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집권 3년차는?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실시된 노태우 대통령 시절 이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 같이 집권 3년차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임기 중반기에 국정운영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대통령 지지율도 크게 하락했다. 이른바 ‘집권 3년차 증후군’이다.

1988년 2월 출범한 노태우 대통령은 그해 4월 치러진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 결과가 초래되면서 전반기 국정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국정 난맥상은 집권 3년차인 1990년 정점으로 치달았다. 결국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1991년에 3당 통합을 단행했다. 노 대통령이 이끌던 민정당, 김영삼(YS) 총재의 민주당, 김종필 총재(JP)의 공화당이 합쳤다. 3당 통합의 후유증은 컸다. YS가 거대 계파인 민정계와 맞서 권력투쟁에 나서면서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1993년 정권을 잡은 YS는 문민정부답게 취임 초반 강력한 개혁 드라이버를 걸었다. 금융실명제 실시, 군 사조직인 ‘하나회’ 해체, 공직자 재산공개 등에 국민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한 때 국정운영 지지율이 90%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집권 3년차로 접어들면서 국민들 사이에 개혁 피로감이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아들 현철씨를 비롯한 실세들의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YS 정권은 조기 레임덕으로 접어들었다. 집권 3년차인 1995년 실시된 제1회 지방선거에서 야당에게 참패한 일이 결정적 계기였다.

집권 초반 IMF 외환위기 극복과 남북 정상회담 실현으로 지지율이 높았던 김대중(DJ) 정부도 집권 3년차 증후군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YS와 마찬가지로 측근 비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정부 출범 3년차인 2000년에 터진 정현준 게이트와 진승현 게이트, 그리고 이듬해 터진 이용호 게이트 등 3대 게이트는 극심한 민심 이반의 빌미가 됐다. 결국 그 해 치러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게 패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잃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집권 3년차인 2005년에 잇달아 발생한 오일 게이트, 김재록 게이트, 행담도 게이트로 주춤했다. 이들 게이트 가운데 일부는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지만 당시엔 노무현 정부에 큰 타격을 줬다. 여기다 여권 내부 갈등, 부동산 값 폭등은 민심을 흔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 광우병 파동에 따른 촛불시위 사태로 불안하게 출발했다가 집권 3년차이던 2010년을 맞아 다소 안정을 찾았다. 교육비리와 토착비리 척결을 기치로 강력한 정책 드라이버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핵심 정책으로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이 당시 박근혜 의원의 제동으로 부결되는 사태를 겪었다. 정권 차원에서 추진했던 4대강 살리기도 이 시점에 논란거리였고, 결국 국정운영 지지율은 크게 하락했다. 정권 말기엔 실세 3인방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잇달아 구속되는 비운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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