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복지와 저변확대로 출범한 시도민구단…자립실패로 뜨거운 감자

강등으로 격화된 시도민구단 문제…구단주 격한 행보에 빌미 제공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14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2월이지만 한국 축구는 근간인 K리그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며 가뿐 숨을 쉬고 있다. 더욱이 시즌을 마무리하며 1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시도민구단들이 정치인구단주의 습격을 받으며 정치쇼의 일환으로 전락해 버리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축구계 스스로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도를 만들면서 몰락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와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열기를 이어가고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 도입된 시도민구단들이 10여년 만에 1, 2부 승강제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다.

출범 이후 꾸준히 중위권 성적을 내던 경남 FC는 지난 6일 끝난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에서 광주FC에게 패하면서 2부 리그 강등을 확정지었다.

이에 경남FC의 구단주인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팀의 존폐까지 거론하며 논란을 격화시켰다.

홍 지사는 지난 8일 경남도청 회의실에서 가진 간부회의에서 “지난 2년간 그렇게 많은 예산을 확보해 주면서 단 한 번도 간섭하지 않았는데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며 “특별감사 후 팀 해체를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홍 지사의 불호령에 지난 9일 안종복 경남FC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감독 등 코칭 스태프까지 모두 26명이 사표를 제출했고 같은 날 열린 신인 드래프트마저 포기하면서 경남 FC의 운용은 사실상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홍 지사의 강공발언에 지역 축구계는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또 축구계 전체가 정치인 구단주 한마디에 흔들린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경남축구협회 등은 ‘해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고 주주와 서포터들은 “잘 돌아가던 팀이 2년 만에 몰락하게 된 건 홍 지사의 인사 실패와 방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부 강등에
존폐위기 내몰려

반면 12월의 드라마를 쓴 광주FC는 올해 K리그 챌린지에서 4위로 간신히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후 3위 강원FC, 2위 안산 경찰청을 차례로 물리치며 승강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이변을 낳았다. 결국 경남FC의 대결에서 승격을 확정지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승격을 하자마자 광주FC는 광주광역시로부터 2부 리그 때와 같은 25억 원 이상 지원하기 힘들다는 통보를 받았다.

또 상반기 홈 경기장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위한 리모델링과 대회준비를 위해 사용여부가 불투명해져 광주FC 역시 경남FC와 사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최근 시도민구단의 논란은 성남FC 구단주인 이재명 성남시장이 불을 지폈다.

이 시장은 자신의 SNS에 오심 판정에 대한 불만과 강등 시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포기 등을 언급하며 프로연맹과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 프로축구연맹은 상벌위원회를 소집했고 이 시장에 대해 명백히 근거 없고 경솔한 발언으로 축구계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경고’라는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이 시장은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서 살짝 발을 빼는가 하면 기자회견과 SNS를 통해 축구계라는 강자에게 핍박받는 약자로 포장하는 등 여론몰이로 주도권을 쥐면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연맹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매우 약한 징계를 내려 사실상 면죄주를 준 셈이 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시장의 논란과 갈등에는 정작 성남FC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이 시장은 기초단체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겼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마치 학습이라도 한 듯이 홍 지사의 행보는 더 과감해졌다. 해체를 거론하며 구단주로서는 담지 말아야 할 말을 입에 담은 것이다.

이처럼 올해 유독 심한 독감을 앓고 있는 시도민구단들은 어느덧 구단주인 단체장들의 정치쇼의 일부로 전락하면서 축구팬들과 시도민들에게 적잖은 상처를 남겼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더욱이 최근 불거진 성남FC의 구단주인 이 시장이나 경남 FC의 사례는 정도의 차이 일 뿐 다른 시도민구단들도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시도민구단은 태생적으로 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선거에 당선되는 순간 시도민구단의 당연직 구단주가 되기 때문이다.

구단주 정치쇼
노리개 전락

물론 정치적으로 역량이 큰 단체장은 스폰서 영입 등에서 빛을 발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정치와 축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축구는 종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시도민구단의 근본적인 문제인 인사와 재정을 살펴보면 정치인 구단주의 전횡은 더욱 극명해진다.

대전시티즌은 올해 1부 승격과 함께 투명성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시민군단 운영 시스템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구단주인 권선택 대전광역시장은 염홍철 전 시장의 사람으로 분류되는 김세환 대표에 대해 재신임 여부를 내놓지 않고 있어 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을 빛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사장의 임기가 2016년 8월까지임에도 불구하고 사장 교체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실제 대전시티즌은 창단 후 약 18년간 대표가 무려 12번이나 교체될 정도였다.

또 돈 문제를 놓고서는 모든 시도민구단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2005년 창단 2년여 만에 준우승을 거뒀던 인천유나이티드는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한 건설회사로부터 5억 원을 빌려 임금을 지급할 정도에 이르렀다. 여기에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인천광역시가 2016년부터는 지원을 아예 끊겠다는 방침을 알리면서 존폐를 논해야 할 처지가 됐다.

지난해 창단한 FC안양도 두 시즌 만에 재정난에 봉착해 선수단과 사무국 직원의 임금이 수시로 체불될 정도다.

앞서 구단의 방만한 운영을 지적하면서 해체를 언급한 홍 지사에게 축구계가 반박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경남FC는 예산으로 끌어온 130억 원 중 도 예산 20억 원과 대우조선해양의 메인스폰서 비용 40억 원 등 거의 모든 금액이 세금 혹은 준조세 성격의 기업 후원금이 차지하고 있다.

결국 시도민구단이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면서 이를 유지해야 하는 지자체장에게는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또 구단 스스로 벌지 않은 돈이기에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는 점도 지자체 살림이 팍팍해진 상황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때문에 시도민구단의 살림을 점검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질적 저하로
축구스스로 몰락


하지만 시도민구단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 구단주들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도민구단은 대부분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만들었고 구단은 이를 대행할 뿐이다.

더욱이 시도민구단의 탄생 근거가 성적보다는 시도민의 여가 선용, 사회공헌 등 복지 차원이었다는 점에서 특정 지자체장의 홍보물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축구팬들과 축구계의 원성을 사고 있다.

더욱이 성남FC의 이 시장 사태처럼 K리그에 참가 중인 22팀의 의견을 종합해 조직활동을 정한 근본규칙인 프로연맹 규정을 뒤흔드는 행위에 대해서도 축구연맹의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게 축구계의 반응이다.

이는 회원사가 연맹의 잘못을 지적할 권리가 있지만 이미 정해진 약속을 준수할 의무도 있다는 점에서 프로축구의 악습을 끊겠다며 투쟁을 선언한 이 시장이 불복이라는 스스로의 악습을 개척하고 있고 처음 의도와 다르게 흐르면서 이 시장의 의도 역시 의심 받고 있다.

또 예산을 핑계로 지원이 줄어들 경우 시도민구단은 다음 시즌 더욱 혹독한 추위를 경험해야 할지 모른다.

올해 1부 리그 진출을 확정한 대전시티즌이나 광주FC도 열악한 환경으로 다음 시즌에 온전히 1부 리그에 남아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점이다.

이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축구가 정치의 습격을 받은 데는 축구계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며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프로 축구의 질적 저하는 대다수 기업구단을 위축시키고 있고 모 기업의 투자 매력을 떨어트리면서 한국 축구의 체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또 올 시즌 흥행실패처럼 축구팬들의 관심도 급격히 줄어든 점은 아쉬운 현실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건강하고 재미있는 축구로의 변신만이 한국 축구가 질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최근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진 올리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 경기를 관전하면서 크게 당황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축구를 보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있다”며 “리그의 관중도 부족하다. 스코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축구가 한국에서 펼쳐졌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낸 바 있다.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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