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舊 정권 대충돌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누리당이 흔들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3년차를 뒷받침해야 할 집권여당이 집안싸움에 휘말려들면서 자중지란의 위기를 맞았다. 근본적인 원인은 당내에 뿌리 깊게 박힌 ‘친박계’(친 박근혜 대통령 계열)와 ‘비박계’ 사이의 알력이다. 박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계파갈등이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두 갈래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 시절 역점사업이었던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둘러싼 신-구 정권의 대충돌이다. 다른 하나는 한때 친박계 좌장이었다가 박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린 김무성 대표의 ‘독자노선’ 재시동에 따른 친박계-비박계 힘겨루기다.

자원외교 국정조사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갈등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는 국정조사 요구서를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는 내년 1월12일 본회의에서 각각 의결하기로 했다. 특위 위원은 18명(여야 9명씩)이다.

야당과 ‘빅딜’한 배경 뭘까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현 여당이 자원외교 국정조사와 공무원연금개혁을 놓고 야당과 ‘빅딜’을 한 배경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본다. ‘정윤회 문건’ 파문으로 수세에 몰린 여권이 국면전환을 위해 전임 정권을 끌어들였다는 불만이다.

연말을 맞아 친이계(친 이명박 전 대통령 계열)는 잇달아 모임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친이계 전·현직 의원, 청와대 참모 출신 20여 명과 송년 만찬 모임을 가졌다. 이와 별도로 새누리당에 남아 있는 현직 의원들도 잇달아 회동을 갖고 친박계가 주도한 자원외교 국정조사 수용의 배경을 살피며 대책을 숙의 중이다.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과 이군현 사무총장, 강석호 의원 안경률·진수희·김효재 전 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등이 송년 모임을 갖기도 했다,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친이계 재결집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노골적인 반발도 나온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최근 최고위원 회의에서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특정 정부에 대한 흠집내기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주기용이 돼선 안 된다”고 쐐기를 박기도 했다.

친이계의 조직적 저항 조짐에 대해 친박계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자원외교 국정조사는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게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까지를 포함해 과거 정권의 부실한 자원투자를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이계의 시각은 다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A씨는 필자에게 “친박계 안에 전임 정권을 넘고 가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세력이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 우리 때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을 폄훼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참았다. 하지만 우리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못 참겠다 싶을 정도가 되면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다음은 A씨와의 문답이다.

▲ 여당이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수용한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나.
“그렇게 단정하지는 않겠다. 국정조사로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을 덮겠다는 차원보다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여당 지도부가 그런 빅딜을 했다고 일단은 생각한다. 다만 이런 합의는 자칫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

▲ 자원외교와 공무원연금개혁은 전혀 다른 사안 아닌가.
“물론이다. 그렇게 하는 자체가 맞지 않다. 여당 지도부가 야당전략에 말려들었다. 대통령의 압박이 있으니까 궁여지책으로 합의한 것같은데, 빅딜을 해서 정치적으로 바꿔먹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진영에선 국정조사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당당하게 대응하겠다. 필요하면 누구라도 국정조사에 나가서 말할 수 있을 거다. 이명박 전 대통령께서도 그렇고. 이상득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정조사장에 직접 나갈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당당하니까…다만 당당한 대응이란 원칙과 이 전 대통령 직접 출석이 현실화 될 지는 별개의 문제다.”
청와대에서 이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측근들은 수시로 모여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대목은 자원외교의 필요성, 정당성이다. 기본적으로 자원외교는 10년, 20년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아직 2, 3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과 여부를 따지는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논리를 개발 중이다.
또 자원외교 국정조사가 시작되면 ‘달러박스’를 걷어차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주장도 내놓을 계획이다. 당장 새해의 자원개발 예산이 반 토막났고, 국정조사로 인해서 새해에 투자위축이 가속화 될 것이란 보도를 인용할 예정이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 때 자체자원 개발율이 7~8%였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엔 이를 13%까지 끌어 올렸다는 성과도 제시하기로 내부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박세일, 대통령에게 찍힌 사연

새누리당 안에서의 신-구 정권 대충돌은 내재적이다. 아직은 폭발하지 않았다. 친이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단계다. 반면, 친박-비박 힘겨루기는 충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박계를 이끌고 있는 김무성 대표의 ‘도발’ 때문이다.

도발의 도화선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이다. 박 이사장을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에 임명해 친박계를 견제하려는 김 대표의 야심이 친박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친박계를 대표하는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직 인선 안건이 올라오자 즉각 “(김 대표가) 독단적인 인사를 하고 있다. 의원들의 우려가 크다”고 발끈했다. 여의도연구원장 뿐 아니라 권오을 인재영입위원장, 안경률 국책자문위 부위원장 등 김 대표 측근들을 끌어들이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그래도 김 대표가 인선안을 밀어붙이려 하자 서 최고위원은 서류까지 집어던지며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퇴장해 버렸다. 박 이사장이 어떤 사람이기에 친박계가 비토를 했을까.

박 이사장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았을 때 당시 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영입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3월 박근혜 대표가 지지한 행정중심복합도시법 원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수도 분할은 안 된다”며 국회의원직과 정책위의장직을 던지고 탈당했다. 또 2012년 총선 때는 보수성향 정당인 ‘국민생각’을 만들어 당시 박근혜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던 전여옥 전 의원을 영입하기도 했다. 그 때 박 이사장은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대표를 끌어들이려고도 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의 등을 찍은 사람인 셈이다. 더구나 김 대표가 박 이사장에게 맡기려고 하는 여의도연구원장은 당의 핵심 보직이다. 여의도연구원은 평시엔 정책 연구기구다. 하지만 선거가 다가오면 공천과정에 개입한다. 지역구별 여론조사를 실시해 공천 신청자를 솎아내는 친박계의 시각으론 김 대표가 2016년 총선 때 ‘공천 학살’을 단행하기 위한 전단계로 박 이사장을 영입하려 한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김 대표는 무엇 때문에 이 시점에 박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리는 인사를 하려 했을까. 김 대표는 지난 10월 중국 상하이에서의 ‘개헌 봇물론’ 발언 이후 청와대의 경고를 받고 자세를 바짝 낮추고 있었다. “대통령께 송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가 하면, 박 대통령이 확고한 의지를 갖는 공무원연금 개혁도 앞장 서 추진해 왔다.

더구나 ‘정윤회 문건’ 파문이 터져 비선 라인의 국정개입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김 대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박 대통령이 문건 내용을 ‘찌라시 수준’이라고 밝힌 말에 동조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런 태도는 ‘김무성답지 않다’는 비판을 낳았다. 청와대에도 할 말은 하겠다는 취임 초반의 결기와 달랐던 까닭이다. 그러자 김 대표는 다시 새누리당에서 친박 색깔을 빼고 김무성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당연히 친박계의 견제도 재개됐다. 친박계 의원들의 모임인 ‘국가경쟁력 강화포럼’을 중심으로 대규모 송년 모임을 갖는 등 세 과시에 나섰다. 특히 내년 5월에 실시될 원내대표 경선에사 친박계 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도 짜고 있다.

현재 차기 원내대표 경선 구도는 이주영 의원과 유승민 의원의 2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 의원은 ‘원조 친박’이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해 자주 쓴 소리를 하면서 지금은 친박계와 소원해졌다. 반면, 최근 해양수산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주영 의원은 세월호 정국에서 박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친박계가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새누리당은 새해에도 어정쩡한 ‘오월동주’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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