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인명 중시 않고 ‘장비부터’ 軍 비난

지난 4일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비닐하우스 단지에서 육군 헬기 추락 사고현장을 합동조사반이 조사하고 있다.

공군과 육군에서 차례로 비보가 들렸다. 공군 전투기 2대가 지난 2일 공중충돌로 추락한데 이어 지난 3일에는 육군 헬기가 기체고장으로 농가 비닐하우스 위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두 사고로 조종사들이 모두 아까운 생을 마쳐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공군과 육군은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국방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체의 파손은 그렇다 치더라도 비행 조종사 5명이 사망한 것은 무엇보다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사고 발생 이후 국방부는 긴급 수색과 더불어 다각도로 추락 원인을 분석해 발표했지만 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있다. 아울러 인터넷에는 현역 군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인명보다 장비를 우선시 하는 잘못된 군 인식을 지적하면서 군 당국을 향한 비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F-5 전투기 추락사고와 관련, 비행대대장인 오충현 중령과 어민혁 대위, 최보람 중위 등은 1호기와 2호기가 꼬리를 물고 비행하면서 전투 기술을 습득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훈련 당시 강원도 일대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당시 기상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훈련을 강행한 지휘부에 따가운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전투기 2대의 잔해는 대부분 한 곳에 집중돼 있었다. 이에 조종사들의 ‘비행착각(vertigo)’ 현상에 의해 두 대가 연거푸 동일지점에 추락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말하자면 악천후로 인한 조종사들의 비행착각이 주요 사고원인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공군은 보다 자세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사고 잔해와 블랙박스 등을 정밀 분석 중이다.

또 공군 사고 다음날인 지난 3일 발생한 500MD 헬기 사고는 야간 평가비행 중 발생했다.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소속 박정찬 준위가 비행경력이 상대적으로 짧은 양성운 준위의 부조종사 기량을 평가하기 위해 이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헬기 사고의 원인은 일단 기체 고장으로 잠정결론 난 상태다. 군 당국은 조종사의 음성기록장치 등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규명중이다. 추락한 헬기는 1970년대 초반 국산화 사업의 일환으로 도입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 기종은 노후화로 인해 오래전부터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후 기종으로 악천후에 훈련을 강행한 것이 문제”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조종사 관리 문제 심각

일각에서는 “군 체질을 개선하지 않으면 이번과 같은 사고는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특히 군 출신 전문가들, 현역 군인들 중 상당수는 예견된 인재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군 당국은 추락사고의 원인으로 조종사 실수와 기상악화 등을 꼽고 있지만, 군 출신자들은 군 장비의 노후화와 무리한 훈련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공군도 최근 공군 조종사의 급격한 민항사 유출로 조종사들이 무리한 임무 부담을 호소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군은 “사고 당시 고도 300~2100m 사이에 구름이 많이 있었지만 전투기 훈련은 그 위에서 이뤄져 훈련에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엔진이나 기체 결함 가능성에 대해서도 두 대에서 결함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공군의 분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체 결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 추락한 기종은 모두 30~40년 된 노후 기종이다. 도입된 지 30년이 넘은 F-5 전투기는 지난 2000년 이후 7차례나 사고가 발생해 11명의 조종사가 사망하는 등 사고 단골 기종이기도 하다. 게다가 정비 시 부품부족으로 동종 전투기의 부품을 빼내 쓰는 ‘돌려막기’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500MD 헬기 역시 처음 도입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총 250대가 운용됐으며 2012년까지 80여대, 2015년까지 120여대가 퇴출 대상일 정도로 노후화됐다.


군 개혁 필요 목소리

한편 전투기와 헬기 추락 사고와 더불어 북한군 하전사(부사관) 귀순 과정을 설명하는 군 당국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 2일 오후 6시30분께 강원도 고성군 동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인근으로 귀순한 북한군 하전사의 귀순 사실이 보도되자 군 당국은 다음 날 일제히 보도 경위 추적에 나섰다. 어떤 경로를 통해 귀순했고, 귀순 과정에서 총격전은 없었는지에 대한 언론의 문의는 뒷전으로 하고 오로지 귀순 사실 누설 경위 조사에만 열을 올린 것이다.

국방부와 합참은 “우리도 모른다"고 발뺌하다가 지난 3일 오후 11시가 넘어서야 북한군 수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왔기 때문에 경고사격을 가했다고 뒤늦게 실토했다.

아침에는 보도 경위를 뒷조사하다가 야밤에는 자진해서 실토하는 촌극을 연출한 것이다. 이에 국민의 혈세를 어느 부처보다 물 쓰듯 하는 군이 혈세로 구입한 장비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무조건 비밀로 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윤지환 기자] jhh@dailypot.co.kr


#엇갈리는 사고 원인분석

육군은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500MD 헬기 추락사고와 관련, “사고 당시 기상은 야간비행에 적합한 날씨였다”고 밝혔다.

육군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고 당시 날씨는 시정 3~4마일이고 풍속은 10노트이며 달빛이 있어 야간비행에는 적합한 기상이었다”며 “현재 육군본부 감찰실장을 단장으로 한 17명의 합동조사본부를 편성해 현장으로 투입해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사고 헬기는 부조종사의 야간비행 능력 숙달을 위한 임무를 수행 중이었으며 조종사 모두 야간투시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육군은 강조했다. 노후된 500MD 추락 사고는 1976년 도입 이후 53번째다. 이 때문에 육군은 기체 결함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군도 사고 당시 기상상태는 훈련이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순직한 유족은 사고 원인의 책임이 공군에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은 이날 공군이 지휘소 캠프로 설치한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한양목장 초입에서 기자들에게 “숨진 가족(조종사)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면서 오열했다.

유족은 “지난 2일 사고 소식을 듣고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평창으로 오면서 매우 짙은 안개가 낀 것을 봤다. 가시거리가 불과 1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며 “지상에서조차 안개로 자동차 운전이 위험함을 느꼈는데,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상공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꼬리물기식의 전투기동훈련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족은 "언론 보도를 통해 봤다. 공군에서 사고 당일 기상이 비행 가능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면서 "참사 현장을 가봤더니 비행기가 고스란히 (지상에)박혔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조종사들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가 나니까 아무 생각할 겨를 없이 산에 박혔더라"며 사고 당시 상황을 추론해 전했다.

사고 당시 황병산 상공은 초속 3m/s로 강한 바람이 불었고, 짙은 안개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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