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기자] 촉망받는 일본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마에다 로의 대표작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쳐>2015131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쳐는 일본에서 신선한 상상력을 펼쳤던 공연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지어졌다. 이미 세상에 대해 반항도 순응도 하지 않는 인생의 남자’, 그런 남자의 옛 연인이자, 그러한 남자와 얽혀버린 여자’, 남자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지만 현실 속에 걸쳐있는 친구 다나베’, 그리고 남자의 기억과 과거 속에 머물러있는 남자의 여동생등이 극을 진행한다.
 
이번 연극의 줄거리를 먼저 파악하고 관람하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 밖에 모르는 서른 살 백수(남자)가 주인공임을 알게 된 순간 현실도피, 책임 없는 낙천성, 사회적 인간들과의 대립 등이 연상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예상되는 전개다. 하지만 소설가의 재능까지 갖춘 극작가 마에다 로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본에 소설적 틀을 넣었다. 코미디 특유의 위트 위에 암시와 상징을 가미했다. 아웃사이더 성격의 유머, 관객을 위한 웃음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극 분위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단순한 표면을 단순하지 않게 다듬은 대사의 매력 덕분이다. 이 같은 특징은 극 말미의 눈물에서도 드러난다. 페이소스를 잘 표현한 장면이다. 관객 또한 그()가 흘리는 눈물을 당장의 서러움, 한 사람의 이유 때문만으로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은 등장인물 각각의 내면을 빌려, 갈등과 대화 사이마다 잠깐의 기다림을 집어넣었다. 이 기다림은 몇 번의 암전에서, 하릴없는 수다 또는 푸념에서, 사회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주인공의 정신세계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쳐에서 엿볼 수 있는 리듬으로 순간순간 아주 짧게 멈춰서는 듯한 리듬이다. 극중 등장하는 백수(주인공), 프리터족(다나베)은 게임 따위의 비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때조차도 직설적이거나 효율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면서 갖가지 사족을 붙인다. 넘치는 시간을 이렇게나마 할애하려는 듯한 무의식적인 노력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들의 시간적 몰입은 게임 속 용사가 떠난 동굴에서와 현실에서 다르게 흘러간다. 두 인물의 비전투적이고 평화로운 생활태도, 조곤조곤하고 낮게 떠도는 말투와 목소리 톤은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여성 인물들(결국 극 전체)에 영향을 끼쳐 모두를 허덕이게 한다. 그리고 두 인물이 원하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회의감을 품도록 만든다. ‘자뻑에 취해 사는 루저 코미디물이 살짝 연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쳐는 정적인 동작이 많고 장소와 화제가 자주 바뀌지 않는다. 주인공은 80(공연시간) 동안 게임에 맹신과 헌신을 바치면서 그토록 도망쳤던 현실적 결말을 서서히 대면할 준비를 한다. 뒤늦은 자책으로 괴로워한 나머지 섣부르게 저지르는 희생과 배려심이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현실감이 주인공 스스로, 적극적인 내면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행동을 지켜본 관객들에게나 전달되는 기운이다. 외부의 지속적인 비난과 동정에 견고했던 백수 고집이 굴복한 것은 아닐까. 작가는 의욕적인 사회진출이나 앞으로의 희망을 담아 막을 내리기보다는 닫힌 벽 너머의 풍경 같은 불확실성과 삶의 끝없는 반복을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그레이트 인생 어드벤쳐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현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전반에도 넓게 퍼져있는 무기력과 탈진, 그리고 의미 없는 낙관을 표현해 공감을 끌어올리려 했다. 20142월 명동예술극장에서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으로 선정되어 평단의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정식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출은 연극 데스트랩으로 주목받았던 김지호 연출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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