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재차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게 찌라시(사설 정보지)다. 박근혜 대통령마저 사건이 터지자마자 “찌라시 수준의 얘기”라고 폄하하면서 더욱더 주목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은 찌라시를 반출한 박관천 경위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체포하면서 논란에 불을 댕겼다. 찌라시가 ‘시중의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적은 문건’에 불과함에도 대통령기록물로 취급하면서 오히려 문건 내용의 신빙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특히 ‘정윤회 문건 = 찌라시’ 파문은 기존의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게 청와대 내에서 작성되고 유포되는 과정을 겪었다는 점에서 권력 암투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찌라시 위험성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검찰에서는 ‘찌라시와의 전쟁’을 선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진화된 찌라시의 세상을 알아봤다.

- ‘정윤회 문건 = 찌라시’ 이전투구와 진실 사이
- 정관계·검경·국정원·국세청·기자에 기업까지


‘정윤회 문건’을 작성해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관천 경정은 청와대 공직기강실 직원이었다. 또한 이를 복사한 사람은 서울경찰청 정보국 소속 한 경위이고 최 경위는 같은 정보국 소속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다가 자살을 했다. ‘정윤회 문건’을 조사중인 검찰은 박 경정에 대해서 반출관련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에 숨겨둔 행위는 공용서류 은닉에 해당한다고 영장을 발부했다. 반면 한 경위에 대해서는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적용하고 있다.

靑 문건 ‘대통령 기록물’?

하지만 근본적으로 박 경정과 한 경위를 처벌할 수 있는 기본 잣대는 유출된 ‘정윤회 문건’이 찌라시 수준이냐 아니면 공식문건이냐는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판부가 한 경위와 자살한 최경위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를 기각한 배경 역시 공공기록물인지 시중에 도는 풍문을 적은 찌라시인지 정확이 모르는 상황에서 단순히 유포했다는 것만으로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경정이 문건을 작성해 당시 조응천 민정비서관을 거쳐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찌라시가 아닌 대통령기록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문건에 ‘일련번호’나 ‘결재 라인’이 적시돼 있어야 하고 청와대 내부의 문서관리시스템에 등록돼 전자적으로 생산, 관리돼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지정해야 대통령기록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윤회 문건’이 이런 과정을 거쳤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이 ‘찌라시’라고 언급했고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 역시 ‘문건이 청와대 공식 절차와 결재를 받은 문건’이라는 점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공식 문건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결국 이번 문건이 찌라시 수준 즉 ‘시중에 나도는 풍문’을 듣고 작성해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채 ‘이간질’용으로 활용한 문건이었다면 대통령기록물이나 공공기록물로 보기가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로 규정했는데 검찰은 문건 유출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대통령기록물’로 봤다는 점에서 충돌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최경위와 한경위 그리고 보고받은 조 전 비서관부터 김기춘 실장까지 모두 ‘찌라시를 보고 받은 격’이고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문건의 신빙성이 높고 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로부터 ‘허위보고’를 받은 셈이 된다.

이 지점에서 기존의 찌라시 시장과는 달리 ‘정윤회 문건’으로 나타난 신종 찌라시의 등장은 차원을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상 정치권에서 나오는 찌라시의 생성과 유포에는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 등 사정기관에다 국회 관계자, 기자, 기업에 종사하는 대관업무종사자 등이 핵심 인력이다.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많은 인력과 정보를 갖고 있는 경찰 조직이다.

경찰 정보·인력 ‘월등’

경찰 인력만 13만 명에 육박하고 정보관계자도 3000명이 훌쩍 넘는다. 주로 경찰청 정보국은 한남동 정보분실이 주축이고 서울 경찰청에서 운영하는 곳은 이번에 문건이 유출돼 압수수색 당한 남산 정보분실이다. 그리고 일선 경찰서 정보과가 있어 지역의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방청→본청으로 보고되고 이중에서 정권과 관련된 핵심 정보는 청와대에도 보고된다.

이에 반해 검찰과 국정원은 인력면에서나 정보면에서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검찰은 통상 대검 범죄정보과가 정보 업무를 담당하고 범정 1, 2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범정 1과는 순수한 범죄 정보를 주로 취급하는데 경찰청 범죄정보과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반면 범정 2과 풍문과 여론 동향을 맡는데 경찰 정보보다는 팩트에 충실해 정확성이 높다고 정평이 나 있다. 검찰 범정과 직원들은 국회나 정부 부처 그리고 기업 등 출입처가 따로 없어 국회 보좌진, 기업 고위 관계자, 기자 등 개인 인맥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지만 청와대에 보고를 올리지 않는다.

국세청은 사정기관 중 인력면이나 정보면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 ‘정윤회 문건’ 작성 관련 기초 정보를 준 사람이 국세청 출신 전 지방청장이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 통상 국세청은 세원정보과 직원을 통해 풍문을 수집하고 보고하는데 주로 기업 탈세나 청와대, 정부부처 동향, 국세청 관련 정보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정보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국정원과 기무사가 대표적인데 조직 특성상 활동 영역에 제한이 심한 편이고 특히 국정원의 경우 2012년 대선 선거개입 사건으로 최근 정보 수집 활동이 급속히 위축된 상황이다.

시중에 떠도는 유료 사설 정보지나 찌라시의 경우 위에 언급된 전현직 인사들이 참여해 작성하고 기업이나 정치권에 필요한 인사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한다. 이런 정보지는 공식적인 문건이기보다는 ‘풍문’이라 사실 확인이 반드시 필요한 사안들이므로 기자들이 찌라시를 바로 기사화하지 못한 반면 국가기관중에서 경찰과 ‘민간인 불법사찰’로 파문을 일으킨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공직윤리지원관실 후신), 국정원에서 생산한 고급정보는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보고된다. 이 3개 조직은 인사철에 청와대 하명을 받아 인사검증까지 맡아서 한다는 점에서 핵심 조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정윤회 문건’ 파문이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를 받는 민정수석실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기존 국가기관 전현직 정보원들이 작성하는 ‘찌라시’와는 차원이 다르다. 민정수석실은 민정비서관과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나뉘어지는데 전자는 주로 대통령 친인척 비리, 고위공직자 비리 등을 맡고 후자는 인사검증을 맡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 지방국세청장의 발언으로부터 시작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이 관련된 ‘정윤회 문건’의 경우 단순히 찌라시로 보기에 무리라는 시각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찌라시 전쟁” 선포 임박

한편 청와대와 검찰은 이번 ‘정윤회 문건’ 파문을 겪으면서 ‘찌라시와 전쟁’을 선포하겠다는 계획이다. 벌써부터 검찰 일각에서는 SNS뿐만 아니라 이메일을 통해 찌라시를 제작 유포하는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전 조사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문이 서초동으로부터 그럴듯하게 나오고 있다. 청와대 문건 파문이 다음 타깃으로 ‘찌라시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셈이다.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