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미 북한 방문기 실체 [추적]

▲ <뉴시스>

 

한국 제도권 정치에 ‘종북주의자’ 진입 시도
1992년 민중당 후보 지원…한 석도 못 얻고 해산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그는 1986년 서울대학교에서 구국학생연맹을 결성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80년대 학생 운동권에 전파한 인물이다. 당시 ‘강철서신’의 저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1991년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면담했다. 지금은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됐다면서 전향한 뒤 탈북자를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위원이 최근 한 종편 방송에 출연해 ‘폭탄발언’을 했다. 그는 “북한 당국이 1991년 남한의 민중당에 관심이 높았다”고 말했다. 북한의 한국 정치권에 대한 관심표명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이 이미 노태우 대통령 시절 말기부터 한국 정치에 개입하려 했다는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 공작원이 1990년 10월 한 고정간첩을 만나 “곧 창당되는 민중당에 입당, 조선노동당의 지도를 받는 전위정당으로 육성하라, 당 운영자금을 지원할 테니 14대 총선에서 필히 핵심인물을 포섭, 원내에 진출시켜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증언도 있다.

민중당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했던 진보 성향 정당이다. 민중당의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는 ‘국군 무장해제’였다. 상임대표는 이우재, 정책위원장은 장기표, 사무총장은 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이재오였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도 민중당 멤버였다. 하지만 민중당은 1992년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해 해산됐다.

‘국군 무장해제’ 공약 제시

이후 북한이 한국의 ‘종북 세력’을 제도 정치권에 진입시키기 위해 자금을 지원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김 위원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은 1995년 지방선거와 이듬해 총선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보냈다. 김 위원은 지난 10월 21일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 제16차 공개변론에 정부 측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이 자리서 “북한이 지난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조직원을 후보로 입후보시키고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민혁당 중앙위원장이었던 자신이 1991년 밀입북했을 때 북으로부터 지원받은 40만 달러 가운데 일부를 남대문 시장 암달러상에게서 환전해 민혁당 중앙위원 하영옥 씨를 통해 좌파 후보들에게 500만~1000만원을 지원했다는 주장이다. 1995년 지방선거 때 최근 헌재 결정으로 국회의원직을 잃은 김미희 후보(당시 성남시 의원 출마), 이상규 후보(당시 서울 구로구 의원 출마)에게 각각 500만 원을 지원했다고 그는 밝혔다.

김 위원은 북한 연락책이 강화도 ‘드보크’(간첩장비 비밀 매설지)에서 꺼내온 북한 자금을 하영옥 씨를 통해 이상규·김미희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하영옥 씨와 이상규 전 의원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다. 김미희 전 의원은 당시 민혁당 하부 RO조직 성원으로 알려져 있어 중앙위원이었던 하영옥 씨가 직접 자금을 전달했을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 씨와 김 전 의원 중간 사이의 당원, 혹은 이석기 전 의원이 전달했을 여지는 있다.

나아가 김 위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두 사람 외에 북한의 자금을 통해 정치권에 진출한 또 한 사람이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주요 당직자를 하고 모 지역의 기초단체장을 했던 인물도 그랬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처음 그가 출마할 때 지원을 해줬지만 당선이 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출마했을 때는 기초단체장에 당선됐는데 그 때는 민혁당을 해체한 이후라 그 당시의 자금 사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상규·김미희 전 의원은 이에 대해 “북한 돈을 받은 적이 없다. 김영환의 황당무계한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이자 명예훼손”이라고 반발하며 김 위원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이상규·김미희 전 의원 반발

북한의 자금이 이상규·김미희 전 의원에게 전달됐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중간에 ‘배달 사고’가 났을 수도 있고, 두 사람이 북한의 자금인줄 모르고 선의로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사실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이미 민혁당 사건 당시 진술이 이뤄진 부분이었다. 그러다 헌재의 결정으로 이상규·김미희 전 의원이 의원직을 박탈 당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문제는 북한이 이미 오래 전부터 ‘종북 주의자’를 한국 정치에 진입시키기 위한 시도를 해왔다는 정황이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초·중반부터 북한 공작원들의 관심은 합법정당을 통해 혁명가들을 정치적으로 진출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외에도 한국에서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른바 ‘북풍’(北風) 논란이다. 1987년 대선 직전에 발생한 KAL기 폭발 사건 및 선거 전날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입국, 1992년 대선 전에 안기부가 발표한 거물 간첩 이선실 및 남조선노동당 사건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96년 4·11 총선을 앞두고 북한군은 판문점에서 갑작스럽게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97년 대선 국면에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망명한 일이나, 진보정당 국민회의 고문이었던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이 월북한 사건도 북한의 한국 정치 개입 정황이다. 1997년 대선 직전엔 북한 측 인사에게 판문점에서의 총격을 요청했다는 소위 ‘총풍’(銃風) 사건도 있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제2 연평해전 역시 결과적으로 북한이 한국의 대선에 개입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제2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3, 4위전이 열린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쯤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의 참수리357호 고속정을 기습 공격하며 발발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북한의 한국정치 개입설을 제기하고 있다. 하 의원 역시 NL계 학생운동을 하다가 전향한 인물이다. 하 의원은 지난 2012년 총선 때 통합진보당이 새정치민주연합과 야권 연대를 한 것은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결과였다고 폭로했다.

하 의원은 “당시 야권 연대에 북한 대남전략기구인 225국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며 “지령문에는 연립정부 구성이 아니라 국회 의석을 양보 받아내야 된다, 정책적 담보를 받아내는 연대 방안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실제로 통합진보당이 야권 연대 협상을 실현했고, 국민참여당·진보신당 탈당파와 함께 통합진보당을 만들 때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문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관철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 지령을) 알면서도 통진당 통합과 야권 연대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분이 있다. 그분들은 이 역사적 범죄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건가”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해 홍성규 전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하태경 의원이 과거에 나왔던 자료를 새로운 것처럼 내미는 뻔뻔한 행태를 보인다.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정치적인 의도와 목적이 있다”

북한의 끈질긴 한국 정치 개입 의혹은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낳았다. 통진당은 2011년에 창당했지만 지난 12월 19일 재판소가 8:1의 의견으로 정당 해산을 결정해 강제 해산된 위헌정당이다.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을 추종해서 민주적 기본 질서를 파괴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이정희 전 대표 등 통진당 세력이 강력 반발하면서 지금 한국 사회에는 ‘보-혁 갈등’, ‘종북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종북 논란은 제도 정치권 밖에서도 한창이다. 황선 전 민노당 부대변인과 신은미 재미교포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황선 씨는 1998년 평양에서 열린 통일대축전에 참석했으며, 2000년엔 범청학련 남측본부 부의장을 지냈다. 2005년에는 평양 원정 출산 의혹을 샀고,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인터넷 방송(채널 6·15 방송)을 진행했다.

신은미 씨는 남편과 함께 북한을 수차례 방문해 여행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펴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신 씨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문제는 황선·신은미 씨가 이적 단체인 ‘6·15 선언 남측 위원회’가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한 ‘문화 콘서트’에서 불거졌다. 콘서트 내용 중에 북한의 세습체제를 옹호하는 등의 ‘종북 발언’이 나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부분은 현재 경찰과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북한 당국의 한국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해선 사정당국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지금도 북한의 자금이 ‘종북 세력’에 수혈되고 있다는 관측도 많다. 실제로 북한이 1990년대부터 종북 세력을 한국 정치권에 진출시키는 결과를 낳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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