이-일부 파파라치는 암암리에 위치추적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 판매소 기준으로 반경 30~50km 이내에 반드시 공장이 존재한다.

▶ 공장을 발견하면 위치와 규모를 파악한 뒤 세녹스를 싣고 나오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긴다.

▶ 절대 경찰에는 신고하지 말 것-세녹스 제조에 조직폭력배가 관여하는 경우가 많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은 누락 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담당기관인 석유품질관리원에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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