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관 업무 팀의 세계

한화그룹 직원 청와대 문건 유출 연루로 관심
정보팀·연락관제 운영…기업으로 이직하기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청와대에서 유출된 ‘정윤회 동향’ 문건이 언론 뿐만 아니라 재계로도 흘러갔음이 확인됐다. 검찰에 따르면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올해 초 경찰로 복귀할 때 청와대에서 100여 건의 문건을 들고 나왔다. 이를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 1주일간 보관했고, 정보1분실 소속 최모·한모 경위가 문건을 복사해 외부로 빼돌렸음이 밝혀졌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대기업 계열사인 한화S&C의 직원인 A 차장도 이 문건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사기업의 차장급 직원이 청와대의 ‘극비 문서’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일반인들이 보기엔 상당히 의아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의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A 차장이 실제로는 한화그룹 차원의 대관(對官) 업무팀 소속인 것으로 알려진 때문이다.

규모가 큰 사기업이나 공기업은 대관업무팀 성격의 별도 부서를 운영한다. 관(官)을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는 일종의 기업 내 ‘정보팀’이다. 검찰이 다른 대기업으로도 청와대 문건이 흘러갔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한화그룹의 정보팀이 문건을 확보했으면 다른 기업 정보팀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국회연락관·파견관 명칭

대관업무팀은 기업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 ‘대외협력단’ ‘전략기획실’ 등이 구성된 곳도 있고, 홍보실 등에 정보담당 직원을 배치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서울 여의도 정치권이다. 주로 국회에 상주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국회 연락관’ 또는 ‘국회 파견관’으로도 불린다.

각 기업마다 대관업무팀의 규모는 다르다. 정기국회가 열리는 등 수요가 많을 때는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평상시에는 빼내서 다른 부서로 돌리기도 한다. 국회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대관업무 담당자와 사안이 생길 때 수시로 오가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100명을 훌쩍 넘는다.

특히 삼성·현대·LG 등 대기업은 그룹 차원의 정보팀을 운영하면서 각 계열사 별로 국회에 연락관을 파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회에서의 입법 방향에 따라 기업 활동이 달라지는 업종일수록 정보팀 규모가 크다. 국회와 정당의 경제정책 입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시중은행들도 2명 정도가 조(組)를 짜서 국회를 담당한다.

이들과는 별개로 행정부, 공공기관, 경찰 등에서도 국회 연락관을 둔다. 행정부에선 부처별로 명칭이 다르지만 보통 ‘재정기획관실’ ‘규제개혁법무담당관실’ 같은 부서가 국회업무를 총괄한다.

정부기관의 연락관들은 국회에서의 예산안 심사와 국정감사에 특히 민감하다. 해당 부처의 예산이 어떻게 심사되고 있는지, 삭감되는 부분은 없는지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이 각 부처에 요구하는 국감자료를 미리 파악하는 일도 국회 연락관의 몫이다. 때론 민감한 내용의 자료요구를 준비하는 의원실을 파악해 보좌진에게 기관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빼버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전연락 없이 찾아가는 연락관과 가급적 이들을 만나지 않으려는 보좌진 사이에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이들은 국회에서 제정되는 법안에도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소속기관에 불리한 법안은 미리 막고, 유리한 법안은 빨리 올리는 일’이 이들의 주요 업무다. 이런 일을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선 법안 기초자료를 작성하는 보좌진과 항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평소 접촉이 있어야 관련 상임위별로 어떤 의원실에서 무슨 법안을 준비하는지 체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의 국회 연락관 보다 더 민감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사기업에서 파견되는 대관업무팀 멤버들이다. 사기업은 대부분 국정감사 피감기관이 아니고, 정부예산과 그다지 관련이 없지만 민간기업의 연락관들에게도 국정감사는 매년 진땀을 빼야 하는 통과의례다.

이들이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소속 기업의 오너, 또는 CEO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기업 오너 증인채택 막기도

올해 국감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국회의원들은 국감철이 되면 증인과 참고인을 무차별적으로 부르려고 한다. 일종의 ‘군기잡기’ 차원에서 국감 내용과 별 관련이 없어도 무턱대고 불러놓고 본다. 이 때문에 대기업 회장이나 CEO들이 국회에 나와서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단 몇 분 동안 의원들의 질문을 받거나 아예 한 마디도 못하고 돌아가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단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되면 기업의 이미지가 깎인다는 점이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국회에 불려나가는 자체가 업무상 하자가 있었던 것처럼 비친다. 당장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일부 공기업도 사정이 같지만 특히 사기업 국회 연락관들은 일단 오너나 CEO가 국감 증인으로 신청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업무와 연관성이 없는 상임위라도 불쑥 증인 및 참고인 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300명 국회의원 전원의 움직임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특정 의원실에서 소속 기업의 임원을 증인으로 신청할 낌새가 있으면 국회 연락관들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회사에 보고하면 “무조건 빼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이 때부터 연락관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공략 대상은 보좌관이다. 기업체 연락관이 국회의원을 직접 만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연락관은 보좌관에게 왜 증인신청을 했는지 물어보고, 회사의 입장을 설명한다. 이 역시 평소의 친분이 없으면 접근 자체가 어렵다. 보좌관들이 만남을 피하는 까닭이다. 국정감사가 열릴 때면 연락관과 보좌관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만일 연락관이 ‘보스’를 증인 명단에서 빼내지 못하면 한직으로 좌천이 되거나 심할 경우 옷 벗을 각오까지 해야 한다.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반대로, 증인 및 참고인에서 보스를 제외시키는 데 성공하면 상당한 보상을 받기도 한다. 특히 누가 봐도 증인 채택이 불가피한 기업인을 빼내면 승진 길이 열린다. 실제로 대기업의 국회 연락관이던 B씨는 사회적 물의를 빚은 보스를 증인에서 제외시키는 데 성공한 뒤 특진을 한 사례가 있다.

평소 국회의원 보좌진은 물론이고, 국회 출입기자들과도 수시로 어울렸던 B씨는 정치권에 널리 퍼진 인맥을 총동원해 보스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당시 부장급이던 그는 국정감사가 끝난 뒤 정기인사 때 임원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좌진과 연락관들의 관계는 ‘갑’(甲)과 ‘을’(乙)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국회의원이 지역구 민원 등이 있을 때 공·사기업에 부탁할 일도 생긴다. 하지만 그런 민원은 사소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국감 증인 채택 배제나, 입법 및 예산 조정 같은 큰일은 연락관이 보좌관에게 부탁해야 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연락관들은 보좌진들에게 수시로 밥과 술을 사곤 한다. 과거엔 ‘룸살롱’ 접대 같은 고급 향응 제공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밤 문화는 대부분 사라졌다는 게 국회 주변의 전언이다.

공기업에서 파견돼 대관 업무를 하는 C씨는 “과거보다 법인카드 사용한도가 크게 줄었고, 여의도 정치가 훨씬 투명해졌기 때문에 보좌진을 접대하는 방식도 점차 서민적으로 돼 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D 보좌관은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진이나 기업체 연락관 모두 ‘엘리트’급이다. 서로 업무상 연관을 맺을 뿐이지, 의원회관 밖에서 따로 만나는 일도 드물다”고 말했다.

여의도 증권가 정보 수집

국회 연락관들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일상 업무가 있다. 정기적으로 회사에 올려야 하는 ‘정보 보고’다. 국회와 정당, 나아가 여의도 증권가를 다니며 정보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소속 회사와 관련된 정보는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한화그룹 A 차장의 사례처럼 사회적으로 이슈가 돼 있는 사안, 보스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일을 찾아 내 보고한다.

최근 들어 국회의원 보좌관(4급)이나 비서관(5급)이 공기업이나 사기업의 대관업무 팀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자리를 옮겨 ‘친정’ 주변에 근무하면서 친정으로부터 업무협조를 받아내는 일을 하는 셈이다.

국회 보좌진은 신분이 불안하다. 임명권자인 국회의원의 말 한 마디에 자리가 날아가기 일쑤다. 반면, 기업체로 옮기면 일단 신분이 보장된다. 보수도 많다. 근무환경 역시 개선된다. 국회에선 자료 준비 등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지만 기업체 대관업무는 일과시간만 일한다. 갑-을 관계가 뒤 바뀌는 일쯤은 감수해야 한다.
기업체 입장에서도 국회 사정을 잘 아는 대관업무 담당자가 절대 필요하다. 그들은 국회에 인맥이 넓은 만큼 정보를 캐내거나 국감자료를 미리 챙기고, 심지어 오너나 CEO를 국감 증인에서 빼내는 작업에서도 유리하다.

2012년 6월 19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올해까지 공기업이나 사기업의 정보팀, 국회 연락관으로 자리를 옮긴 전직 보좌관만 2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모 의원실에서는 보좌진 3명이 몽땅 특정 그룹으로 이직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관피아’(관료+마피아)에 빗대 ‘국피아’(국회+마피아)가 양산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사기업과 입법부가 유착하는 통로로 이들이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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