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부녀자를 노린다”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범죄가 극성이다. 최근 수개월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지역에서 연쇄적으로 성폭행이 발생했다. 일명 ‘신길동 발바리’로 불리는 범인은 혼자 사는 부녀자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마포구 등 서울 강북일대에서 5년여 동안 ‘보일러공’행세를 하며 연쇄성폭행을 저지른 일명 ‘보일러 발바리’에 이은 ‘신길동 발바리’사건으로 혼자 사는 여성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경찰이 단서가 부족해 범인 윤곽조차 잡지 못해 경찰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이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연립주택에 침입해 A(여)씨를 성폭행하고 달아났다. 이어 10월에도 열흘 간격으로 같은 지역의 다세대 주택에 혼자 사는 여성 2명이 성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작년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모두 8건의 성폭행 사건이 주로 대낮에 발생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이 가운데 작년 8월 대림동 범행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신길동에서 발생해 이 지역 부녀자들이 공포에 휩싸였다. 피해자 대부분은 혼자 사는 20, 30대 젊은 여성들이다.

또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수거한 범인의 체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작년 9월 말과 10월 신길동에서 발생한 3건은 동일범 소행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나머지 범행에 대해 개별 범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행 가운데 신길동 발바리의 추가 범행이 있을 수도 있어 경찰은 수사를 강화하고 있다.


용의주도 신길동 발바리,/b>

경찰 관계자는 “7~8월에 일어난 다른 성폭행 사건 4건은 유전자 감식 결과 모두 개별 범행으로 보이며, 12월 사건은 체액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전자 감식으로도 범인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데다 피해자 진술 외엔 뚜렷한 단서가 없어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길동 일대는 소형 연립주택이나 원룸 등 독신자용 거주지가 많아 그 동안 혼자 사는 여성들을 노린 범죄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이 특정 지역 사투리를 쓴다는 피해자 진술과 성범죄 전과 등을 종합, 주민 3,100여 명을 용의선상에 올리고 수사망을 좁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주목을 끄는 것은 범인들의 범행수법이다. 피해자들이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범인 대부분은 자신들의 인상착의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피해자들의 눈을 가린 채 범행했다. 경찰은 수법이 비슷한 점을 감안, 범인들 간의 연계성도 함께 수사하고 있다.

영등포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현재 동일수법의 전과자들과 주변지역에 거주하는 용의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펴고 있다. 3천여명의 유전자 감식이 끝나면 어느 정도 범인의 윤곽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범인을 잡기 위해 최대한 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또 사건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순찰도 강화하고 있다. 추가 범행이 발생하기 전에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수사 효과 논란

이와 함께 연쇄성폭행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은 ‘비공개' 수사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지역 주민들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주민들은 공개수사 통해 추가 범행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할 경우 범인이 수사상황을 파악해 잠적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수사가 장기화될 경우 여론의 뭇매를 맞을 가능성이 있어 경찰 입장에선 공개수사를 꺼린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에 대해 주민들의 안전은 뒷전으로 한 전형적인 무사안일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신길동 사건 발생지역 주변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은 “무슨 사건이 터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대처를 할 텐데 경찰이 비공개 수사를 하면 국민들이 추가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 아니냐. 그러면서 범죄예방을 운운하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 주민은 “연쇄성폭행 사건이 최근 공개되기 전에는 이 일대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며 “주민들이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조심했을 것이고 그러면 추가 피해자가 한명이라도 더 줄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나. 경찰이 수사를 무조건 비공개로 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신길동 발바리'를 비롯해 마포구 등 서울 강북일대에서 5년여 동안 ‘보일러공' 행세를 하며 연쇄성폭행을 저지른 일명 ‘보일러 발바리‘ 역시 아직 검거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언제 어디서 야수의 본성을 다시 드러낼 진 아무도 모를 일이어서 부녀자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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