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편집위원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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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마다 통하는 만병통치약, ‘종북·이념’ 논란
통진당의 위헌정당 해산도 연속선상에서 봐야

[일요서울 | 서승만 편집위원] 박근혜 정부가 위기 국면을 벗어날 때마다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종북 논란이 ‘만병통치약’처럼  활용됐다는 그 불편한 진실은 과연 어디까지가 권력의 작용인가. ‘종북’을 앞세운 이념 논쟁은 유난히 현 정부 들어 많아졌다.
 
그 이유는 좌파정권과의 정권교체를 통해 보수 지지층들이 다시 결집되고, 현 정권의 수세 국면을 공세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아직도 낡은 이념대립은 남북이 분단된 지금의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만의 운명적 굴레인 듯하다.

위헌정당이란 판결로 통진당 해산이 가져다준 파장도 이런 연속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2013년 하반기에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보수화가 강화되면서 당분간 이러한 사건들이 정권 지지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던 적이 있었다.

또 “우리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보수화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고 그럴수록 ‘NLL 문제’나 ‘통합진보당 사건’과 같은 보수적 정치쟁점은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당분간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해까지도 이러한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보수층이 두터워지면서 ‘NLL 포기 발언 논란’이나 ‘통합진보당 사건’ 등이 사회적으로 좀 더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여론분석 전문가들도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중도지지층의 이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대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등은 국면전환용으로 평가받더라도 기득권층에 대한 심판이라는 측면에서 여론의 역풍은 맞지 않았다. 문제는 정치적·이념적 쟁점 이슈였는데 이 또한 역풍을 맞지는 않았고 지금도 무난하게 순항중이라 효과가 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세월호 참사, 인사시스템 실패,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 논란 등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처방약’처럼 사용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좌·우 갈등의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봐야 한다. 

국정원 댓글 의혹에
NLL카드 등장

박근혜 정부가 직면한 첫 위기는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이었다.

2013년 6월 14일 채동욱 검찰총장이 이끌던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선거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됐고 거리에는 ‘촛불’이 등장해 규모를 키워가는 듯 했지만 판도를 뒤집을 만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어 현 정권에서의 남재준 국정원장은 6월 24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했다. 전략적인 카드를 들이민 것이다.

국익 훼손, 대외 신뢰 추락이라는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회의록을 통째로 공개했다. 이로 인해 정치권 공방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여부로 모아졌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NLL, 북방한계선도 수많은 젊은이가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당선 후에도 새로운 자기방어적인 권력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마련해 국면전환을 해야 하는 공격용카드로 사용했다. 

이런 ‘NLL 공방’으로 위기를 넘긴 박근혜 정부는 그해 8월 다시 위기를 맞았다. 국정원뿐 아니라 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증거들이 나오면서 말이다.

특히, 8월 중순 국정원 댓글 의혹 청문회가 즉시 열렸고, 이 자리에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거짓증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정국은 들썩였다.

야당을 중심으로 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공안정국을 만들어간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하게도 또다시 국정원이 등장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의도적 해법 찾기인지는 모르나 통진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에 있어 ‘국정원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정국은 곧바로 ‘내란음모 사건’ 국면으로 바뀐다.

지지율 급락
통진당 해산으로 반등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정치적 쟁점과 연관됐다는 인식이 유권자들에게 퍼지면서 이념에 관심이 없는 중산층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빠지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팽배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 들어 정치적·이념적 쟁점 이슈가 이전에 비해 밀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국민의 실생활과 무관한 것이 반복되면 이슈에 대한 거부감이나 피로도가 생길 수 있고 장기적으로 갈수록 단면적인 국면전환의 효과보다는 국민들이 정권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변화하는 등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껏 자신을 ‘정쟁’과 분리시키며 ‘민생’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와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자 ‘헌정사상 초유의 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로 반등에 성공했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인 37%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온 날 진보당 해산 결정이 내려졌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이번 헌법재판소의 진보당 해산 결정을 계기로 비선 실세 국정개입 의혹 논란으로 수세에 몰린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말한다.

박 대통령은 진보당 해산 결정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직접적인 언급을 했다. 박 대통령이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제는 ‘국면전환 카드 정치’가 아닌 다른 정치 스타일이 요구된다.

취임 초기만 해도 박근혜 정권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강하게 밀어붙이는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지나치게 정치적 쟁점을 많이 남기면서 생각보다 빨리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위기 때마다 정면돌파의 ‘만병통치약’이 약효가 있었던 것은 수세에 몰려 있던 보수층들의 반격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일 수 있다. 또 아직도 우리사회 보수의 힘은 이렇게 막강하게 언제든지 큰 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다.

동시에 응집된 보수 지지층들이 언제든지 우군이 되어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권력유지의 판도 흐름에 성공적 결과로 귀결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사이 여야에서 제기된 ‘청와대 쇄신론’은 다시 공허한 메아리로 사그라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 또한 들리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균형추는 대한민국의 틀 내에서 야당을 향한 국민여론의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이제 야당은 좀 더 올바른 시각에서 들끓는 여론에 어떤 목소리를 내야하고 또 ‘프레임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 분명하다.

solar21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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