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파문’ 검찰 수사 ‘용두사미’ 비난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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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새누리당 동반추락 발 동동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와 검찰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은 문건을 왜 만들었고, 유출·유포한 동기는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결국 문건 내용의 진위여부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아 “전형적인 ‘용두사미’ 수사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 1일 수사를 개시한 뒤 보름 넘게 이른바 '정윤회 문건' 내용의 진위를 따지는 한편 청와대에서 빼돌린 다량의 문건들이 어떻게 옮겨졌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정씨와 청와대 비서진의 비밀회동 의혹을 골자로 한 '정윤회 문건'은 사실무근으로 결론 내렸다. 박지만 EG 회장 미행설을 담은 문건 역시 최근 조사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으로 판단했다. 야권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 때문에 애초 사건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이번 수사에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고 입맛에 맞는 결론을 내렸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론의 눈길도 곱지 않다. 문건 내용과 관련해 청와대가 진실을 숨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이는 최근 박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 현상을 통해 확인된다. 이에 여권 내부에서 박 대통령이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을 조속히 내놓지 않을 경우 청와대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까지 동반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 밖으로 반출,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에 몰래 보관하던 것을 정보1분실 소속 한모 경위가 빼낸 뒤 복사했고 최모 경위가 언론사 등에 유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범행 동기'의 규명은 아직까지 난제다. 문건을 반출한 박 경정과 이를 복사한 한 경위, 외부에 유포한 최 경위는 모두 경찰 정보분야에 몸담은 공무원이다. 이들이 민감한 내용이 담긴 중요 문건을 특별한 조심도 없이 유포했다는 것은 바로 납득하기 힘들다. 문건 유포에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이 부담을 떠안은 채 위법 소지가 있는 일을 단행한 이유가 지금으로선 불분명하다.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여론이 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범행동기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들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서둘러 결론내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상한 사건 이상한 수사

박 경정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감찰·동향 정보를 다뤘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업무의 일환으로 문건을 작성했다고 검찰에 진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상급자였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박 경정의 문건 작성 및 반출에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수사의 마무리 단계에서 과제로 남아 있다. 이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 등 7인회가 문건의 작성·유출을 주도했다는 청와대 특별감찰 결과의 연장선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건을 반출한 박 경정은 외부 유포에는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고 7인회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검찰은 결론 내렸다. 다만 조 전 비서관의 사건 관여도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모 경위와 문서를 빼돌려 복사한 혐의를 받는 한 경위에 올가미를 씌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 전 비선관은 사건초기 자신의 무죄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또 스스로 “내가 전직 검사였는데, 이런 사건에 대해 왜 없는 말을 지어내겠나. 검찰 수사에서 모든 진실이 규명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언론사 등에 문건을 건넨 것으로 지목된 최 경위가 왜 그랬는지를 규명하는 것도 검찰의 몫이다. 상부의 지시나 교감이 있었는지, 경찰 조직 내 다른 인사들 중 관련 사실을 알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면 묵인했는지 등도 함께 밝혀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검찰이 지난 17일 ‘박지만 미행설’ 또한 박 경정이 작성한 ‘동향 문서’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밝히면서 ‘정윤회 문건’에 이어 실체가 의심되는 문건들이 박 경정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경찰 내부와 청와대 주변에서는 정보분야에 근무하는 박 경정의 입장에서 ‘동향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대체 무슨 문제냐는 의문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동향보고는 말 그대로 시중의 동향을 보고하는 것으로 사실위주의 정보가 아닌 사실일 가능성이 있는 첩보 성격의 보고서다. 따라서 동향보고서는 애초 사실성이 담보되지 않기 때문에 작성자가 진위여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에게서 제출받은 ‘미행설 문건’이 형식을 보면 정식 공문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성이 떨어지는 동향보고서이기 때문에 정식 공문서가 아닌 형태인 것이다.

3-4쪽으로 구성된 이 문건은 박 회장을 미행한 인물과 미행 사실을 전파한 사람의 이름이 실명으로 적시되는 등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지만, 형식이 통상의 공문서와 다른 점을 볼 때 보고와 결재 과정을 거친 공식 보고서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박 경정 자신이 작성한 문건을 유포하지 않은 이상 사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신뢰 잃은 청와대
향후 행보는?

박 대통령 주변 권력 암투 의혹의 불씨가 된 ‘정윤회 문건’을 박 경정이 작성한 것은 올 1월 6일이었다. 지난 11월 28일 세계일보를 통해 문건 속의 내용이 보도되자 일부에서 “터질 것이 터졌다”는 말이 무성했다. 청와대 내부가 권력다툼으로 곪을 대로 곪아 고름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청와대가 1월 이미 문건의 존재와 내용을 파악했고, 4~6월엔 민감한 문건들이 유출된 사실을 파악하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와대가 의혹의 불씨를 조기에 규명하지 않은 채 묵살해온 결과가 지금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문건을 내부문건이라고 인정했는데도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문건은 찌라시’라고 성급하게 단정한 것을 두고 “대통령이 다급하게 자충수를 뒀다”는 말이 무성하다. 이 때문에 여론의 불신이 증폭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윤회씨가 이른바 ‘청와대 십상시’와 밀착해 국정을 농단한다는 동향 정보가 담긴 문건의 내용을 1월 보고 받았다. 하지만 김 실장은 별다른 조치 없이 사실상 묵살했다. “허무맹랑한 얘기에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김 실장이 이때 이미 “정윤회가 짜놓은 권력구도에서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였을 것”이란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김 실장의 성격상 ‘단순한 찌라시 내용’이라고 무시했을 수도 있지만 사실확인을 하지 않을 리 없다. 만약 김 실장이 이를 무시했다면 그것은 무시가 아니라 가만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실장은 올 초부터 끊임없이 교체설에 시달리며 여야로부터 공세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김 실장의 역량에 한계가 있어 청와대가 비서실장을 물색 중이라는 말도 무성했다. 청와대를 정윤회씨가 쥐락펴락했다면 위기에 놓인 김 실장으로서는 사태를 그저 관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검찰 수사에서 해당 문건은 박 경정이 미확인 항설들을 취합한 수준인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그러나 문건에 담긴 내용 자체가 극도로 민감한 사안이란 점에서 당시 청와대의 보고서 묵살은 쉽게 이해가지 않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청와대에 권력암투가 없다면 적어도 사실여부에 대한 확인을 하거나 이상이 확인될 경우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문건에 대한 묵살은 결과적으로 권력암투에 대한 묵살인 셈이 돼 버렸다.

이에 청와대 주변에선 당시 최소한의 사실 확인 등을 거쳐 해당 문건의 사후 조치 보고서를 남겼다면 혼란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가 적지 않다.

문건 유출 국면에서도 청와대의 대응은 부실투성이었다. 정호성 1부속비서관은 외부로 유출된 128쪽짜리 청와대 문건 사본을 오창유 전 행정관으로부터 6월 초쯤 전달 받았다. 청와대 문건 대량 유출이라는 초유의 사태였을 뿐만 아니라 문건 내용도 박지만 회장과 부인 서향희씨 등에 대한 민감한 것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대대적 조사를 통해 유출 주체와 경위 등을 밝히는 대신 조용히 사건을 덮었다.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민감한 사안을 담은 문건이 내부에서 생산된 데 이어 외부로 유출까지 됐는데도 안이한 대응이 이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강경하게 나오다 보니 인적 쇄신과 청와대 인사시스템 개혁 등 이번 사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 논의될 공간이 없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는 사태 초기부터 사실상 조 전 비서관을 문건 작성과 유출의 배후로 지목해 주변을 압박했다.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선 조 전 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7인 모임'이 문건 유출을 주도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검찰이 7인 모임은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는 등 실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공세는 무위로 돌아가고 청와대의 도덕성도 상처를 입게 됐다.

이번 사건으로 청와대는 뒤숭숭한 분위기일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모두 사실무근이기 때문에 특별한 동요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주변에서는 청와대가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어 문건 유출 사건에 대한 후속 대응도 제대로 못할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오히려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청와대가 국민적 실망감을 크게 안겼기 때문에 신뢰회복을 위한 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 파문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인적쇄신론이 분출하고 있다. 여야는 검찰 수사가 종점을 향해 가고 있는 가운데 사건 수사 종료 이후 박 대통령의 선택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겨우 수습한 시점에 터진 문건유출 파문으로 국정수행 지지도가 집권 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며 핵심지지층마저 이탈조짐을 보이고 있어 여권의 불안감은 크다. 이에 청와대가 국면 반전과 집권 3년차 국정과제 추진 및 분위기 일신을 위한 획기적인 돌파구 마련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나 일부 언론의 조만간 총리와 비서실장 교체를 포함한 인적쇄신 단행보도에 대해 "그런 움직임을 알고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청와대의 공식입장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집권 3년차에 즈음해 인적쇄신을 중심으로 국정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쇄신을 단행할 수밖에 없으며 실제 물밑에서 적잖은 준비가 진행돼왔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문서유출 사건에서 탈피해 공무원연금개혁과 경제혁신, 일자리창출 등 어젠다에 국정의 에너지가 집중돼야 한다”며 3년차를 맞아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에 청와대가 문건 유출 파문 이전부터 이미 적지않은 후보군의 인사검증을 마치고 인적쇄신의 폭과 시기를 저울질해왔다는 여권 인사들의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일단 인적쇄신이 단행된다면 정홍원 국무총리의 교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정경험 등이 풍부한 여권의 중진 정치인이나 박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한 중도적 인사, 젊은 비정치인의 파격적 기용 등 여의도에서는 후임 총리 하마평도 벌써 무성하다. 여기에 지난 6월 개각 당시 유임됐던 일부 경제부처 장관이나 수차례 사의를 표명해온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까지 중폭 수준의 개각이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청와대 문건 유출의 책임론이 불거진 김 실장이 정치권 일각의 인적쇄신 요구를 피해갈지 여부도 주목된다. 김 실장이 거취에 따라 일부 수석비서관의 교체도 뒤따를 전망이다.

특히 문건 유출 파문에 깊게 휘말렸던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야권의 낙마공세를 받는 '비서 3인방'이 자리를 지킬지도 관심이다.

인적쇄신 시 그 시기는 내년 1월12일 정부 업무보고 이전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2월로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적임자 물색이나 인사검증 등 작업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연내 전격적인 인적쇄신이 단행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다만 획기적인 인적쇄신의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일부 각료나 비서진의 부분교체로 3년차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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