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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봉근 이재만 등 십상시가 인사 문제 개입할 구조 아니다”
검찰 수사 이후 청와대 권력지도 변화 시나리오에 주목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검찰의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수사 방향과 여론의 요구가 서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정치권은 청와대의 향후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검찰은 문건을 유출한 경위와 유출 당사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반면 여론은 문건 유출 경로와는 별도로 문건의 진위여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어 파장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무엇보다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와 청와대 핵심 인사들 간의 파워게임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면서 여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건 유출을 놓고 “누군가 정적을 겨냥해 고의로 문건을 유출한 게 아니냐”는 추측에 힘이 실리는 것도 파워게임 실체가 드러나고 있어서다.

정씨와 문건 유출자로 의심받고 있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따로 검찰에 출두해 각각 다른 진술을 하며 진실공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건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감에 따라 검찰 수사방향에 대한 비난여론이 조성되고 있어서다. 청와대는 문건 유출을 국기문란사건으로 규정해 유출자 색출을 지시했지만 여론은 문건 내용의 진위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 실세로 알려진 정씨를 누가 겨냥했는지를 두고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를 지목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정씨를 축출하려 한 또 다른 비선실세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하다. 비박계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을 둘러싼 이른바 ‘로열패밀리’가 손을 쓴 게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정·관·재계를 두루 아우르는 복잡한 혼맥과 연결돼 있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견해도 많다.

검찰은 세계일보가 지난달 28일 보도한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등 청와대 문건이 여러 경로로 유출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8일 청와대 문건이 대기업 대관업무 직원에게까지 유출된 정황을 잡고 전방위 수사를 펼치고 있다.

검찰은 박관천(48) 경정이 청와대에서 갖고 나온 문건이 유출된 여러 경로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한화 S&C 소속 차장 A씨에게 수개월에 걸쳐 ‘정윤회 문건’ 등이 전달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씨가 국회와 정부 기관 등을 상대로 기업 관련 정보 수집 등 대관 업무를 하면서 평소 친분이 있는 경찰 정보관으로부터 문건을 받았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박 경정이 지난 2월 경찰로 원대 복귀하면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에 잠시 보관한 문건들이 경찰 정보관들에 의해 외부에 유포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또 박 경정이 직접 유출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문건유출 실수 또는 음모

대기업의 일부 대외업무 관계자들은 서울경찰청 또는 경찰청 소속 경찰정보 관계자들과 긴밀히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감안하면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이 경찰관을 거쳐 A씨 외에 복수의 기업 관계자들에게 전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청와대 문건’ 같은 고급 정보는 회사 상부에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다. 제3자에게 건내져 또 다른 경로로 재생산·유통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정씨 관련 문건 외에 언론 등에서 제기한 모든 문건 유출 의혹을 수사할 계획이어서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문건 유출과 관련, 언론 인터뷰를 통해 5〜6월 민정수석실에 보고된 문건에는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유출 범인으로 돼 있으며, 박 경정이 청와대를 나갈 때 자신이 작성한 문건을 복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박 경정은 “억울하다. 누군가가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그의 실체가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라고 심경을 피력해 검찰 수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문건 유출 유력 용의자인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이 혐의를 전면부인하면서 여러 추측과 관측이 무성하다.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귀를 솔깃하게 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정씨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비선실세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귀를 솔깃하게 한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조 전 비서관이나 박 경정이 문건을 유출하지 않았다면 제 3의 인물이 문건 유출을 주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 3의 인물에 대해서는 말들이 분분하다. 청와대 동향에 밝은 한 소식통에 따르면 정씨 외에 또 다른 비선실세가 정씨의 실체를 수면 위로 부상시키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주도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선실세들이란 다름 아닌 박지만씨를 비롯한 박 대통령의 로열패밀리를 가리킨다. 박씨와 정씨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정씨에 의해 박씨의 측근들이 청와대 핵심요직에서 배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들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박 대통령 일가는 정치권을 비롯해 재계 등과 매우 복잡한 혼맥으로 얽혀있다. 이 혼맥은 지금의 정치권력과도 연결돼 있다는 게 정설이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 혼맥의 도움이 상당했다는 것 역시 정치권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 때문에 친박진영은 정치권 인맥과 혼맥에 의한 로열패밀리 인맥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정씨의 독주를 차단하기 위해 로열패밀리가 나선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박 대통령의 혼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8년 통치의 수혜자들과 직접 연결된다. 박 대통령의 당선은 이들이 보은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최근에는 청와대를 움직이는 비선실세로 정씨 외에 또 다른 인물로 박근혜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S씨가 소문을 타고 있다.

S씨는 정씨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말도 들린다. 더불어 청와대 내부에서 조차 알려지지 않은 비선실세이며 그가 박 대통령과 독대하는 시간이 상당하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인사는 특별히 정권핵심인사들과 교류가 없으며 오직 박 대통령과 최측근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인물로 알려졌다.

‘십상시’ 거론 핵심 인사 누구

최근에는 S씨가 외곽에서 핵심인사들에게 정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게 아니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내부 사정이나 정씨의 동향을 상세히 파악하려면 S씨 정도가 아니면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정씨의 김 실장 교체에 대응하기 위해 S씨의 도움을 받아 문건을 작성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 추측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문건의 내용대로 김 실장의 교체를 청와대가 추진했고 그 중심에는 정씨가 있었던 정황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는 올해 초부터 김 실장에 대한 교체를 적극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교체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신 김 실장과 정씨가 권력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 청와대 안팎에서 돌았다.

또 일명 ‘십상시’는 사정기관 정보라인 등 각종 망을 동원해 김 실장 흔들기를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그러나 최근 신뢰할 만한 한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실장을 누군가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이 인물이 십상시를 통해 김 실장 교체를 추진토록 한 정황이 일부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십상시 핵심 3인방으로 꼽히는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등이 인사문제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그는 “십상시는 인사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라며 “이들은 지시를 이행할 뿐이며 이들의 인사개입은 현재 청와대 조직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최근 이른바 십상시라며 안봉근, 이재만, 정호성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실상 이들은 어떠한 결정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지금 청와대의 구조가 그렇다. 이들은 누군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것은 분명하지만 주체는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은 인사문제와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게 이 인사의 설명이다.
인사문제에 핵심적인 결정권을 행사한 인물에 대해 이 소식통은 “현재 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정씨가 일부 인사문제에 개입했다는 말이 청와대 내부에 무성한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그가 실제로 지시를 했다거나 누군가 그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에 따르면 정씨 외에 청와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알려진 실세로 K씨가 꼽힌다. K씨는 박 대통령이라고 규정하기보다 박 대통령 집안과 매우 가까운 인물이다. K씨는 정·관·재계 인물들과 폭넓은 대인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들과 소통은 자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K씨가 이번 문건 유출에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도는 것은 그가 정씨에 대해 최근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K씨는 수개월 전 최측근들만 모인자리에서 정씨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며 “정씨가 행동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K씨의 이 발언은 인사문제 때문에 곳곳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는데 대한 입장표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청와대 주변에서는 십상시 중 안봉근 등 핵심 3인방이 이번 파문의 여파로 일선에서 잠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청와대 내부에서 “검찰수사까지 시작된 상황이고 야권의 추궁이 심각하니 십상시로 거론된 핵심인사들은 일단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권의 한 인사는 “십상시들은 정권창출 이후 줄곧 청와대의 핵심에 서 있던 인물인 만큼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는 것일 뿐 곧 다시 복귀할 것”이라며 “올해 안에 물러났다가 빠르면 내년초에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각에서 박 대통령이 동생인 박지만씨 보다 정씨의 말을 더 신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일과 관련해서도 박지만씨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박씨의 한 주변인사는 “청와대가 박씨보다 정씨를 신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문서 유출 사건에 박씨가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이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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